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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재학 중인 성공회대학교에 '모두의 화장실'이 생겼다. 성소수자 학생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 학교 내 인권센터 설치 등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 3월, 재학 중인 성공회대학교에 "모두의 화장실"이 생겼다. 성소수자 학생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 학교 내 인권센터 설치 등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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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6일, 내가 재학 중인 성공회대학교에 '모두의 화장실(아래 모장실)'이 생겼다. 모장실은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나 성소수자가 편히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자 장애인, 정혈컵을 교체하려는 여성, 성별이 다른 장애인과 보조인, 어린이와 보호자 등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관련한 언론 보도에는 '국내 대학 중 최초로 설치'란 설명이 붙기도 했다. 

수많은 건물의 화장실 중 딱 한 칸, 그러나 이 공간이 마련되기까지 지난한 투쟁의 시간을 기억한다. 내가 새내기였던 2018년에도 '모장실' 설치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나의 반응은 무관심에 가까웠다. 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도 했고, 나와는 관계없는 일로 미뤄두며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차별과 마주하면 느끼게 될 불편한 감정들을 피하려 내심 일부러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나를 조금씩 바꾼 것은, 이 새로운 공간이 왜 필요한지, 왜 모두를 위해 더 좋은지 그 필요성을 지치지 않은 채 외친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해외에서, 일터에서... 나도 어디에선가는 약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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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회대학교 모두의화장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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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마주하기'를 택하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화장실을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리는 성소수자가 있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 코로나 이후 자동문이 폐쇄되며 건물 출입 자체가 어려워진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관련 기사: 뛰거나, 참거나... 화장실 때문에 외출이 고역인 사람들 http://omn.kr/rldm ).

그런 맥락에서 나 역시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야외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니 거기서 매일같이 겪는 성희롱에서 나를 보호할 방법을 찾지 못하기도 했고, 용모단정 등 면접을 볼 때 여성에게만 붙는 '꾸밈노동' 조건 또한 봐야 했다. 새로운 곳에 갈 일이 생기면 나의 가치관을 어디까지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해야 했고, '당신 페미니스트냐'고 누군가 무심코 던진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긴장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개인만의 일로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이는 차별을 묵인하는 사회구조의 문제이며, 우리 모두에게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커다란 한계는 바로 타자화다. 특정 대상에 대한 시혜, 동정, 멸시는 모두 '배제된 영역'으로 그 대상들을 몰아넣는 행위이다. (...) 남의 일이 '우리의 문제'임을 꾸준히 인식하는 노력은 최소한의 정의일 것이다."
 
책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 속에 나오는 문장이다. 무수한 다양성이 가려진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 얼마나 편협한지에 대해 우리는 고민해볼 필요나 계기조차 없고, 이를 남의 일로 여기며 선을 긋고 살기 바쁘다. 시스템 속에 안전하게 범주화된 채 시혜와 배려를 장착하고 '나는 차별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여기는 게 가장 안전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시위를 두고 오가는 이야기만 보더라도 그렇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동권 투쟁이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차별의 역사 앞에서 그의 말이 얼마나 기만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그동안 사람들로 빼곡한 출근길 지하철에, 휠체어를 타고 나갈 수나 있었을까?

이준석 대표 말대로라면, 휠체어 장애인은 그 시간에는 영영 지하철을 이용하지도 말라는 얘기인 걸까? 국가의 역할은, 사람들의 혐오를 조장해 싸움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질문에 응답하는 일이다. 또한 우리의 역할은, 타인이 겪는 혐오와 차별을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며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은 그 바탕이 돼줄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21일 서울 중구 2호선 시청역사 내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21일 서울 중구 2호선 시청역사 내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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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은 다른 것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같은 세상을 누릴 수 있어야 하며, 그 권리를 누군가 억지로 빼앗을 수 없다는 요구를 할 뿐이다.

나에게 차별금지법은 그러하다. 내가 어떤 이름으로 살든, 누구와 만나 누구와 살든, 어떤 직업을 갖든, 혹은 언젠가 나의 몸이 아프더라도 그 때문에 내 세상이 좁아지지는 않는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만으로 두려움에 떨거나 기회에서 부당하게 박탈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모두가 있는 그대로 더 다채로운 도전과 상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글은 그런 세상에서 당신과 기꺼이 함께하고 싶은 나의 초대장이다. 하나 하나 맞잡은 손들이 이어져, 어떤 고립된 한 사람에게는 멀게 느껴지고 수만 번의 걸음이 필요한 곳에도 모두의 한 발짝으로 가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태그:#모두의화장실,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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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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