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정신질환자 중대범죄 사건은 언론을 통해 계속 보도되고 있다."
2019년 4월 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정신질환자 안인득의 방화 및 살인사건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사건의 잔혹함에 놀랐던 이들은 앞서 이웃들의 수많은 신고와 경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2년 6개월이 지났다. 사건 후 여러 진단이 있었지만 이후에도 정신질환자가 일으킨 중대범죄 사건은 심심찮게 벌어졌다. 그동안 겪은 고통과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은 현실에, 안인득 사건으로 어머니와 막내딸을 잃은 A씨 부부(아내도 이 사건으로 큰 부상을 입음)는 26일 국가배상청구소송에 나서기로 했다.
이 소송을 맡은 오지원 변호사(법률사무소 법과 치유)는 25일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유족들은 사건 후) 이사를 했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그날에 대한 대화도 나누지 않으며 회피하는 삶을 살아왔다"라며 "하지만 기억은 계속 그날을 가리켰고 분노와 무기력이 너무도 빈번하게 찾아와 직장까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유족들은 억울함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벌어지는 사건에) '어떻게 이렇게 안 변하지?', '나 같은 피해자가 계속 생기네?'란 생각을 갖게 됐다"라며 "소송대리인 입장에서 국가배상청구소송의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는데, 유족께선 이러한 이유로 소송을 결심하게 됐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판사 출신인 오 변호사는 "판사로 재직할 때부터 국가배상청구소송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점에 문제의식이 있었다"라며 "단순히 피해자 개인에게 배상을 해주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의 생명·안전을 위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지 선포를 해주는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소송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에서도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오 변호사는 "많은 의사 분들이 본인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자주 마주할 뿐만 아니라, 조치를 취하려고 해도 시스템이 잘 안 돌아간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라며 "또한 정신장애인와 그 가족 분들도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래는 오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경찰 신고만 8번...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 사건 후 2년 6개월 동안 유족은 어떤 삶을 살아왔나.
"일상이 무너진 고통 그 자체였다. 생활의 터전이었던 아파트에서 너무도 참혹하게 가족과 이웃을 잃었다. 동네를 지키는 경찰에 대한 신뢰도 무너진 상태였다. 결국 이사를 했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가족끼리 그날에 대한 대화도 나누지 않으며 회피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기억은 계속 그날을 가리켰다. 무엇보다 직장생활이 너무도 어려워졌다. 직장이란 조직에서 일상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데 분노와 무기력이 너무도 빈번하게 찾아와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따르다보니 모든 게 무너지고 말았다.
- 유족 입장에선 어려운 선택일 텐데, 국가배상청구소송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첫째론 우선 억울한 마음이 컸다. 억울한 마음이 계속 드니까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까' 생각하게 됐고, 이는 '여러 차례 신고했을 때 경찰이 한 번만이라도 조치를 취했다면'이란 생각으로 이어져 소송을 결심하게 됐다. 두 번째론 '어떻게 이렇게 안 변하지?', '나 같은 피해자가 계속 생기네?'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정신질환자에 의한 중대범죄 사건이 계속해서 언론을 통해 보도됐는데 이를 보며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법률대리인 입장에서 국가배상청구소송의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는데, 유족께선 이 두 가지 이유를 계속 말씀하셨다."
- 이번 소송의 주된 법리는 무엇인가.
"2018년 1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경찰에 정식으로 접수된 신고만 8번이었다. '안인득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쫓아온다', '폭력 행위 때문에 무서워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눈이 풀린 것 같다' 등의 내용이었다. 심지어 쇠망치를 들고 있던 적도 있었다. 이렇듯 주민들은 너무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는데, 경찰은 너무도 편안했다. 출동을 해서도 '오해한 것 아니냐'고 말하고 안인득의 자해·타해 우려가 있음에도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다.
경찰은 '우린 전문가가 아니다'란 주장을 편다. 맞다. 경찰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법도 1차적 판단만 하도록 정하고 있다. 위험성을 1차로 판단해 정신과 전문의나 앞에 데려가는 게 비전문가인 경찰의 역할이다. 근데 이걸 안 한 거다.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침해'를 우려하는데 경찰의 자체 매뉴얼(<고위험 정신질환자에 대한 응급·행정입원 판단 매뉴얼> 및 <고위험정신질환자 112신고가 들어왔어요>)을 보면 명백히 판단 근거가 나와 있다.
해당 매뉴얼엔 '흉기 소지 여부나 가족 등의 진술을 토대로 이전 112 신고 이력이나 범죄 전력, 현재 난동상황 및 약물치료 중단 여부 등을 검토'하라고 돼 있다. 안인득은 쇠망치를 들고 있었던 적도 있었고(흉기 소지 여부), 안인득의 형은 계속해서 그를 입원시키려는 의지가 있었으며(가족 등의 진술), 이웃의 신고도 8번이나 이뤄졌다(112 신고 이력). 또 안인득은 과거 치료감호소에 있었고(범죄 전력), 2016년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며 치료를 받지 않았으며(약물치료 중단), 이웃의 신고 내용 중엔 벌레나 커피 등을 이용한 문제가 있었다(난동상황)."
- 국가의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취지인가.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매뉴얼은 상당히 잘 돼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매뉴얼대로 하지 않은 '부작위'가 문제였다. 이 부작위가 위법했고 결국 이 사건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가 소송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대법원은 국가배상의 요건에 대해 추상적으론 넓게 인정하고 있다. 부작위가 인정되려면 '작위'의 의무가 있어야 하는데 꼭 '~해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어도 객관적인 정당성을 잃으면 부작위에 해당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인과관계는 오원춘 사건(2012년)의 경우 인정됐다. 하지만 피해자의 신변보호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살해된 데이트폭력 사건에선 인정되지 않았다. 대법원이 개별 판결에는 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데 이 사례를 통해 그것이 깨졌으면 한다. 설시는 멋들어지게 해놓고 개별 사건에서 잘 인정되지 않으면, 피해자들 입장에선 '국가의 책임'이란 게 어떤 것인지 너무 혼란스럽지 않겠나."
- 변호사로서 이 사건을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서진환 사건(2012년)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도 패소한 바 있다. 저는 판사로 재직할 때부터 국가배상청구소송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점에 문제의식이 있었다. 우린 이 사건의 출동 경찰을 개인적으로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그들의 공적책임을 통해 시스템의 문제, 국가의 책임을 들여다보자는 거다. 많은 노력과 예산을 들여 매뉴얼을 만들면 뭐하나. 현장에 전달이 안 되는데. 교육과 훈련의 책임도 국가에 있는 것이다. 사법부의 존재 이유는 행정작용이 잘 돌아가도록 만드는 데 있다."
"생명·안전 위한 국가의 책임, 사법부가 선포해야"
-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이 소송을 함께 지원하고 있다.
"2018년 고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 등 정신과 의사 분들도 정신질환자에 의해 동료를 잃은 경험이 많다. 많은 분들이 본인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자주 마주할 뿐만 아니라, 조치를 취하려고 해도 시스템이 잘 안 돌아간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도 소송 지원에 나섰다. 정신질환자 및 그 가족들이 정신질환자에 의해 피해를 입은 유족들을 위해 나선 것이라 의미가 깊어 보인다.
"죄책감 때문이다. 또한 그들 역시 범죄자가 될까 걱정이 크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그들은 언제든 환자에서 범죄자로 바뀔 수 있다. 때문에 치료를 받는 과정에 국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강하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역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 그 가족들의 인권, 사회의 안전, 이 세 가지는 중요한 목표이면서 서로 약간의 긴장 관계에 있다. 개인적으로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이 세 가지를 조화롭게 아우르고 있다고 본다.
현행법이 잘 작동하기만 하면 되는데 가장 중요한 곳이 경찰이다. 1차 판단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가족이라도 강제로 환자를 이송할 경우 체포·감금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경찰이 나서는 수밖에 없는데 경찰도 정신질환자나 관련법에 대한 이해가 좁고 훈련이 안 돼 있으니 계속 피하는 게 현실이다. 안인득 사건의 경우 8번 신고에도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후 안인득이 처벌받고 경찰공무원 5명이 징계 받은 것 외에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국가가 '이 정도는 한다'는 걸 알려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니 이번 소송을 통해 공론화가 좀 이뤄졌으면 한다."
- 이번 소송을 앞두고 사법부에 요청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사법부가 국가를 상대로 책임을 묻는 일에 소극적인 것 같다. '국가가 이런 사건까지?' '공무원의 이 정도 잘못으로 세금을 들여 피해를 보상해?' 등의 생각이 강한 듯하다. 하지만 생명·안전에 쓰는 것만큼 예산을 의미 있게 쓰는 일이 어디 있겠나. 단순히 피해자 개인에게 배상을 해주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의 생명·안전을 위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지 선포를 해주는 문제다. 일선 경찰들도 안인득 처벌과 몇몇 경찰공무원 징계로 사건이 끝나버리면 억울할 거라고 생각한다. 사법부가 적극적인 판결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할 때 일선 공무원도 안심하고 일할 수 있으며, 시스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 해당 사건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신질환자에 의한 중대 사건이 벌어졌다. 관련 예산과 제도 개선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 사건 후 경찰은 응급입원을 위한 호송이 많아졌다고 여러 차례 발표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음에도 그동안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국가의 과실이 드러난 셈이다. 그나마도 전문가들은 '반짝'이었다고 말한다. 몇 달 집중 점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점점 그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정신질환자 중대범죄 사건은 언론을 통해 계속 보도되고 있다.
정신질환자 본인도 범죄자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 시스템이 아닌 사람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행법 체계 안에서 교육·훈련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선진국과 우리의 큰 차이는 이 점에 있다고 본다. 우린 교육과 훈련의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 알아서 잘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의 고통을 교육·훈련 없이 누가 알 수 있겠나. 이번 소송으로 이에 대한 경각심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