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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학교에 없던 노동자들이 있다. 급식노동자도 있고, 초등돌봄전담사도 있다. 요즘 학생들은 기본 교과 외에도 다양한 것들을 배운다. 무용도, 애니메이션도 배우는데, 이것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바로 예술강사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예술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정부 지원으로 예술강사 노동자들이 학교에서 일을 한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예술강사로 근무하는 김세용씨를 만났다. 마침 사무실을 찾아간 날은 김세용씨가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에서 새로 입주할 사무실을 계약한 날이었다. 텅 비었지만, 인터뷰를 위해 급히 준비해주신 접이식 의자 2개뿐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학교에서 국악을 가르치는 예술강사 김세용씨
 학교에서 국악을 가르치는 예술강사 김세용씨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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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예술 교육하는 전문가

예술강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부터 물었다.

"예술강사는 국악, 연극, 무용,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공예, 사진, 디자인 8개 분야로 나뉩니다. 국악, 연극, 무용 분야는 교과 시간에 편성되는데, 그 밖에 나머지 분야는 교과 시간이 아니라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이나 돌봄 시간으로 편성돼요. 학교의 음악, 체육교사 등이 가르치기 어려운 8개 분야는 예술 전문가를 초빙해서 학생들에게 교육하게 하는 시스템이죠. 저는 초·중·고 학생들에게 국악을 가르칩니다. 초·중·고 음악교과서의 민요, 단소, 소고, 전통놀이, 탈춤, 장구, 사물놀이, 국악이론을 정규수업시간에 가르칩니다."

김세용 님은 어떤 계기로 예술강사 일을 하게 됐을까.

"저는 본래 국악연주자(사물놀이와 비나리)입니다.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아서 시작했어요. 내년에도 또 와서 수업해달라고 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강사 선발 절차에 따른 자격시험에 통과하고, 이후 문화예술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예술가로서 생계가 어려운 분들이 많아서 예술교육활동을 겸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택배, 퀵서비스, 식당아르바이트 등 일용직으로 일하며 부족한 생계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술강사가 아닌 방과후 강사 업무를 따로 학교와 계약하여 일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김세용씨 같은 예술강사들을 관리하는 기관은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설립된 공공기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다. 복지관 등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사회 예술강사도 있지만, 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학교 예술강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각 교육청과 MOU를 체결하여 예술강사를 학교로 파견한다. 

"예술강사는 진흥원과 계약을 맺어요. 계약은 대개 1년에 한 번 맺는데 보통 2월에 체결해요. 3월부터 12월까지가 계약기간이죠. 물론 그 가운데 여름방학은 수업이 없으니, 실질적으로 꽉 채운다고 해도 9개월이라고 보시면 돼요. 월 59시간으로 계약을 해서, 실제 한 달에 59시간 안쪽으로 일하게 됩니다."

월 59시간 넘으면 안 됩니다, 초단시간 노동자

동시에 여러 학교에서 근무하지만 합쳐서 월 59시간만 근무할 뿐이다. 노동시간을 너무 적게 정해놓는 건 아닐까. 이러면 법정 초단시간 노동자가 될 텐데.

"맞아요. 월 59시간이면 주 14시간인 셈이잖아요. 퇴직금은 물론, 주휴수당, 연차 유급휴가도 없고요. 또 4대보험 가운데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은 가입되는데, 건강보험이 없어요. 정확히 얘기하면 초단시간노동자는 직장 건강보험 가입 예외 대상이에요."

직장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데, 초단시간 노동자 예술강사노동자의 건강권은 과연 지켜지고 있을까.

"병가는 물론 없고, 제도가 갖추어져서 권리로서 쉬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사정해서 재량으로 쉬게 하는 거죠. 실제로 저도 수술하고 며칠 만에 깁스하고 학교 가서 수업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제 몸이 불편한데 제대로 수업이 될 리가 없죠. 코로나19 백신도 교사들은 우선 접종 대상이었잖아요. 여기에도 예술강사는 포함이 안 되어서 저희가 계속 민원을 내고 전화하면서 싸운 다음에야 교육청에서 학교별로 우선 접종 대상자로 등록했지요."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강사들이 건강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공중 보건은 너무 먼 이야기 같았다. 제대로 쉴 수 없는 노동환경에 관해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병가도 병가인데, 경조사 휴가가 없는 점에서도 참 모멸감을 느낍니다. 그때그때 개별적으로 예술강사 노동자가 적당히 말 잘해서 수업을 빠지는 수밖에 없어요. 출산휴가도 제한적으로 받고 있어요. 겨울방학 때는 계약기간이 아니잖아요. 그때는 아이를 낳아도 출산휴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수술 후 며칠 만에 다시 수업에 나선 예술강사 김세용씨
 수술 후 며칠 만에 다시 수업에 나선 예술강사 김세용씨
ⓒ 김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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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강사의 노동조건에 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월 59시간, 그러니까 저희는 시수라고 하는데요. 59시수 안으로 스케줄을 잡아야 해요. 기본적으로 학교 담당 선생님과 논의해서 잡는데, 언제 어떻게 예술수업을 할지 강사는 조절하기 어려워요. 그러다 보면 다 맞추기 어려우니까 59시수를 초과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초과분의 임금이 지급되지 않아서 한참을 싸웠어요. 임금 체불로 1년 넘게 싸웠는데도, 시수는 바뀌지 않아요. 진흥원은 제한된 59시수를 넘어서 일해서는 안 되고, 그에 해당하는 급여도 지급하지 않는다고 하는 겁니다. 행정 편의적으로 그냥 초단시간 노동자로 제한하려 할 뿐, 실제 '문화예술교육을 진흥'하는 데 노력하지 않습니다."

진흥원, 학교, 교사 등 협의할 대상도 많아 보였다.

"최초 출강일 이전에 학교나 기관과 협의를 진행하여 협의 결과서를 제출하고, 월별 시수 계획서도 제출합니다. 계약에 따라 근무가 시작되면 학생들과 함께 예술분야 수업을 진행해요. 퇴근 후 사업주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온라인 시스템에 작성한 수업일지를 날짜별 단원별로 올립니다.

학교의 경우 학사일정에 맞추어 수업을 진행하며 학교 담당교사와 협의, 협력하는 관계입니다. 보통 학교 담임선생님과 협력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술 전문 분야이며 현장예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수업을 주도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끔 학교 담당교사나 담임교사에게 부당한 요구를 당하기도 합니다. 정해진 수업 외 학생평가나 공개수업을 진행하거나 담당, 담임 교사가 해야 할 연구활동 자료를 요구받기도 합니다."

각각의 예술강사가 어떻게 수업 시간을 배정 받는지 좀 더 상세히 듣고 싶었다.

"처음 발령된 학교는 일방적으로 학사 일정에 따를 수밖에 없죠. 그때그때 다 다릅니다. 어떤 때는 그냥 커리큘럼을 짜놓고, 강사와 협의도 없이 막 강의시간을 잡아요. 예를 들어, 한 학교에 발령받아서 5개 반을 반 별로 하루 3시간 수업하고 주 4일 나가기로 했다고 하면 합이 60시수잖아요. 이 경우 59시수를 넘으니 1개 반은 1시간이 적은 예술수업을 해야 하고… 이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제가 생각할 때 예술교육이란 자율성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강사가 자유롭게 아이들과 함께 자신이 가진 어떤 예술적인 현장성을 전해줘야 하는 건데, 이렇게 탁상행정 식으로 운영되면서 통제적이고 억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데 개탄스럽습니다. 59시간이 되었다고 해서, '얘들아 안녕. 다음 2학기 때 해야 된대.' 이렇게 2학기에 다시 수업을 하면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수업은 계획성과 연속성이 있어야 되는데, 시수 제한 때문에 제대로 된 수업권을 침해받는 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결국 교육받는 학생들이 피해를 받는 거예요. 진흥원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어요. 하지만 행정편의를 위해서 현장에서의 교육의 질은 무시해온 거죠."

예술강사의 노동권과 학생의 교육권은 함께 간다

2021년 12월 1일부터 예술강사의 고용보험 피보험기간이 확대 적용되었다. 그전까지 예술강사의 '출강일'만 피보험기간으로 인정하여 실업급여 수급 대상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강의준비일도 추가로 인정되게 되어 그나마 접근이 확대된 것이다. 이는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에서 6년간 끊임없이 요구해서 이룬 것이지만, 한계도 크다. 여전히 예술강사를 초단시간 노동자로 두기 위해, 수업 시간은 그대로 두고 수업 준비 기간을 피보험기간으로 보는 방법을 쓴 것이다. 그러나 초단시간 노동자의 처지이기 때문에 구직급여액은 정규직에 비해 절반 수준이고, 이 또한 연간 시수가 적은 강사들은 혜택을 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예술이나 교육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보아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김세용씨는 모든 문제는 예술강사를 초단시간 노동자로 편법 운영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운영방식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문체부와 진흥원의 이런 방침은 예술 강사의 노동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모두 침해한다. 예술강사들의 안정된 노동으로 학생들이 필요한 예술 교육을 충분히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윤박 님은 한노보연 선전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지 일터 3월호에도 게재됩니다.


태그:#학교_예술_강사, #초단시간_노동자, #교육_노동자, #예술_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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