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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재단 사람은 29일 오후 서울 낙원동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들, 인권활동가가 답하다' 보고회를 열었다.
 인권재단 사람은 29일 오후 서울 낙원동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들, 인권활동가가 답하다" 보고회를 열었다.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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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 동안 인권 문제를 돌아본 인권운동가들이 "지금은 '뉴노멀'을 거론할 때가 아니라 소수자에게 고통을 전가한 공동체를 어떻게 다시 세울지 고민할 때"라며 "반성없이 지나면 이 재난은 또 반복된다"고 경고했다.

인권재단 사람은 29일 오후 서울 낙원동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들, 인권활동가가 답하다' 보고회를 열고 의료·성소수자·정보인권·이주민·난민·장애 등 분야 인권활동가 11명의 지난 2년 평가를 들었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1부 강연을 열며 코로나 시기를 빗댄 '지금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표어를 "명백한 거짓말"이라 말했다. "풍랑치는 바다에 같이 있을 뿐 모두 다 다른 배를 타고 있기에,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에겐 고통이었다"며 이 모습이 지난 2년 간 한국이 겪은 팬데믹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요양시설,  정신건강증진시설, 장애인거주지설 등 집단거주시설이 단적인 예다. 한 방에 수십 명씩 거주하는 시설 특성 탓에 집단 감염이 속출했다. 2020년 2월 정신장애인시설 청도대남병원에서 입원 환자 2명을 뺀 101명이 집단 감염되고 4명이 사망하면서 취약한 집단 시설 실태를 드러냈다.

지금 같은 대유행을 대비하지 못한 의료체계 때문에 사망한 최근 사건 중에도 취약집단의 피해가 두드러진다. 지난 2월19일 경남 창원에 살던 한 확진자 산모는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헬기를 타고 제주대병원에 긴급 이송됐고, 광주의 한 40대 중증장애인은 지난 12일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확진 판정 5일 뒤 숨졌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를 하던 한 22살 베트남 유학생은 격리 중 폐렴 증상을 호소하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지난달 6일 사망했다.

임승관 병원장은 "코로나를 겪은 후 한국 사회에 노인 요양 시설, 장애인 시설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난 2년 간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코로나 뉴노멀'(코로나 시기 새롭게 출현한 삶의 방식을 뜻하는 신조어)을 말할 게 아니라 노동, 젠더, 장애, 노인요양시설 등에서 나타난 비정상이 뭔지, 정상으로 돌리는 게 뭔지를 아는 게 우리가 배워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감염자 가해자·위험요소 낙인 찍은 코로나 초기
 
연일 혹한의 추위에 함박눈까지 내리는 2021년 1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지하도에서 거리홈리스이 종이 상자를 이부자리 삼아 추위를 피하고 있다.
 연일 혹한의 추위에 함박눈까지 내리는 2021년 1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지하도에서 거리홈리스이 종이 상자를 이부자리 삼아 추위를 피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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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채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한국 사회가 반성해야 할 쟁점으로 코로나 팬데믹 초기부터 시작됐던 '확진자 범죄화'를 꺼냈다.

"9분 간 격리장소에서 20m 떨어진 화단에 있었다고 벌금 30만원. 아버지를 돌볼 사람이 없어 같이 병원을 가 격리의무를 위반했다고 벌금 150만원.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지인을 만나러 나갔다가 벌금 50만원에 징역 4월의 집행유예. 자가격리 중 회사 출근 지시로 출근해 벌금 200만원. 생활지원비 신청 위해 관련 센터를 들렀다고 벌금 400만원."

서 변호사는 "확진자의 방역 조치 위반 사례는 대부분 자극적 소재만 알려졌으나 실제 현장에선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이들에게 더 가혹한 방식으로 적용돼 왔다"며 "감염병에 걸린 사람을 사회에서 가해자 혹은 위험한 존재로 분류해 낙인찍고, 국회는 고의·중과실로 감염병을 전파하면 가중처벌한다는 법 개정까지 신속 통과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인권운동사랑방의 몽 활동가는 백신 미접종자를 향한 차별적인 시선에 대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지역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오랜 차별과 불평등, 방치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라며 "나에게 이상이 생겨도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기저에 있다. 국가에 이 책임을 묻는 과정이 향후 인권운동에서 중요해보인다"고 덧붙였다.
 
시설 코호트 격리, 팬데믹 3년차에 또 반복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이 29일 오후 서울 낙원동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열린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들, 인권활동가가 답하다' 보고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이 29일 오후 서울 낙원동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열린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들, 인권활동가가 답하다" 보고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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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와 비확진자를 함께 시설에 격리한 '코호트 격리'는 이번 오미크론 유행기에도 반복됐다. 특히 요양원이 확진자가 발생하면 사실상 코호트 격리 상태로 운영되면서, 지난 2월20일부터 한 달 간 요양병원·요양원 523곳에서 2만 2048명의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3월 11~17일 간 사망자 1835명 중 요양시설 사망자수는 647명(35.3%)이나 된다.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독립생활센터 숨 소장은 2020년 12월 76명이 집단감염됐던 장애인시설 신아원 사례를 들며 "당시 끈질기게 문제제기해 거주민들이 (다른 병원 등으로) 긴급후송 조치 됐으나 3일 만에 재입소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긴급분산조치를 요구하지만 지금 이걸 시행하고 이는 지자체는 거의 없다"며 "시설이 없어지지 않는 한 코로나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정보인권 침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뉴노멀'로 고착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올해 1월부터 부천시가 추진키로 한 'AI 얼굴인식기술 기반 확진자 동선 확인시스템'이 그 예다.

장 상임이사는 "공공 CCTV로 확진자 사진을 리포트하면 얼굴을 인식해 확진자 길거리 동선을 자동 추적한 다음, 확진자와 2m 간격 내 사람들을 자동 식별하고 이들의 마스크 착용 여부도 판단한다. 전화 기지국에서 접촉자 전화번호도 확인해 추적하는 시스템"이라며 "이 경우 어느 선까지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한 우리 사회 합의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노숙인·이주노동자, 관련 기관 종사자 등 24명을 인터뷰해 인권보고서를 발간한 랄라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이용하던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홈리스, 길거리 행인들이게 '치워주세요'라는 말을 들은 홈리스, 건강보험이 없어서 코로나 시기 임신·출산 말고는 병원을 가지 못했다는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만났다"며 "2022년 재난 시기 지자체에 인권 존중·보호·증진·충족 4대 원칙을 제시하고, 구체적 책무를 담은 '재난약자지원조례'가 제정될 수 있도록 제정운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승관 병원장은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대비하지 못한다. 지난 2년 간 팬데믹 동안의 모든 일들이 이와 같았다"며 "파도(유행 시기)가 친다면 진짜 해야 할 일은 '이제와서 어쩔 수 없네'가 아니라 그 다음 파도가 칠 때까지 잔잔한 수면 사이에서 다음을 대비하는 일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파도와 파도 사이에서 전력을 다해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인권재단 사람, #코로나 시기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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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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