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 역을 맡은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 역을 맡은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 ⓒ 영화사조아

 

일본에서 널리 알려진 이 관록의 배우도 이번 영화만큼은 만만치 않았다. 무표정에서 천 개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한국에선 배우 김태희의 일본 드라마 진출작 <나와 스타의 99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떠오르는 신진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세계에 합류하며 이야기에 힘을 더했다.

연출가인 남편 가후쿠와 배우로 활동하던 아내 오토의 평탄해 보였던 결혼 생활이 아내의 죽음으로 파국을 맞는다. 영화는 홀로 남은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운명과 선택을 돌아보고 어떤 희망을 찾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본인만의 스타일을 살려 영화로 구현해냈다.  

올해 칸영화제 공개 후 각본상을 시작으로 영화는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15일 온라인으로 만난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감독님의 장점이 이번 작품에 집대성 된 것 같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의 힘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수상과 별개로 27년 경력의 그 입장에서도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되는 연기를 해야 하지 않나 처음엔 불안했다"면서 그가 <드라이브 마이 카>로 경험한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설레는 부담감

"작품에 처음 들어갈 때 불안감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제게 '니시지마 배우라면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해주셨다. 현장에 가서 제 내면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혹시나 내 표정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잘 담아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배우들과 서로 느끼고 교감하며 완성되어 가는 연기를 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감독님이 시나리오엔 없지만 오토와 과거에 있었을 법한 일을 써주셔서 그걸 리허설로 많이 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행복한 부부였는데 아내가 몰래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고, 그걸 알게 되며 혼란에 빠지잖나. 근데 두 사람은 서로가 원래 잘 이해하는 관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토 입장에선 남편을 정말 사랑하지만 다른 남자와의 잠자리를 필요로 했고, 가후쿠 역시 오토의 어떤 내면엔 자기가 건드릴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매우 미묘한 관계지. 그게 영화를 보는 분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이미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이미지. ⓒ 영화사 조아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대해서 그는 "도움이 된 면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압박감이 컸다"고 고백했다. 워낙 일본에서 유명한 작가기에 하루키 소설에 대한 어느 정도 이해도가 있었던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분 책을 봐서 나름 이해도가 있었기에 이번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도 도움을 받았는데 워낙 유명한 분이라 독자들이 제가 연기한 캐릭터를 하루키 의도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걱정이 들수록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감독이 써놓은 대사에 집중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요 장면 중 하나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연기하기 위해 모인 세계 각국 배우들이 지루한 대본 리딩을 수 없이 반복하는 건데, 실제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 출연진들은 한국 배우들을 포함해 매 장면 촬영 전 함께 모여 대본 리딩을 했다는 후문이다.

"감독님의 시나리오가 되게 정밀하다. 텍스트의 강도랄까. 대사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있다. 배우가 대사를 몸에서 자연스럽게 뱉도록 촬영 현장에서 리딩을 반복했다. 한국 배우 분도 세 분 모두 참여했고, 다른 나라 배우들도 참여했는데 감정을 뺀 채 책을 읽듯 여러 번 대본을 읽는 게 특징이다. 서로의 소리를 듣고 몸 안으로 집어넣는 과정이었다.

워낙 감독님 각본 자체가 어렵다. 대사 한 마디에도 셀 수 없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거든. 제겐 도전적인 작품이었다. 감독님이 거의 24시간 함께 고민해주셨다. 제가 의문을 던질 때마다 세심하게 답변해주셨다. 연출적 재능도 뛰어나지만 그의 인간적 면이 있었기에 가후쿠를 연기하는 데에 도움을 크게 받았다."


기적의 순간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 역을 맡은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 역을 맡은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 ⓒ 영화사조아

 
영화 속 가후쿠의 대사 중 '배우들 사이에 뭔가가 일어났다. 관객에게도 그걸 전할 수 있게 잊지 말아달라'는 부분이 있다. 배우들 호흡이 일종의 화학적 반응으로 극대화되는 순간인데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이번 현장에서 실제로 그런 순간들을 몇 차례 느꼈다"고 전했다.

"감독님이 제게 정말 연출가인 것처럼 다른 배우들을 꾸준히 봐달라고 주문하셨다. 연출가는 현장에서 뭔가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잖나. 이번 현장에서 정말로 봤다. 운전 기사로 만나는 미사키(미우라 토코)와 차 안에서의 장면, 그의 고향인 홋카이도의 눈밭 장면과 대화 장면 등이 그랬다. 그리고 (청각장애인 배우인) 유나(박유림) 부부의 집에서 식사하는 장면을 찍고 나선 배우들이 서로 너무 감동적이었다는 말을 나눌 정도였다."

오토의 불륜 상대로 등장하는 배우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에 대해서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흥미로운 해석을 내비쳤다. "공허하고 텅 빈 기분 나쁜 존재 정도로 생각했던 다카츠키가 체호프 연극에 출연하게 되면서 어떻게든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 교류하게 되는데 빈 껍데기로 생각했던 다카츠키가 실은 오토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며 그는 "가후쿠에겐 그것이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라 말했다.

인터뷰 말미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한국에 좋은 배우분들이 참 많은 것 같다"며 "한국영화를 많이 보면서 훌륭한 배우들 연기를 꾸준히 보고 있는데 한국영화 작업에도 참여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드디어 한국에서 개봉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관객 분들이 보시면 뭔가를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생에서 뭔가 얻어갈 수 있는 작품이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