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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오후 2시 인천 중구 한중문화관 4층에서 인천문화재단과 한국근대문학관이 주최한 '황석영 작가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 - 철도원 삼대' 행사가 열렸다.
 지난 12월 3일 오후 2시 인천 중구 한중문화관 4층에서 인천문화재단과 한국근대문학관이 주최한 "황석영 작가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 - 철도원 삼대" 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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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등포라는 도시가 생긴 건 인천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가 시작되기 전에는 강화를 거쳐 마포로 들어오던 세곡선(稅穀船)이나 삼남(三南,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배들이 인천에 항만이 생기면서부터 제물포로 들어오게 됐다. 이후 경인(京仁)철도가 생기면서 영등포가 형성됐다. 노동자·기술자들을 영등포에 집결시켜 (영등포~인천을 오가게 하면서) 철도를 만들게 했다. 이후에 만들어진 경부선과 경인철도가 만나는 지점도 영등포다. 사람이나 물류로 볼 때 영등포와 인천은 거의 옆 동네나 마찬가지였다." (소설가 황석영) 

점(點). 선(線). 면(面).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선이 모이면 면이 되고, 그 면들이 모여 입체적인 공간을 만든다. 최원식 교수는 "<철도원 삼대>는 황석영의 그 어느 작품보다도 '장소성'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이 작품의 주요 공간은 영등포와 인천이다. 이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람과 역사가 살아숨쉬는 현장이었다. 영등포와 인천이라는 '점'을 연결해 공간의 '선'과 역사의 '면'을 조명한 셈이다.

지난 12월 3일 오후 2시 인천 중구 한중문화관 4층에서 인천문화재단과 한국근대문학관이 주최한 '황석영 작가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 - 철도원 삼대' 행사가 열렸다. 이날 사회는 근현대문학 연구의 한 길을 걷고 있는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황 작가와 최 교수는 몇 살 나이 터울을 뛰어넘는 막역지우다. 최 교수는 대화 내용에 따라 '황 작가', '황 선생', '형님'으로 호칭을 달리하며 황석영 작가와 호흡을 맞췄다.

<철도원 삼대>(창비)는 이백만-이일철·이이철(형제)-이지산-이진오로 이어지는 사대(四代)에 걸친 가족사의 애환을 다룬 소설이다. 공간적 배경은 영등포와 인천, 시간적 배경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을 거쳐 현대로 이어진다. 가족과 사회, 그를 매개하는 산업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씨줄날줄 엮었다.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방대한 서사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최근으로 연결되는 100여 년의 역사 속 노동자·민중의 삶을 담아낸 작품이다.

<철도원 삼대>에서 인천과 영등포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지난 12월 3일 오후 2시 인천 중구 한중문화관 4층에서 인천문화재단과 한국근대문학관이 주최한 '황석영 작가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 - 철도원 삼대' 행사가 열렸다. 이날 사회는 근현대문학 연구의 한 길을 걷고 있는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지난 12월 3일 오후 2시 인천 중구 한중문화관 4층에서 인천문화재단과 한국근대문학관이 주최한 "황석영 작가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 - 철도원 삼대" 행사가 열렸다. 이날 사회는 근현대문학 연구의 한 길을 걷고 있는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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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가 <철도원 삼대>를 구상한 건 1989년 방북 때 평양에서 만난 어느 노인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그는 서울말의 옛날식 억양과 단어를 쓰는 평양백화점 부지배인이었다. 고향은 영등포. 황석영도 1943년 당시 만주국의 수도였던 창춘(長春)에서 태어났지만, 유소년 시절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영등포에서 보냈다. 두 사람은 대동강변 수산시장에서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눴다. 황석영은 '작가의 말'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 노인은 아버지가 영등포 철도공작창에 다니던 이야기며 그가 철도학교에 들어갔던 이야기, 기관수로 대륙을 넘나들던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만주의 끝도 없이 펼쳐진 검은 들판 위로 떨어지던 세숫대야만한 붉은 해, 바람에 출렁이는 수수밭의 바다, 온통 빡빡하게 하늘을 메우면서 대륙에 쏟아지던 어린애 머리만큼 커다란 눈송이, 조선의 아름다운 산과 강과 골짜기며 들판에 서 있던 아름다운 간이역 등 서정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황석영 작가는 내년이면 80세이자 등단 60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펴낸 <철도원 삼대>는 그가 78세에 쓴 장편소설이다. 그는 <철도원 삼대>를 쓰는 동안 19차례나 집필실을 옮겨 다녔고, 하루에 8~10시간 정도 글을 썼다고 말했다. 30여 년 전에 구상했고, 본격적인 자료 조사에 1년, 집필에 1년쯤 걸렸단다. 

예전에는 중편소설 분량인 400~500매(200자 원고지)가 요즘에는 장편소설로 분류된다. 그는 "이전 기준으로 장편소설이라고 하면 1500매 정도는 돼야 하는데, <철도원 삼대>는 2400매가량, 책으로도 600페이지가 넘는다"면서 소설에 서사를 담으려면 어느 정도 분량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한다.

최원식 교수는 북콘서트 초반에 "1970년대 한국 문학은 소설가 황석영의 등장과 시인 김지하의 등장으로 (문학의) 시대를 교체했다"면서 "지금까지의 업적만으로도 대작가인데도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 <철도원 삼대> 같은 굉장한 작품을 써낸 것은 대단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최 교수는 "백낙청 선생은 '80세 가까운 노작가가 이런 작품을 쓴 것은 세계문학 사상 유래가 없다'고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황석영 작가는 "원로 작가, 그러니까 작가의 말년이라는 건 또 하나의 위기에 봉착한 거"라면서 "자기가 여태까지 쌓아올린 업적이 있는데 (새로운 이야기 없이) 동어반복을 하는 건 매너리즘이니까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책무가 생긴다"고 화답했다. 본인도 백척간두에 서 있는 원로작가인데,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한 걸음 더 내딛게 해준 작품이 <철도원 삼대>였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때 '소설에서 철도노동자를 택한 이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철도는 양말공장이나 두부공장 같은 거 하고는 좀 다르다. 근대사회를 상징하는 산업이고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서구도 철도노조의 힘이 세고 역사가 깊다. 서구 산별노조의 맏형이기도 하다. 근대 산업사회의 중심이 철도노동자라고 봤다"고 답했다.

"염상섭 <삼대>는 근대의 입구, 황석영 <철도원 삼대>는 근대의 출구"
 
지난 12월 3일 오후 2시 인천 중구 한중문화관 4층에서 인천문화재단과 한국근대문학관이 주최한 '황석영 작가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 - 철도원 삼대' 행사가 열렸다. 이날 사회는 근현대문학 연구의 한 길을 걷고 있는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지난 12월 3일 오후 2시 인천 중구 한중문화관 4층에서 인천문화재단과 한국근대문학관이 주최한 "황석영 작가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 - 철도원 삼대" 행사가 열렸다. 이날 사회는 근현대문학 연구의 한 길을 걷고 있는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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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교수는 북콘서트에서 이 소설에 등장한 철도의 의미와 '도시파 작가' 황석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철도는 근대의 상징이다. 재밌는 건 <철도원 삼대>에서는 근대를 이끌어온 철도가 탈(脫)근대로 또는 근대 이후로 가는 데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아주 감각적이고 본능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농촌파' 작가가 압도적으로 많은 우리나라 문학에서 황석영 선생은 '도시파'를 정통으로 계승하고 있는 작가다."

최 교수는 "(1931년 쓰여진) 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가 한반도 근대의 입구라면,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근대의 출구라고 할 수 있다"면서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황석영의 출생지인 만주 장춘(신경 新京)이 등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황 작가는 "<철도원 삼대>에 만주 이야기를 (자세하게) 넣으려 했는데 쓸 게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뺐다"며 아쉬워했다.

황석영 작가가 철도와 철도원의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풀어낸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작가의 말'과 북콘서트를 통해 "나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빈 부분에 채워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들은 "이름 석자로 남아서 사건의 먼지 같은 부분이 되어버린 이름 없는 노동자"였다. 그리고 "작가의 상상 속에서 그려졌으나 이들은 사건의 조서와 법정 기록에 이름만 나와 있는 무수한 민중의 조합"이었다.

"우리 근현대문학에서 근대 산업노동자들의 삶을 반영한 소설이 드물다. 일제강점기에 잠깐 있었던 카프의 흔적에서도 대부분이 단편소설이거나 도시빈민 일용노동자 또는 룸펜 계층을 다룬 것들이며 산업노동자가 전면에 등장하는 본격적인 장편소설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까지 쓰인 장편소설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농민을 위주로 한 작품들이었다.

나는 우리 문학사에서 빠진 산업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근현대 백여년에 걸친 삶의 노정을 거쳐 현재 한국 노동자들의 삶의 뿌리를 드러내보고자 했다. 또한 이것은 이지러지고 뒤틀리고 하면서도 풍우의 세월을 견뎌온 한국문학이라는 탑의 한 부분에 돌 하나를 끼워넣는 작업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북콘서트에서는 황석영 작가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처음 가출했던 에피소드도 등장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께 야단맞고 큰누나 가방에 있던 돈을 갖고 영등포역에서 인천 가는 기차를 탔다는 것이다. 그는 난생 처음 본 바다에 압도됐다. 부둣가 시장 좌판에서 잠을 잤는데, '주안댁'이라고 불리는 좌판 주인이 깨워 영등포 집까지 데려다줬다고.

그게 인연이 돼 주안댁 아주머니와 황 작가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언니, 동생' 사이로 지냈다고 한다. 그런 탓에 종종 인천과 영등포를 오가는 일도 많았고, 인천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황석영이 현실에서 만난 그 주안댁은 <철도원 삼대> 이백만의 부인인 주안댁으로 등장한다.

황석영 작가 "인천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까닭
 
지난 12월 3일 오후 2시 인천 중구 한중문화관 4층에서 인천문화재단과 한국근대문학관이 주최한 '황석영 작가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 - 철도원 삼대' 행사가 열렸다.
 지난 12월 3일 오후 2시 인천 중구 한중문화관 4층에서 인천문화재단과 한국근대문학관이 주최한 "황석영 작가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 - 철도원 삼대" 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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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죽을 때가지 쓰는 게 작가의 의무"라고 강조했던 황석영 작가는 이날 북콘서트에서 "(제 스스로) 생물학적인 건강 상태를 따져보면 90세까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그게 앞으로 10년이라고 한다면 아마 <철도원 삼대> 같은 장편소설을 세 권 정도는 더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된다면 황석영이 생각하고 써내려간 (황석영 식) 소설의 양식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며 그 양식의 이름은 '민담(民譚) 리얼리즘'이라고 말했다. "원로라고 꽃 달고 심사 다니면서 인사나 받고 하는 일이나 수백억 원의 돈을 들여 본인의 문학기념관을 짓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며 '현역으로 죽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황석영 작가는 <철도원 삼대>를 쓰는 동안 두 작품을 구상해뒀다고 밝혔다. 하나는 장편을 쓰기 전 징검다리 삼아 쓰는 '어른을 위한 철학동화'다.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는 "미륵사상의 유교적 발현이 동학이고 선교적 발현이 증산도라면 그 불교적 발현이 원불교"라며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날 북콘서트에서는 "탈(脫) 인간 중심주의에 기반한, 불교의 열반경 이야기를 성인 동화로 풀어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년 상반기에 성인 동화를 펴내 '실탄'을 마련한 뒤,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장편을 쓸 계획이라고 했다. 1920년 간도 항일단체가 무장투쟁을 위해 은행에서 군자금을 탈취했던 일이 있었다. 소위 '만주 15만원 사건'의 핵심 인물인 한 연변 청년이 카자흐스탄으로 도망가서 말년에 무명으로 돌아간 홍범도 장군과 3년을 함께 지낸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쓰려고 한다고. 계획대로 된다면, 향후 10년 동안 쓸 계획인 세 권의 장편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 될 것이다.

최원식 교수와의 대담을 마친 뒤, 청중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황석영 작가는 "내 문학은 인천과 잘 맞는다"면서 "인천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항 이후 근대의 인천과 황석영의 작품세계와는 '정서적 동일성'이 있기에 남은 인생은 인천에서 현역으로 마감하고 싶다는 뜻이다.

문학평론가인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는 지난해 6월 <서울신문>에 쓴 글에서 <철도원 삼대>를 읽고 난 소감을 이같이 얘기했다.
 
<철도원 삼대>를 탐독하면서 소설이 당대의 중대한 의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지나온 역사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드는 주요한 수단임을 다시금 절감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제가 단지 계몽적 차원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작품 속의 '결국 조직이란 모든 약하고 외로운 개인들의 집합체였다'는 표현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시선을 담고 있다.

... 인터넷서점에서 구매한 <철도원 삼대>에는 작가 사인이 인쇄돼 있다. '길고 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한줌 먼지에 지나지 않지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노동운동가 진오는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에서 할아버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을 통해 그에게 전해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라고 되묻는다. 소설에는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고 적혀 있다.

태그:#철도원 삼대, #황석영, #최원식,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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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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