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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지역아동센터 교사와 학생 200여 명이 2019년 7월3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아동권리대회’를 진행하는 모습.
 서울시 지역아동센터 교사와 학생 200여 명이 2019년 7월3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아동권리대회’를 진행하는 모습.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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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박아무개(30)씨는 2021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지역아동센터 일을 그만뒀다. 센터장도 아이들도 가지 말라고 설득했지만, 그의 결정을 무를 수는 없었다.

박씨는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는 "예비 남편이 학생이라 제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언제 임금이 오를지 모르는 막연한 상황이라, 아예 다른 업계로의 전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통장에 찍힌 월급은 160만 원 남짓, 이는 최저시급을 겨우 웃도는 금액이었다.

광주에서 인천으로 이직하면 34만 원 더 받는다?

지역아동센터는 매년 비참한 성적표를 받아왔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국고지원 사회복지시설 인건비 가이드라인 준수율'에 따르면, 10개 조사 대상 기관 중 꼴등을 벗어난 적이 없다. 앞선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지역아동센터의 임금 준수율은 79.8%에 그쳤다. 거칠게 적용하면, 5명 중 1명은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지역아동센터 임금 준수율이 저조한 원인은, 시도별로 상이한 '지자체 별도지원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역아동센터 수입을 항목별로 나누어보면 지자체 별도지원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자체 별도지원금은 시도별로 천차만별이다. 인천은 월평균 315만 원을 받지만, 광주는 41만 원을 받는다.

지자체 별도지원금은 지자체 재정자립도에 따라 결정된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임금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신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임원선 교수는 관련한 질문에 "연천군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굉장히 낮다"면서 "연천군수가 개선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별도지원금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 설명했다. 사회복지사 입장에선 기약없이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퇴사한 박씨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언제 임금이 오를 수 있을지 늘 막연했다"며 "(차라리) 전망이 좀 더 좋은 일을 찾기 위해 끝내 퇴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즉, 지자체 지원금이 임금 수준에 영향을 주는 구조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0 12월말 기준 전국 지역아동센터 통계조사보고서(링크)'에 따르면, 지자체 별도지원금의 20.8%는 인건비 지원에 쓰인다. 앞서 상반된 지원금 액수를 보인 인천과 광주의 평균 임금 격차는 2020년 기준 34만 원에 달한다. 똑같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어느 지역에서 근무하느냐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원금이 저조한 지역의 경우 연차와 상관없이 급여가 하향 평준화된 기현상도 나타난다. 마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용준 교수는 "일부 지역의 경우 1년 차 종사자 급여와 10년 차 종사자의 급여가 동일하다"며 "시도별 편차의 심각성은 같은 지역 안에서도 드러난다"고 했다.

저임금에 업무과중... 참다못한 사회복지사들이 떠나고 있다
 
인천에 위치한 지역아동센터, 지역아동센터는 지역 사회 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을 대상으로 학업, 돌봄 등 각종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인천에 위치한 지역아동센터, 지역아동센터는 지역 사회 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을 대상으로 학업, 돌봄 등 각종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 이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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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임금이 개선될지 기약 없는 상황에서도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통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전국 지역아동센터는 총 4264개소이고, 총 9309명이 지역아동센터에 종사하고 있다. 반면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동은 10만 6510명에 달한다고 돼 있다. 지역아동센터 종사자 1명이 약 11명 이상의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셈이다.

김용준 교수는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는 돌봄부터 행정, 기획, 자원 연계에 이르기까지 센터별로 평균 2명이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며 "인력 기근 상태에 놓여있는데도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원선 교수 역시 사회복지사들이 업무 과부하로 인해 무리할 수밖에 없는 근무 환경을 지적했다. 임 교수는 "부모가 자녀 한 명 키우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는 혼자서 10명 이상의 아이를 돌보고 있는 셈"이라며 "그런데도 정당한 임금을 제공하지 않는 정부의 보조금 제도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굳어져버린 임금에 과중한 업무까지 떠안으면서 사회복지사들은 지역아동센터를 떠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통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시설장을 제외한 종사자의 근무 기간은 평균 4년 3개월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업무 강도에 비해서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 이직률은 타 시설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라 설명했다. 사회복지사 박씨의 말이다.

"센터에서는 아이들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요. 행정업무는 저녁에 집에서 하거나 주말에 몰아서 하곤 했죠. 엄연한 초과 근무지만 수당은 없었습니다.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은 맞죠. 그런데 일에 치이면서도 발전이 없는 내 모습을 보니 어느새 사명감이 흐려지더라고요."

사회복지사가 일터에 정착하지 못하는 사이, 지역아동센터는 전문성을 잃는다. 그 피해는 지역아동센터의 아동·청소년이 짊어지게 된다. 김 교수는 "열악한 근로조건은 복지서비스의 질과 전문성을 해치는 요인"이라면서 "사회복지사가 정착하지 못하는 상황은 복지서비스의 수혜자인 아동·청소년에게 어떤 형태로든 악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열쇠는 중앙 정부가 쥐고 있다
 
지난 1월18일 국민의힘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가 서울 영등포구 사회복지사협회 간담회에서 청년사회복지사의 발언을 듣는 모습.
 지난 1월18일 국민의힘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가 서울 영등포구 사회복지사협회 간담회에서 청년사회복지사의 발언을 듣는 모습.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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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가이드라인은 보건복지부가 냈지만, 개선 시도는 지자체별로 이뤄지는 상황이다. 지자체별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 엇박자를 내면서 지역아동센터 종사자의 지역별 임금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김 교수는 "보건복지부에서 제시하는 임금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사항에 그칠 뿐"이라며 제도적 빈틈을 지적했다.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이를 방치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건복지부가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만큼, 중앙 정부가 책임지고 임금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자체별로 다른 재정자립도를 고려해 중앙 정부가 부족한 예산을 메워야 한다는 의미다. 임 교수는 "지금처럼 지방 정부에 지자체 별도지원금(지급)을 떠맡기는 한, 재정자립도가 미흡한 지자체는 지역아동센터 인건비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며 "중앙 정부가 나서야만 지역별 재정 편차를 극복하고 임금 가이드라인을 충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의 임금 수준은 단일임금제와 호봉제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교수는 "보건복지부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단일임금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단일임금제를 도입하면 지역마다 벌어진 임금 격차를 단번에 봉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임 교수는 "호봉제를 시행해야 종사자가 오래 근무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며 "지역아동센터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서라도 호봉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임금 개선이 종사자에게 주는 실제 효능감은 크다. 인천의 한 지역아동센터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강아무개(49)씨는 2020년도부터 호봉제에 따른 월급을 받고 있는데, 일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최저임금을 벗어났다고 한다. 그는 "호봉제가 도입됐을 때 드디어 국가가 나를 전문 인력으로 인정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당한 임금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강 사회복지사는 임금 개선에 따른 효과가 선순환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복지사) 처우가 개선되면 아이들도 그 효과를 누려요. 인력도 더 들어올 거고, 무엇보다 기존에 있던 선생님이 아이들을 떠나 이직하지 않겠죠.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함께할 선생님이 있다는 건,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거잖아요?"

강 사회복지사는 임금이 개선된 상황을 두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의 입에서 '너무 늦은 것 같다'는 볼멘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임 교수는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의 임금 문제는 예산도, 시간의 문제도 아니다"라며 "이들의 임금 개선 문제는 결국 중앙 정부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공약만 할 게 아니라,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관련 기사: 윤석열, 사회복지사들 만나 "민간화·경쟁 필요... 코딩 공부해야" http://omn.kr/1wy1b ).

태그:#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 #사회복지사, #아동,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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