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실점 0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라과이의 경기. 파라과이 선수들이 첫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한국 첫 실점 0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라과이의 경기. 파라과이 선수들이 첫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좋지 않은 경기력이었다. 우리가 경기를 주도하려고 했지만 최적의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 실수가 실점으로 연결됐다. 그러나 상대가 우리를 조직적으로 많이 위협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경기력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태도와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의 파라과이전 총평이 대표팀의 명암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6월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파라과이와의 A매치 평가전에서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벤투호는 파라과이에게 2연속 실점을 먼저 허용하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으나 손흥민(토트넘)의 프리킥 만회골과 정우영(프라이부르크)의 극적인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에 힘입어 극적인 무승부를 거둘수 있었다.
 
벤투호는 6월 A매치 4연전에서 현재까지 1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브라질에 1-5로 완패했고, 칠레를 2-0으로 잡았지만 파라과이와는 비겼다. 오는 14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이집트를 상대로 마지막 평가전을 갖는다.
 
평가전 통해 '공략법' 노출? 불안감 커져

6월 A매치 4연전의 취지는 월드컵 본선을 대비한 모의고사였다. 압도적인 성적으로 아시아 예선을 통과한 벤투호가 타 대륙 강호들과의 정면대결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특히 벤투호가 자랑하는 후방 빌드업 기반의 점유율 축구가 강팀들을 상대로 통할지 검증하는 무대였다.
 
현재까지의 내용만 놓고 보면 그리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들다. 월드컵 우승후보로 꼽히는 브라질이야 워낙 수준이 다른 팀이었기에 패배 자체가 실망할 정도는 아니지만, 안방에서 5골이나 내주는 과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칠레와 파라과이는 월드컵 본선진출조차 실패한 팀들이다. 한국과 평가전 상대가 겹쳤던 아시아 라이벌 일본이 브라질에 0-1로 석패하고 파라과이는 4-1로 대파했던 것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더 크다.
 
무엇보다 남미 3팀과의 평가전이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게 될 남미팀인 우루과이,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전을 대비한 '가상의 파트너'였음을 감안하면, 이번 평가전을 통하여 월드컵을 대비한 '해법'을 찾았다기보다는 오히려 '공략법'만 상대에게 노출된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졌다.
 
두번째 골 허용하는 대한민국 10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라과이의 경기. 후반전 알미론에게 두번째 골을 허용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 두번째 골 허용하는 대한민국 10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라과이의 경기. 후반전 알미론에게 두번째 골을 허용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단 지난 3경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벤투호의 가장 시급한 문제점은 역시 허술한 '탈압박'이었다. 벤투호는 3경기 내내 지속적인 수비불안을 노출했다. 파라과이전에서도 찬스 자체를 많이 내주지는 않았지만 단 두 번의 위기가 모두 실점으로 이어졌다.
 
전반 23분 중앙수비수 정승현이 상대 공격수와 1대 1 경합 상황에서 먼저 볼을 터치하고도 안이하게 머뭇거리다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든 미겔 알미론에게 공을 빼앗겼고 그대로 실점을 허용했다. 후반 5분에는 코너킥 공격이 차단 당하면서 파라과이에게 역습을 허용했고 알미론의 중거리슛으로 추가골까지 허용했다.

벤투호의 반복되는 수비불안은 바로 탈압박 문제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벤투호를 비롯하여 모든 점유율 축구의 근간은 짧은 패스를 통한 후방 빌드업에서 비롯된다. 근데 라인을 끌어올려서 거세게 압박을 가하거나, 아예 점유율에 연연하지 않고 빠른 역습 위주의 플레이를 노리는 팀을 만났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점유율 축구는 금세 무용지물이 된다.
 
지난 3연전 동안 상대팀들은 모두 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걸어오며 벤투호의 빌드업을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한국은 수비의 핵심 김민재의 부상 공백이 뼈아팠던데다가 수비수들의 탈압박 능력이 떨어지다보니 실수가 속출했다.
 
칠레전은 행운의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세대교체로 리빌딩 중인 팀을 상대로 퇴장으로 인한 수적 우위까지 등에 업고도 오히려 고전을 면치못했다. 개인기와 조직력에서 월등한 브라질을 상대로는 그야말로 압도를 당했고, 파라과이전에서도 위치선정과 패스 타이밍에서 불안정한 모습이 계속됐다.
 
아시아권팀들을 주로 상대하는 동안 벤투호는 이런 압박을 거의 경험해보지 못했다. 이 정도의 빌드업과 탈압박 능력을 가지고, 만일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포르투갈이나 우루과이, 가나를 상대로도 점유율 축구를 자신있게 플랜A로 내세울 수 있을지 우려되는 이유다.
 
선수와 포메이션 바꾼다고 플랜B 되지 않아
 
벤투 감독, 잘 안되네 10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라과이의 경기. 대한민국 벤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벤투 감독, 잘 안되네 10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파라과이의 경기. 대한민국 벤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1차적인 문제는 수비였지만 중원조합도 문제가 많았다. 벤투호 중원의 핵심인 이재성에 이어 정우영까지 부상으로 중도 낙마하면서 벤투호는 중원 구성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또다른 부동의 주전 황인범이나 파라과이전에서 정우영의 빈자리를 메운 백승호는, 모두 수비보다는 패스와 공격적인 플레이에 강점이 있는 선수들이다. 기존의 주전인 정우영 역시 수비에 특화된 선수는 아니었다.
 
이들이 앞선에서 상대의 전진패스를 미리 끊어주거나 공간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주지 못하면서, 포백은 개인기와 스피드가 뛰어난 상대 공격수들의 속공에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잦았다. 과거의 김남일이나 유상철처럼 강한 투쟁심과 활동량으로 앞선에서 포백을 보호해줄 수 있는 '볼란치' 역할의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다는 것은, 가뜩이나 월드컵에서 전력상 열세일 수밖에 없는 한국 대표팀의 수비불안을 가중시킨다.
 
수비와 중원에서부터 제대로 풀리지 않으니 손흥민이라는 월드클래스급 공격병기를 보유하고도 제대로 활용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손흥민은 칠레와 파라과이전에서 연속골을 기록했지만 모두 프리킥 득점이었고 필드골은 없었다.

손흥민은 윙어와 최전방 공격수를 넘나들며 상대 수비를 흔드는 데 고군분투했지만 동료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여 상대의 집중견제에 둘러싸이거나, 수비 가담에 많은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 라인브레이킹 위주의 스타일이 겹치는 황의조와의 투톱 실험도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벤투 감독도 3연전 동안 선발 라인업을 계속 바꾸거나, 4-1-4-1, 4-1-3-2 등 다양한 포메이션의 혼용, 손흥민의 포지션 이동과 투톱 실험 등을 통하여 나름 변화를 꾀하는 모습도 보여주고는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빌드업을 통한 점유율 축구라는 틀 자체는 변함이 없다. 상대 입장에서는 어차피 공략법(전방 압박을 통한 빌드업 저지와 수비실책 유도)은 똑같으니 대처하기가 그만큼 편해진다. 겉보기에 선수와 포메이션만 바꾼다고해서 플랜B가 되지는 않는 이유다.
 
한편으로 나름의 수확도 있었다. 손흥민은 이번 3연전에서 2골을 추가하며 센츄리클럽(101경기) 가입에 이어 A매치 통산 득점을 33골(전체 공동 4위)로 늘리며 이동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대표팀의 전담키커로 나선 손흥민은 2골을 모두 프리킥 득점으로 기록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날카로운 킥 능력을 선보이며 에이스다운 존재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월드컵에서도 벤투호에 '세트피스'가 가장 위력적인 공격 옵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것은 희망을 줬다.

또한 파라과이전에서 2골차 열세였던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무승부를 만들어낸 뒷심은 벤투호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특히 엄원상과 작은 정우영 등 벤투 감독이 교체멤버로 투입한 영건들이 저돌적이고 스피디한 플레이로 분위기 반전을 이끌어낸 것은 이날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빌드업과 점유율은 승리를 위한 여러 가지 수단의 하나일 뿐, 그 자체가 정답은 아니다. 레벨업 하지 못한 빌드업은 월드컵같은 큰 무대에서는 오히려 상대에게 군침도는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카타르 월드컵 본선이 약 5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벤투 감독이 레벨업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그리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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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빌드업 탈압박 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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