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집 마굿간에서 대여한 타자기를 놓고 타자 연습을 하는 수잔

부모님 집 마굿간에서 대여한 타자기를 놓고 타자 연습을 하는 수잔 ⓒ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는 1962년의 프랑스의 두 젊은 여성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로부터 10년 후, 1972년 낙태 법정 앞 시위대에서 우연히 재회한 두 사람은 서로 가까워지고, 영화는 노래하는 여자 폴린느와 노래하지 않는 여자 수잔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여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우리의 첫 월급은 소중하다

노래하는 여자 폴린느가 어느 가수의 코러스로 일하며 생애 처음으로 받은 월급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영화에서 인상 깊은 몇 장면 중 하나이다. 첫 월급을 타는 날,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마음을 표현했던 우리의 모습처럼 폴린느는 환한 얼굴로 수잔과 그녀의 자녀들이 있는 곳을 향해 간다. 미혼모인 수잔은 힘겨운 삶에서 자신을 지지해주고 옆을 지켜주는 폴린느에게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고마움을 느끼며 용기를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일만 하자. 그래야 살아남는다."
 
두 아이와 함께 농촌 고향으로 간 수잔은 넉넉지 못한 부모님 집에서 최대한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낮에 일하고 밤에는 타자 연습을 한다. 여성들의 일자리 참여를 높인 타자기, 여성을 해방시킨 그 타자기를 들고 수잔은 눈치 받지 않을 자신만의 공간, 마굿간에서 하염없이 타이핑 연습을 해나간다.

이윽고 수잔은 드디어 부모님 집의 무급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유급 노동을 시작하게 된다. 장난감 공장에 취직하고 첫 월급을 받으면서 이 기쁨을 멀리 있는 폴린느에게 엽서를 보내는 장면도 잊지 못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폴린느, 나도 어딘가 소속된 느낌을 갖게 됐어." 폴린느가 첫 월급을 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달려가 기쁨을 나눴듯이 수잔 역시 월급봉투를 쥐고 그녀의 두 자녀에게로 달려간다. 

"얘들아 너무 좋구나! 이 돈 보이니?" 

한편, 노래하는 여자 폴린느는 악단을 꾸려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만드는 일을 해나간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과 함께 예술 활동을 하는 게 좋아서 시작한 그녀이지만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을 폴린느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반복되는 무보수의 연속으로 지친 악단 단원들, 불투명한 정부 보조금, 말라 버린 돈줄 앞에서 폴린느는 점점 열의를 잃어 가고 사람들과 불화가 거듭된다.

여기서 잠시,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향해 흔히 던지는 열정 페이는 과연 정당한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돈을 바라는 건 아니지 않은가?, 예술 활동을 노동이라고 볼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이 논의에 대해 매우 확고한 답을 내 놓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복잡다단한 문제이기에 쉽게 답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2011년, 빈곤으로 인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으로 드러난 문화예술계 노동자들의 빈곤 문제에 관해선 구분 없이 우리는 하나의 답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녀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월급을 받을 때의 기쁨을 누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기라도 한 걸까. 
 
끝나지 않는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
 
 가정 내에서 여성의 가사노동에 관해 공연 중인 폴린느

가정 내에서 여성의 가사노동에 관해 공연 중인 폴린느 ⓒ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다시 수잔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장난감 공장에 취직하기 전까지 수잔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 초입부에 수잔은 어린 아이들을 계속 돌보고 양육하지만 아이들의 아빠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양육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별 이후에도 아이들을 키우는 수잔의 가사 노동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녀는 낮 시간엔 새로 일을 시작하게 된 가족계획센터에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엔 가사 양육 노동을 하는, 워킹맘의 생활을 고독하게 헤쳐 나가고 있다. 
 
폴린느는 페미니스트 남성을 만나 서로를 의지해가며 악단 생활을 버텨내고 있었지만, 악단 동료들과의 마찰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이때 폴린느의 애인이 자신의 고향, 이란으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고 제안해 둘은 이란으로 떠나게 된다.

복선이었을까? 폴린느의 말을 빌리면, 페미니스트라 여겼던 남성은 이란으로 환경이 바뀌자마자 여느 남성들처럼 자연스럽게 가부장으로 돌변한다. 인형의 집에 갇혀 가사일을 하며 지내고,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여성 차별적인 이란 사회에서 폴린느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다. 

꿋꿋하게 살아가는 우리 난초들

악단에서 자신과 뜻을 같이한 동료, 친구들과 함께 폴린느는 '난초들'이란 이름으로 순회공연을 새로이 시작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이르게 되면 난초들의 멋진 공연들을 연달아 만날 수 있는데,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말했지. 가정에서 남자는 부르주아, 여자는 프롤레타리아" 노래와 연극은 통쾌함과 유쾌함을 주고 있어 모두에게 한 번 쯤 권하고 싶은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피로 누적에 박한 임금, 초과 노동에 시달리며 사는 우리 그리고 가엾은 엄마' 가사 역시 잊혀지지 않는 장면 중 하나이다. 이렇듯 영화는 폴린느와 수잔을 통해 가정 내에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여성들의 노동과 사회에서 임금 노동을 하는 여성들의 노동을 담고 있다. 또한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진 않았지만, 임신중지 수술, 여성의 재생산 권리가 영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 나온다.

그리하여 감독 아녜스 바르다는 여성 노동과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결코 떨어뜨려 놓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비바람이 치더라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난초와 같은 삶을 살아간 폴린느와 수잔을 만나고 싶다면 이 영화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소형 님이 쓰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지 일터 4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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