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비> 포스터

<곡비> 포스터 ⓒ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6번째 생일을 맞이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정식개봉이 힘든 하드고어한 작품을 선보이며 사랑받았던 금지구역 섹션을 마감했다. 때문에 아쉬워했던 마니아층에게 큰 선물과도 같은 영화가 있다. 바로 <곡비>다. 이 작품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달라진 사회의 모습을 좀비호러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차이라면 무지성으로 폭력을 즐기는 게 아닌 바라보게 만들면서 정서적으로 충격을 주고자 한다.
 
대만의 젊은 커플인 짐과 캣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는 아침을 맞이한다. 뉴스에서는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을 언급하며 경각심을 촉구하는 학자가 등장하나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바이러스는 삽시간에 퍼지며 사람들을 분노로 몰아넣는다. < 28일 후 >의 분노 바이러스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들의 모습은 좀비와 거리가 있다. 말을 하고 인식을 지니고 있다. 지능적인 행동을 통해 더 강한 공포를 표출하고자 한다.
 
시작부터 주인공의 손가락이 잘리며 경찰이 총을 쏘는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지옥도를 펼친다. 좀비는 인간을 감염시키는데 열을 올린다. 좀비는 기계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을 비유한다.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사유를 잃어버린 이들의 모습을 의식이 없는 좀비처럼 묘사하며 공포를 준다. 때문에 좀비는 인간을 공격하고 감염시킨다. 현대인의 사유를 파괴하고 목적 없이 모두가 동일한 모습을 지니게 만든다.
  
 <곡비> 스틸컷

<곡비> 스틸컷 ⓒ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반면 <곡비>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은 극도의 폭력성을 지닌다. 이들은 살인, 강간, 고문을 반복한다. 감염자들은 입은 웃으면서 이런 잔혹한 행위를 반복하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울고 있다는 말처럼 이성을 지니면서 잔혹한 본성을 지니게 되자 고통을 호소한다. 이런 점은 코로나 팬데믹이 보여준 지난 몇 년 간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코드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공포로 인한 두려움은 증폭되었다. 확진자들을 향한 비난과 정부의 방역대처에 대한 문제제기, 통제에 대한 저항 등 다양한 형태로 분노의 표출이 나타났다. 이성적으로 뚜렷한 답을 내릴 수 없기에 감성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영화는 이 팬데믹 상황을 현대사회의 문제점과 연결한다. 사회분노를 부추기며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현상과 말이다.
 
바이러스가 퍼지는 과정은 개개인이 느끼는 분노다. 사회에서 겪는 분노가 쌓인 이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그 형태를 타인을 향한 폭력으로 풀어낸다. 작품의 메인 빌런 중 하나인 중년남성은 캣한테 무시를 당하자 그 분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분노를 풀어낼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며 고문과 살인을 반복한다. 정부가 이른 경고에도 불구 통제를 택하지 않았다는 점은 정치적인 이용과 연결된다.
  
 <곡비> 스틸컷

<곡비> 스틸컷 ⓒ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이 우선이기에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며 최악의 상황을 방치하게 된다. 분노가 바이러스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사회의 분노를 해소할 생각보다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정권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이런 주제를 바탕으로 디스토피아의 상황을 연출한다. 판을 잘 깔아놨으니 장르적 쾌감을 자아내는데 열을 올린다. 플롯은 짐이 캣을 구하러 가는 과정을 그리지만 서사보다는 현상에 주목한다.
 
짐이나 캣을 통해 서사가 전개되기 보다는 살육의 현장을 카메라가 따라가는 구조다. 식당, 자택,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살인과 고문으로 예열을 한 뒤 지하철을 배경으로 유혈이 낭자한 학살극을 벌이며 극을 고조시킨다. 맥거핀의 사용도 눈에 들어온다. 짐이 캣을 구하러 간다는 점에서 영웅서사를 펼칠 거처럼 장치를 둔 뒤 예상치 못한 전개를 보여준다. 극적 긴장감은 유지하면서 신선한 폭력에 주력한다.
 
<곡비>는 제목처럼 곡(哭)소리가 나게 만드는 영화다. 코로나 팬데믹 때 느꼈던 고통을 극한의 아비규환으로 펼치며 탄식을 유발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하드고어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특히 의식을 지닌 좀비, 행위에 고통을 느끼는 좀비를 통해 공포와 통제 속에서 울분을 느껴야만 했던 시간들을 상기하게 만든다. 아직 코로나의 그림자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경각심도 불어넣어 줄 영화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곡비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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