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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에서 묘지 작업자들이 부차 마을에서 살해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시신을 안치소로 이송하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 러시아군이 이달 초 퇴각할 때까지 한 달가량 장악했던 부차에서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22.4.7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에서 묘지 작업자들이 부차 마을에서 살해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시신을 안치소로 이송하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 러시아군이 이달 초 퇴각할 때까지 한 달가량 장악했던 부차에서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22.4.7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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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50일이 다 돼 간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러시아가 침공한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23일까지 어린이 81명을 포함한 민간인 977명이 사망했고 어린이 108명을 포함한 민간인 1594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지 사정상 이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러시아군에게 무차별 폭격을 당하고 있는 남동부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에 따르면 현재까지 마리우폴에서 210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5000명의 주민이 숨졌다.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군 제36해병여단은 11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를 통해 "탄약이 바닥나고 있어 오늘이 아마도 마지막 전투가 될 것 같다"며 마리우폴이 함락 직전임을 밝혔다. 4월 1일에는 우크라이나 북부 소도시 부차에서 러시아 군이 민간인 수백 명을 학살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같은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에 미국은 '전쟁범죄'라는 공식적 판단을 발표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3월 23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는 현재 입수 가능한 정보에 근거해, 러시아군 구성원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우리의 판단은 공개적인 또는 정보 경로를 통해 입수 가능한 정보에 대한 주의 깊은 검토에 근거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차에서의 민간인 학살이 공개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4일(현지시각) 기자들에게 "부차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지 않았냐"며 "이는 그(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를 전범으로 규정하는 게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푸틴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해, 푸틴 대통령의 전범 재판 회부를 추진할 뜻을 밝혔다. 유엔 인권이사회도 전쟁범죄의 책임을 물며 러시아를 퇴출시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세계는 이렇게 반응하고 있다. 

썰렁한 젤렌스키 화상연설장... 기립박수도 없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각 정당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각 정당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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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화상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박지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화상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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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침공에 맞서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세계 각국의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향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3월 1일 유럽연합(EU) 특별회의에서의 화상 연설을 시작으로 8일 영국, 16일 미국, 17일 독일, 20일 이스라엘, 23일 일본, 23일 프랑스 등 세계 23개국에 우크라이나를 향한 지원과 함께 러시아를 향한 경제제재를 더욱 강화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11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이 열렸다. 그런데 화상 연설이 실시된 다른 국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먼저 장소부터 달랐다.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일본 등은 모두 각국의 국회의사당에서 화상 연설을 진행했다. 반면 한국은 국회도서관의 지하 강당에서 진행됐다.

인원 수도 차이가 많이 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 당시 총 의원 수의 대다수가 참석한 반면 한국은 원내정당의 지도부까지 포함해 총 50여 명밖에 모이지 않았다. 다른 국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기립박수 역시 없었다.

잠시 생각해보자. 향후 러시아와의 관계나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에 대해 다른 국가들 역시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아이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군대의 무차별 폭격에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대의, 침략전쟁에 대한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을 허락하고 그 중요도를 감안해 대다수의 의원들이 참석해 그의 연설을 경청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땠는가. 300명에 달하는 의원 중 참석한 이들은 절반은커녕 20%도 되지 않는다. 대체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한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한 16개국의 병사들은 한국과 무슨 연관성이 있어서 부지불식의 극동 땅에 왔겠는가. 에티오피아와 볼리비아가 무슨 상관이 있어서 한국에 병력을 파병했겠는가. 국제사회의 협력 덕분에 겨우 기사회생한 한국의 국회가 어떻게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에 이런 반응을 보일 수가 있나.

케냐 대사의 품격과 한국 국회의 품격
 
 21일 유엔안전보장이사 회긴급회의에서 마틴 키마니 주유엔 케냐 대사가 연설하고 있다.
  21일 유엔안전보장이사 회긴급회의에서 마틴 키마니 주유엔 케냐 대사가 연설하고 있다.
ⓒ The Guardian 유튜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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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1일 열린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마틴 키마니 주유엔 케냐 대사의 연설이 국제적인 화제에 올랐다.

이 연설에서 키마니 대사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민족이나 종교를 감안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그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경선을 언급하면서 '그럼에도 아프리카는 과거의 위험한 향수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생각해 그러한 국경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민족적·문화적 동질성을 내세우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키마니 대사는 자국의 아픈 역사를 지금의 현실로 소환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우아하게 비판했다. 한국의 국회는 왜 그런 얘길하지 못하는가.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국 역시 북한의 침공으로부터 버텨내기 힘들었을 것이라 얘기하며 이제는 우리가 그 빚을 국제사회에 갚아야 할 때라고 왜 당당히 얘길하지 않는 것인가.

대한민국 국회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을 이런 식으로 대우한 것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한국의 역사를 감안한다면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태그:#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침공, #국회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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