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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동산 입구는 소나무 숲길이다.
▲ 묘향동산 입구 묘향동산 입구는 소나무 숲길이다.
ⓒ 이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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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묘향동산은 가본 적은 없지만 귀에 익은 곳이다. 의림지 인근 모산동 384-15번지에 자리한 야트막한 산(425m)이다.  

들머리 찾기가 쉽지 않다. 묘향동산을 속속들이 알고 계시는 분께 연락 드려 입구를 찾았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난처하다. 실례인 줄 알지만 방법이 없어 근처 식당 사장님께 사정 얘기를 하고 차를 세웠다. 이곳은 지역에서 유명한 중국음식 전문점이다. 빨리 돌아오겠노라는 약속을 하고 출발한다. 등산로 초입에 '묘향동산 평안도민회'라고 적힌 녹슨 표지판이 긴 세월을 알려준다.

좁은 오솔길이다. 나무 그늘에 봄볕이 자취를 감춘다. 나무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에 어린잎이 반짝인다. 모퉁이를 지나니 볕 잘 드는 곳에 묘지가 즐비하다. 따뜻한 볕에 묘지는 황금빛으로 가득하다.  

'이런 길이 좋다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조금 지나자 기념비인듯 세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의아한 마음을 풀 수 있겠다는 생각에 빠르게 비문을 읽어 내려간다. 

'아하! 그렇구나.' 

궁금증이 해결되며 깊은 심호흡을 한다. 이곳 묘향동산은 정병원 원장이셨던 정관옥 박사께서 평안도민의 안식처로 기증하셨다고 한다. 그 후 이순각 장로는 진입로를 기증해 주었다. 두 분의 뜻을 전하기 위한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이곳이 볕이 좋은 이유는 실향민의 애달픈 심정을 다독여 주신 정 박사님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리라. 어쩌면, 눈 감아서야 고향을 찾아 떠나는 그들에게 아무 걱정 말고 잘 가라고 손 흔들어 주시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 묘를 지나자, 나무 그늘이 시작된다. 나지막하던  새소리도 찌르르 짹짹 높아진다. 꽃망울 터뜨린 진달래는 수줍음에 양 볼이 빨갛고 노란 생강나무 꽃은 올망졸망 모여 봄잔치가 한창이다. 

쉼터에는 몸을 풀 수 있는 운동기구와 쉬어 갈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운동나온 모녀의 모습에 보는 내가 흐뭇하다. 산길은 오르막과 내리막 평지가 적절하게 섞여 남녀노소 누구나 운동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췄다.
 
갖가지 운동기구와 의자가 있어 편리하다.남녀노소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이다.
▲ 묘향동산 쉼터 갖가지 운동기구와 의자가 있어 편리하다.남녀노소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이다.
ⓒ 이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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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길 평지를 지나  울퉁불퉁 돌이 박혀 있는 너덜길로 들어선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 자세를 바르게 하고 발을 높이 들었다 내려 놓는다. 돌만 밟고 걷기, 돌은 피해서 걷기 등 어릴 때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펼쳐진 놀이가 생각나 돌만 밟고 건너기를 해본다. 

우거진 숲을 지나 능선에 오른다. 햇볕 가까운 곳에 오르니 엔도르핀이 쏟아진다. 하늘을 나는 새처럼 양팔을 활짝 펼치고 눈을 감는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소리, 눈을 뜰 수 없게 하는 눈부신 봄 볕, 새 소리, 벌레 소리. 제대로 호강하는 날이다. 

눈을 떠 제천 시가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는다. 온몸으로 햇볕을 쬐며 소인국이 된 시가지를 내려다본다. 높은 빌딩부터 단독주택까지 천차만별인 소인국 여기 저기가 어디인지, 내가 알고 있는 거기가 맞는지. 

제천명지병원 쪽, 장락동 아파트 촌. 사방을 둘러보니 오솔길이 있다. 고암동 둔전골 소류지가 보인다. 숨을 '헉헉' 대며 운동을 하는 분을 만났다. 의림지나 대도사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둘레길을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심 주변에 이렇게 편안한 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좋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너그러운 맘으로 들머리로 향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천단양뉴스(http://www.jdnews.kr)에도 실립니다.


태그:#제천단양뉴스, #이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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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신문에서 25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2020년 12월부터 인터넷신문 '제천단양뉴스'를 운영합니다.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다짐합니다. 언론-시민사회-의회가 함께 지역자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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