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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번 남동쪽 불린(Bulleen) 지역에 1981년 세워진 하이데 현대미술관(Haide Museum of Modern Art)은 보수성향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금까지 동양인 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메인 전시회장에서 지난 6월 11일부터 재호 한인화가의 초청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호주의 유명 큐레이터인 멜리사 키즈(Melisa Keys)씨가 새 전시회 기획을 하며 빅토리아 주 문화 창작 지원처(Creative Victoria)에 근무하는 정문정(엘리자 정-Eliza Jung) 양과 의논 끝에 멜번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신재돈 화백의 작품들을 만나게 되어 초청 개인전으로 이어진 것.

지난 11일 오프닝 행사를 하며 시작된 이 전시회는 오는 10월 30일까지 이어진다. '두 개의 달'(Double Moons)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전시회 장으로 신재돈 화백을 만나러 갔다. 
 
전시되고 있는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재돈 화백
 전시되고 있는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재돈 화백
ⓒ 스텔라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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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일곱에 호주 이민을 오게 되면서 바로 RMIT 대학교(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 University) 미대 드로잉과에 입학을 하며 미술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서강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했고 호주에 오기 전까지 직업은 사업가.
그런데 쉰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미술을 시작한 것이다. '화가가 될까, 작가가 될까' 오랜 시간 꾸었던 그 꿈은, 자신의 고향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항쟁, 군사독재정권 시대 속에 소위 운동권 젊은이가 되면서 접어야 했다.

힘들었던 투쟁, 오랜 노력 끝에 '민주화'가 찾아왔고, 그때는 꿈보다 생활을 이어가야 해서 사업가로 평범한 삶을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고, 그 아들들, 뒤처지지 말라고 다른 사람들이 하듯 유학을 보내고… 그렇게 이어진 호주행이 화가의 길로 이끌 줄을 그때는 물론 몰랐다. 이민도, 새로운 도전도 모두 계획되지 않은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취미처럼 마치 아주 놓치고 싶지는 않은 무엇을 잡고 있는 심정으로 그려 두었던 몇몇 작품을 포트폴리오로 냈는데 입학 허가가 나더라구요.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아들, 딸 뻘 되는 학생들 틈에서 처음에는 그저 옛날 꿈을 다시 찾는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한 공부였다. 하지만 호주 땅에서 풀타임 화가(Full time Artist)가 되는 것이 얼마나 치열해야 하는지를 눈으로 보며 생각을 바꿨다.
 
작품과 함께 화가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전시회장 입구
 작품과 함께 화가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전시회장 입구
ⓒ 스텔라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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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이라는 것은 없었다. 한국과 호주를 오가며 전시회도 많이 열었다. 뒤늦은 시작, 적지 않은 나이…  "많이 하자. 작품도, 전시회도 무조건 많이 하자"는 전략을 세운 신재돈 화백은 그래서 20회 이상의 개인전과 60회 이상의 그룹전을 기록하고 있다.

분단국가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이념'에 맞섰던 곳에서 떠나왔다. 그리고는 전혀 다른 두 개의 문화와 언어가 주는 장벽을 느끼며 살아가는 조금은 남다른 삶이어서 '두 개의 달'이라는 주제가 태어나게 된 것은 아닐까.

"두 개의 달… 두 개의 문화… 서로 다른 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문화의 차이? 그러나 또 융합? 간단하지 않죠. 원래 하나인데 둘로 나눠진 것인지, 또는 원래 하나인데 보는 이들이 이분법으로 생각을 하는 것인지… 해답을 내놓기 보다는 그걸 받아들이고 녹여내자는 마음으로 작품을 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 호주에서 여러 번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를 했지만 하이데 현대미술관에서의 이번 전시회는 확실히 커다란 한 계단을 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쉽지 않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마음에 신중하게 주제를 설명하고 작품들을 보여줬는데 운이 좋았는지 채택이 되었어요."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라 진솔하게 표현하는 그의 겸손을 정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반문했다.

"채택이라고 하셨지만 작품을 인정 받았다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요?"

환갑을 넘기고도 몇년이 된  화가는 아주 순하게 웃었다.

"그런가요? 하기는 다른 문화의 사람이 융합과 이해를 보여줬다는 걸 인정해 준 것일 수도 있겠네요.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 폐쇄를 겪으며, 세상을 보던 시각은 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바뀌어지더라구요. 그리고 그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새로운 것이 들어왔구요." 
 
신화백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신화백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스텔라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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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한 나이에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는 '남의 나라'에서 '화가'라는 직업을 갖고 사는 삶이 과연 현실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

"화가의 꿈을 완전히 잠재우고 열심히 매달렸던 사업이 일단 성공적이었구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 돈을 잘 쪼개 쓰면서 화가로의 삶을 살겠다고 생각한 거죠."

'마음이 행복하다면 그게 최고'라며 씩씩하고 유쾌하게 손잡고 같이 길을 나서준 아내의 덕도 참 컸다. '미술에는 문외한'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아내 서미정씨는 그러나 지금은 신 화백의 표현대로 "가장 필요한 직언을 해 주고 하나에서 열까지 다 도와주는" 전문 매니저가 되어 있다.

"작업은 즐겁게 합니다. 물론 고통이 슬며시 찾아올 때도 있지만 그 고통을 이겨 낸 기쁨은 더 크니까요."

그래서 다작이 가능한 것 같다고 말하는 신재돈 화백에게 남은 꿈은 무엇일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심포니로 표현을 해 본다면 이제 1악장을 마친 기분입니다. 1악장은 보통 주제를 제시하죠. 지난 10년, 저의 예술세계 구축을 겨우 마친 셈이죠. 이제 다음 악장에서는 변주를 시작해야겠죠? 그 시간을 또 잘 이어가면 미뉴엣의 아름다운 선율에 춤을 출 수 있는 3악장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왜 화가가 될까, 작가가 될까 고민했을지 충분히 이해가 갈 만큼 놓치고 싶지 않은 표현으로 들려준 삶과 작품 세계 이야기는 아름다운 갤러리 카페의 커피만큼 맛있고 진했다.

"제가 무슨 마음이었는지 보다 여러분의 눈이 마음에 무엇을 전달해 주는지, 그게 가장 중요한 거죠. 그걸 느끼는 한나절을 가지신다면, 저는 그걸로 많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작품을 하고 그래서 이곳에 어느 한 부분에라도 대한민국 출신 화가의 위상을 심고 싶다는 신재돈 화백의 꿈에 건배를 한다.

태그:#호주멜번, #하이데미술관, #신재돈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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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45 년차.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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