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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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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연합뉴스> 및 세계 7대 통신사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남은 임기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인권 규범을 만들어나가는 일에 우리 사회 전체가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의사도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도 문 대통령은 "우리가 인권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며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언급했었다. 그러나 임기 종료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인데, 이렇다 할 정부 차원의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채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끝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회적 합의' 뒤로 숨은 대선후보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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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선거가 2주도 채 남은 상황에서, 후보들은 과연 소수자·차별 담론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최근 '국제 엠네스티 7대 인권 의제에 대한 대선후보 답변'이 발표됐다. 국제 엠네스티가 뽑은 7개의 의제 중에서는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을 차별 사유에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포함돼 있었다.

이 답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찬성 의사를 드러냈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일부 추진'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관련 기사 : 성소수자 권리부터 북한인권까지, 한눈에 보는 이·윤·심 '답변' http://omn.kr/1xg59 ).

이 답변서에 앞서,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주요 대선후보들의 기존 입장은 어땠을까.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유튜브채널 '닷페이스'와 지난해 11월 10일 관훈토론회, 12월 10일 대구에서 열린 '2030 청년과의 쓴소리 경청 간담회' 등 여러 자리에서 차별금지법의 입법 필요성에 동의했다.

동시에 '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며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중시했다. '닷페이스' 영상에서도 이 후보는 "사회적 합의라는 용어가 미루는 요소로 쓰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지난해 12월 불교 언론인 법보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개인의 성적 정체성에 따른 지향은 허용, 불허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종·성별·성적지향·민족적 배경·종교·국적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론적으로 차별금지법에 찬성했지만, 마찬가지로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7년 대선 당시 "공론화를 통해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는 입장과 달라진 게 없다. 이 후보와 안 후보는 모두 차별금지법의 입장에 원론적으로 동의했지만, 두 후보의 공약집에서 차별금지법이라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극과 극으로 나뉘는 후보들의 입장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후보다. 지난 1월 27일 한국교회연합을 만난 자리에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 제정 반대 의사를 밝혔다. 당시 그는 "민주당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국회에 발의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의 가장 큰 문제는, 소수를 차별해선 안 된다며 다수를 차별하는 역차별에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볼 때 분명 위헌적 요소라고 판단한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주장했다(<크리스천투데이> 보도).

물론 윤 후보의 답변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전형적인 몰이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 사유(성별, 성적 지향, 장애, 정치 성향, 인종, 민족, 학력 등)를 지정하고, 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의 이용 공급, 행정 서비스 등에서 해당 사유에 의한 차별을 차단하고자 하는 법안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안, 이상민 민주당 의원 안 등 현재 발의돼 있는 차별금지법안 중 차별 행위 자체를 처벌한다는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위한 평등길 걷기'에 동참한 후 참석자와 포옹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위한 평등길 걷기"에 동참한 후 참석자와 포옹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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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지난 2017년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보수 개신교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차별금지법은 권리구제의 최소법이자 최소 가이드라인"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의 당위를 설득했다. 해당 교계 지도자들은 동성애를 '사회적 병리 현상'이라 표현하는 등, 꾸준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왔던 이들이다. 

김재연 진보당 후보, 오준호 기본소득당 후보, 이백윤 노동당 후보 등 군소 후보들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에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지난해 11월 열린 '2022 대선 후보들과 MZ세대, 청년 정책을 이야기하다' 화상토론회에서 김동연 후보는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이 실질적으로 충분히 구비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여전히 주요 후보들은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면서 과거의 입장을 되풀이하거나, 오히려 후퇴를 논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표심을 고민한 주저함이다(평등법 발의에 참여한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입법 시도 이후 밤낮으로 '전화 폭탄'에 시달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는 표심 뿐 아니라 당위를 위해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역사에 가정이란 무의미하지만,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 곁에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그가 강제 전역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논의 역시 충분했다. 30일 안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청원 요건을 달성했다. 개신교 표심만을 두려워 할 이유도 없다. 한국기독사회문제연구소와 엠브레인퍼블릭이 진행한 '2021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 인식조사 연구'(2월 3일 발표)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찬성 의견은 42.4%, 반대 의견은 31.5%로 나타났다.

시민은 시민의 몫을 했다. 이제 정치의 시간이다. 정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 '정치가 앞장서서 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중요한 순간마다 사회적 합의를 내세운 채 물러선다면, 우리는 2027년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차별금지법의 경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태그:#차별금지법,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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