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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로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은 우리들의 일터가 한 사람의 삶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을 증언한다. 그들의 죽음은 왜 그리고 어떻게 그들의 일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몰아갔는지를 남은 자들에게 질문한다. 이로써 치열한 삶을 살다 스스로의 죽음을 통해 그 일터의 문제를 고발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그가 바라던 일터와 세계에 대해 남은 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경영 합리화라는 조직적 괴롭힘

"다음 생에는 버스 기사가 대우받는 곳에 태어나고 싶다."

2014년 4월 30일, 노동절을 하루 앞둔 날이자 행정법원의 부당해고 판결을 10시간 앞둔 전북 신성여객의 버스 기사 진기승은 마지막 글을 남겼다. 하루 15~16시간의 노동과 저임금, 그럼에도 조합원의 권리를 외면하는 어용노조.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해 민주노조(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한 지 4년 만의 일이다.

민주노조 가입 후 회사의 교섭 회피와 그에 따른 쟁의 행위가 이어졌고, 회사는 노동자에 대한 고소, 고발과 해고를 일삼았다. 2012년 11월 해고된 진기승은 사내 징계위 회부-해고-지노위 구제신청-복직-징계위 재회부-2차 해고-지노위 부당 해고 결정-중노위 부당해고 결정 번복-행정 소송에 이르기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악순환에 2년째 갇혀 있었다.

해고를 당한 많은 노동자들이 그러하듯 그는 생계의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자본은 이를 빌미로 노동자에게 모멸감을 안겼다. 복직을 위해서 회장 앞에서 무릎을 꿇으라, 노조를 탈퇴하라, 다른 직종으로 복직시켜줄테니 노조를 탄압하는 역할을 하라. 자본은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노동자의 존엄을 먼저 파괴하고자 했다.

2017년 9월 근로복지공단은 "부당해고 과정에서 사업주에 의한 굴욕 등의 정신적 부담이 유발한 스트레스가 있다고 보인다"며 진기승의 죽음을 "업무적 요인으로 발생한 사고"로 보고 이를 산재로 인정했다.

2015년 5월,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EG테크분회장이자 당시 유일한 조합원이었던 양우권이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2006년 분회를 만드는 과정에 적극 참여했고, 2010년 5월부터는 분회장으로 활동했다.

사내하청업체에서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노조 설립 초기부터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특히 그가 법원의 부당해고 판결로 2014년 5월 복직해 쓴 일기에는 회사의 직무변경, 부당전보, 감봉처분, 무기한 작업대기, 따돌림 등 가혹한 탄압과 그가 느꼈던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노사혁신 프로젝트'란 책을 보고 있다. 글자가 흐려지고 눈물이 나서 책을 보지 못하겠다. 정말 미쳐버리겠다(2014.07.22). 오늘도 외로운 전투가 시작되었다. 감시카메라. 감시카메라. 감시카메라. 머리가 너무 아프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2014.07.11). 회사가 지금 내게 하고 있는 행위는 명백히 부당노동 행위다. 이렇게 괴롭히면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하고 물러날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2014.08.13.)."

양우권의 죽음에 대해 2016년 6월 근로복지공단은 "해고와 복직이 반복되는 과정, 복직 후 이어진 사용자의 법적 대응 및 징계처분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업무와 관련한 우울증이 발생"하여 악화됐다며 산재로 인정했다.
 
2019년 열린 한광호 열사 3주기 집회
 2019년 열린 한광호 열사 3주기 집회
ⓒ 호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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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유성기업은 2009년에 노동자들과 했던 노동시간 단축과 야간노동 근절을 위한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에 대한 합의를 깨고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리고는 조합원들에 대한 집요한 탄압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우울증과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었다.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 또한 다섯 차례(11건)에 걸친 고소고발을 당했고, 사측 관리자들에 의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두 번의 부당징계가 있었으며 2016년 3월 스스로 생을 마감할 당시에는 세 번째 징계가 추진 중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같은 해 10월, 고인이 "수년간 노조 활동과 관련한 갈등으로 인해 우울증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고인의 죽음을 '업무상 질병'에서 기인한 죽음으로 인정했다.

이 세 노동자의 죽음은 얼핏 그럴 듯해 보이는 "경영합리화", "노사관계 안정화" 같은 말들이 누군가를 삶의 벼랑으로 내모는 구조적인 폭력임을 고발한다. 그들의 죽음 뒤에는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생계를 압박하고, 노노 갈등을 유발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 징계, 경고장을 남발하고, 손해배상 청구와 형사 고소를 일삼고, 일상적 감시와 통제를 하는 등 노동자를 괴롭히는 사측의 공공연한 매뉴얼이 존재한다.

여기에 맞선 노동자들의 죽음은 노조탄압의 한 방식으로서의 조직적인 괴롭힘에 대한 증언이었다. 이들의 죽음은 노조파괴가 노동자들의 삶과 정신건강을 파괴하는 데 미치는 막대한 영향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카메라 뒤에 빛을 몰고 오다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어요. (중략)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2016년 tvN에 입사한 9개월차 PD는 카메라 뒤의 사람을 이야기하며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촬영에 투입된 55일간 고작 이틀을 쉬고, 하루에 3~4시간 쪽잠을 자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으며 정규직 직원으로서 해고된 외주업체 노동자들의 계약금을 환수하는 일을 하면서 고통스러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죽음은 사람들이 잠시나마 고단한 삶을 잊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보는 드라마가 카메라 뒤 사람들의 삶을 착취한 결과로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조명했다.

만드는 사람이 행복한 드라마 현장을 꿈꾸었던 이한빛 PD의 유지를 받들어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방송사 및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지만 그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던 취약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업계 관행'이란 말로 묵인되어 오던 방송 제작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더불어 그의 죽음은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와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와 같은 방송계의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간호사를 연료로 태우는 병원

2018년 2월, 입사한지 5개월 된 서울아산병원의 신규 간호사였던 박선욱은 "하루에 서너 시간의 잠과 매번 거르게 되는 끼니로 인해 점점 회복되지 않았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근로복지공단은 그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하며 "간호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로 직장 내에서의 적절한 교육 체계 개편이나 지원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자기 학습과정에서 일상적인 업무내용을 초과하는 과중한 업무를 수행한 것"을 고인의 죽음의 원인으로 보았다.

박선욱 간호사의 사망은 그 해 7월 정부가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을 발표하는 단초가 되었다. 사업장 내 신고제도 마련 및 사용자 조사의무 부과, 국가 기관 신고창구 일원화, 법령위반 시 고용부 등의 직권조사 등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해 말, 직장 내 괴롭힘을 정의하고 이를 방지하는 내용을 포함해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었고 2019년 7월 시행을 앞둔 2019년 1월 서울의료원의 7년차 간호사인 서지윤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다.

2013년부터 서울의료원에서 일했던 서지윤은 업무과중, 잦은 근무표 변경과 불합리한 근무 일정, 야간근무 문제로 관리자들과의 숱한 면담 끝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간호행정부서로 배치되었다. 부서이동 후 그는 업무에 필요한 사무기기 및 책상을 제공받지 못했고, 응급수술 및 시술을 바로 준비해야 해서 높은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당일 병동으로 파견을 가는 등 불공정한 업무 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간호사의 죽음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우는' 태움의 주체가 간호사들 개인이 아닌, 노동자를 연료로 태우며 돌아가는 병원 구조라는 것을 조명했다. 그리고 이 속에서는 신규간호사도 경력간호사도 모두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산재로서의 자살, 일터를 지옥으로 만든 자들에 대한 고발

근로복지공단은 2005년부터 업무상 질병의 범주에 '정신질환'을 신설하여 노동자의 정신질환과 자살 건을 심의해 오고 있다. 신체 사고나 질병 위주의 산재에서 노동자의 정신적 부담이나 질병으로까지 산재의 영역이 확대된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발효되고, 산재보상의 영역도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기업은 노조원들에 대한 탄압을 멈추지 않고 있고, 방송계와 병원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으며, 정부 또한 강제성이 없는 제도들을 발표하는 데 그치고 있다. 노동자가 자살한 기업은 여전히 그의 나약함을 문제 삼거나 개인적인 치부를 들춰내 업무와 죽음과의 연관성을 부정한다.

누군가가 목숨을 끊음으로써 문제를 드러낸 그 일터는 모두에게 위험한 일터임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앞선 죽음들은 극단적인 사례로 남지 않고, 산 자들이 '나도 ○○○다'를 외치며 투쟁에 나서게 했고, 제도적 변화를 남겼다.

이들의 삶, 죽음은 노동자의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존엄이 파괴되지 않도록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 일터에서 자신의 영혼을 팔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노동자의 자기 결정권이 보장된 사회를 만들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것이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류한소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4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노동자_자살, #노동자_정신_건강, #직장_내_괴롭힘, #산업_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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