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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은 ‘세계 월경의 날’로 월경에 대한 사회적인 침묵과 터부를 깨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여성환경연대는 세계 월경의 날을 맞이해, 여성들의 월경 경험을 가시화하고 사회 의제로 공론화하기 위해 매년 ‘월경 말하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2년, 제6회 월경 말하기 주제는 ‘여성 노동자의 월경’입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4명을 만나 월경 경험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자말]
학습지 교사 여민희씨(왼쪽)와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안현진씨(오른쪽)가 지난해 9월 마포FM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학습지 교사 여민희씨(왼쪽)와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안현진씨(오른쪽)가 지난해 9월 마포FM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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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나 우유 정기 배달을 넘어 영화, 음악, 생필품, 꽃, 가전제품 등 생활 속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배송받고 '구독'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다. 우리의 일상을 더욱 편리하게 도와주는 서비스의 이면에는 이동 노동자들이 있다. 배달 노동자, 학습지 교사 등 수많은 장소를 오고 가는 이동 노동자들은 매달 찾아오는 월경 기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여성환경연대 안현진 활동가와 학습지 교사 여민희씨가 지난해 9월 만나 일터에서의 월경을 주제로 나눈 이야기를 통해 궁금증을 풀어봤다.

2019년 전국학습지노조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습지 교사의 91%는 여성이다. 학습지 교사는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다. 노동관계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학습지 교사의 고용 및 노동 안정성 문제는 오랫동안 논의되었지만, 이동노동자의 월경권과 건강권에 대한 논의는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월경과 관련해 학습지 교사들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은 화장실 문제다. 이들은 주로 방과후에 수업이 몰려 있다. 이동시간이 촉박한 업무 특성상 시간을 내 화장실에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민희씨는 화장실 관련 고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동 중에 (화장실) 가는 게 쉽지는 않아요. 대부분 마을회관이나 노인회관 화장실을 이용하고 아파트는 관리사무소를 이용하는데 그러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래서 참았다가, 정말 정말 참았다가 꼭 가야 된다할 때에 맞춰서 가기도 하죠."

민주노총이 실시한 '2021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에 의하면 이동·방문 노동자의 57.76%는 '근무 중 화장실 사용이 대체로 불가능하거나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사유는 '사용 가능한 화장실이 너무 멀리 있거나 인근에 없다' '사용 가능한 화장실을 찾기 힘들다' '화장실 시설이 더럽거나 불편해서 가고 싶지 않다' 순이었다. 83.1%의 여성들이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우니까 수분 섭취를,  74.5%는 음식 섭취를 제한하고 있다. 응답자 10명 중 6명은 화장실 이용 문제 때문에 우울감이나 자존감 하락 등 심리적인 문제를 겪었다.

월경 기간에 특히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화장실 문제는 여성들에게 매우 절실하다. 학습지 교사의 경우 고정된 장소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가정을 방문하며 일하는데 고객의 집에서 화장실을 사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가정 방문 중에 화장실에 가기도 하는데 코로나 발생 이후에는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학습지 교사가 화장실을 갔다가 컴플레인이 걸린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교사들이 가정 방문 중 화장실 이용을 가급적 삼가하고 있어요. (방문 가정에서) 방석을 보통 내어주시는데 어떤 교사는 그 방석에 생리혈이 샜다고 해요. 그걸 그 집 아버님께 말씀드리는데 굉장히 수치스러웠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도움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가 되도록

학습지 교사는 생리대를 제때 교체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월경기간에 생리대를 평균 2~3시간에 한 번 교체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장기간 이용할 시 세균이 쉽게 증식할 수 있고 가려움증이나 따가움, 피부발진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여민희씨는 노동자들이 월경으로 인해 곤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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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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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 교사들이 월경으로 인한 불편을 겪지 않으려면 특히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이동 중에 눈치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중·개방 화장실과 이동 노동자 쉼터를 확충해야 한다. 쉼터가 접근성이 떨어지고 주말에는 운영하지 않아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이것도 개선해야 한다. 월경으로 인해 근무하기 어려울 경우 월경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중·개방 화장실에 공공 월경용품 의무배치를 확대할 필요도 있다.  

제도적 지원 못지않게 시민들의 인식 변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월경을 숨기려 하는, 말하지 못하게 하는 월경 터부와 금기가 사라져야 하고 월경하는 노동자를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여민희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먼저 내 집을 방문한 학습지 교사에게 '우리 집 화장실은 사용해도 됩니다' '선생님 마음 놓고 생리대 바꾸셔도 돼요' '저희 화장실에 그냥 버리세요'라고 얘기하면서 편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여성환경연대 팟캐스트 <블러디 페미니스트> 내용을 가공했습니다.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81898


태그:#월경, #세계 월경의 날, #학습지교사, #이동노동자,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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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창립한 여성환경연대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녹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태적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환경단체 입니다. 환경 파괴가 여성의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여성건강운동, 대안생활운동, 교육운동, 풀뿌리운동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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