최근 방송가에서는 스포츠를 주제로 다룬 예능 프로그램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JTBC <뭉쳐야 찬다>, <최강야구>, SBS <골때리는 그녀들>, tvN <군대스리가>,<올 탁구나>(종영), MBN <국대는 국대다>(시즌1 종영) 등 다양한 종목과 구성의 스포츠 예능들이 잇달아 등장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스포츠 예능이 기존의 음악, 오락, 토크쇼 등의 예능 프로그램과 차별화된 부분은 리얼리티가 주는 진정성이다. 본래 스포츠의 매력은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데 있다. 기본적인 설정과 콘셉트는 제작진이 제시하지만, 서사의 핵심인 승부는 오롯이 출연자들 스스로의 몫이다. 출연자들은 방송을 통하여 선수로 나서고 실전을 통해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대로 그 내용과 결과를 모두 책임져야 한다. 장르상으로는 예능 방송이지만 승부에 임하는 출연자의 도전과 노력은 모두 진심인 것이다.
 
과거에도 <출발 드림팀>,<우리동네 예체능>, <천하무적 야구단> 등의 스포츠 예능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스포츠 자체가 중심이 되었다기보다는, 예능 위주에 스포츠를 일부 접목시켰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소재와 서사의 연속성에서도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스포츠 예능들은 하나의 메인 종목이나 콘셉트을 정하여 깊이 파고들어가는 것은 물론, 리그나 실제 대회 도전같은 장기 프로젝트 시도, 시즌제 도입 등으로 훨씬 체계화되고 규모가 커졌다. 스포츠 예능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지난 2019-20121년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스포츠 경기가 줄어들면서 생긴 대중의 갈증을, 스포츠 예능이 대리만족시켜주는 효과도 어느 정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스포츠 예능 붐 일으킨 '뭉찬'
 
 JTBC <최강야구> 한 장면.

JTBC <최강야구> 한 장면. ⓒ JTBC

 
특히 <뭉쳐야 찬다>(이하 뭉찬) 시리즈는 최근 방송가에 스포츠 예능 붐을 일으킨 원조로 꼽힌다. 시즌 1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각 종목의 레전드들이 조기축구에 도전한다는, 이전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콘셉트를 제시한 것이 주효했다. <뭉찬>은 '초보 신생팀의 성장기'라는 스포츠 예능의 고유 서사를 확립했고, 안정환, 김동현, 허재, 김병현, 이형택 등 이후 방송가를 활발하게 누비고 있는 '스포테이너'들의 잠재력을 본격적으로 발굴해냈다는 데 의미가 크다.
 
<골때리는 그녀들>은 여성 연예인-셀럽들의 축구(풋살) 도전기를 통하여, 그동안 남성 위주였던 스포츠 예능에서 여성 스포츠만의 매력을 보여줬다는 점, 전문적인 체육인이 아닌 '아마추어들의 생활체육 도전기'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골때녀>는 예능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 고정 출연자들이 등장한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올렸고, 자체적으로 리그제를 구축하여 벌써 3번의 시즌(파일럿 포함)을 소화하며 성공적인 장수예능의 반열에 올라섰다.
 
<뭉찬>과 <골때녀>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은 이후의 스포츠 예능들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최강야구>와 <군대스리가>는 은퇴한 레전드 선수들을 모아 최강의 팀을 결성한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야구의 이승엽, 박용택, 정근우, 송승준 등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들이고, 축구의 최진철, 송종국 이천수, 이운재, 이을용 등은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주역들이다. 평소에는 한 자리에 모이기도 힘든 전설들을 섭외한 방송의 힘은,시청자들에게는 추억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고, 선수들에게는 과거의 영광 재현과 함께 해당 종목을 알리기 위한 홍보라는 명분도 제시한다.
 
또한 <국대는 국대다>는 은퇴한 레전드 선수가 현역 선수들과 맞대결을 펼친다는 컨셉트를 통하여 화제를 모았다. 어느덧 중년을 넘긴 레전드들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기 위하여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현정화, 박종팔, 이만기, 문대성, 심권호, 하태권, 김택수 등 요즘 젊은 팬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추억의 레전드들을 소환하며 한국 스포츠 영광의 역사들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시청자들은 최근의 스포츠 예능을, 그저 웃고 즐기는 예능이라기보다는 예능이 가미된 '리얼한 스포츠 중계'에 가깝게 인식하고 있다.

스포츠 스타 활용 및 세계관의 확장
 
한편으로 이러한 스포츠 예능의 인기는, 더 나아가 스포츠 스타들을 활용하는 장르와 세계관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최근 시즌2의 막을 내린 E채널 <노는 언니>는 여성 스포츠 레전드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동안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여성 선수들의 속깊은 이야기와 고충을 드러내는 창구로서 주목받았다. 남성 선수들이 출연하는 스핀오프인 <노는 브로>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스포츠 선수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승부로서의 스포츠'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토크쇼, 여행, 먹방, 힐링 등 일반 예능의 버라이어티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스포츠 예능의 새로운 확장성을 보여준 대목이다.

<노는 언니>처럼 프로그램 자체의 재미를 넘어 '사회적 역할과 순기능'까지 고려하는 것도 최근 스포츠 예능의 중요한 추세다. <뭉찬>은 시즌2에 접어들면서 축구를 통하여 '비인기 종목'을 알린다는 새로운 취지를 제시했다. 카바디, 스켈레톤, 트라이애슬론, 라크로스, 노르딕 복합, 가라테 등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이 출연하면서 해당 종목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KBS1 <청춘야구단-아직은 낫아웃>은 독립야구 출신 선수들의 프로야구 선수 배출-재기라는 목표를 내세웠다.<최강야구>는 은퇴한 프로야구 레전드들 외에도 독립야구 소속 선수들을 영입하거나, 고교-대학야구팀들과의 대결을 통하여 소외된 아마추어 야구를 알리는 기능도 맡고 있다.
 
또한 최근 방송가에서는 이제 스포츠 스타들이 출연하지 않는 예능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MBC <안싸우면 다행이야>,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채널 A <요즘 남자 라이프-신랑수업> 등은 관찰예능이지만 스포츠 스타들이 장기 출연해 프로그램의 서사에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채널A <슈퍼 DNA 피는 못 속여>, KBS2 <우리끼리 작전타임> 등 '스포츠스타 2세'를 내세운 프로그램까지 잇달아 등장하기도 했다.
 
스포츠 예능의 범람, 문제는

이처럼 방송가에서 높은 인기와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는 스포츠 예능이지만, 한편으로 우려되는 부분도 존재한다. 비슷한 스타일의 프로그램이 범람하거나, 장수 프로그램이 되면서 벌어지는 '매너리즘'이 대표적이다.
 
<뭉찬>시즌2는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작부터 '조기축구 전국제패'라는 무리한 목표를 제시하면서 오히려 정체성이 흐려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두 번에 걸친 선수영입 오디션으로 젊은 현역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점점 주전에서 밀린 원년 멤버들의 위상이 애매해졌고, 초보 신생팀의 성장기라는 고유의 서사는 빛을 잃었다. 야심차게 제시햇던 '전국 도장깨기'라는 목표도 전라도 편과 강원도 편만 방송된 이후 벌써 두 번이나 중단되며 흐지부지되는 모양새다.
 
<골때녀>는 지난 연말 방송에서 편집 조작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SBS는 제작진 일부를 문책-교체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프로그램의 가장 매력이던 진정성에 대한 신뢰도가 이미 손상을 입은 것은 피할수 없었다. 또한 점점 늘어나는 신생팀의 콘셉트와 선수영입의 형평성, 팀간 밸런스 문제 등을 놓고 제작진이 여전히 방송에 개입하고 있다는 시청자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는다. 장수 프로그램들이 필수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문제들이다.
 
농구를 소재로 한 JTBC <뭉쳐야 쏜다>, <마녀체력 농구부> 등은 전작들만큼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조용히 종영했다. <청춘야구단>이나 <최강야구>는 마니아 팬들에게 높은 화제성이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시청률은 저조한 편이다. 제아무리 인기있는 종목과 출연자들이 등장한다고 해도, 해당 종목 본연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제작진의 연출력, 출연자들의 캐릭터와 실력이 주는 매력, 다른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되는 서사 등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스포츠 예능은 한계가 있다.
 
또한 리얼리티와 승부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은퇴 선수나 아마추어 출연자들에게조차 승부의 결과에 따라 실제 현역 선수들 같은 기대치를 요구하는 비판과 악플이 쏟아지기도 한다. 심지어 부상에 대한 제작진의 안전불감증 문제 등도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큐에 가까운 리얼리티와 가볍고 유쾌한 예능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은, 스포츠 예능과 그 수혜를 입은 출연자들에게 공통의 숙제로 남았다.
스포츠예능 뭉찬 골때녀 최강야구 군대스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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