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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동에 가면 떡볶이집이 줄지어 있다. "원조 떡볶이집" 신당동 떡볶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있는 가게의 간판에 적혀 있는 말이다. 그런데 눈을 돌려 다른 떡볶이 집을 보면 "원조1호 떡볶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 옆집은 이렇다. "소문난 원조 떡볶이." 모두 다 원조라고 주장하는 탓에 도대체 진짜 원조 떡볶이가 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진짜 원조 떡볶이가 그렇지 않은 떡볶이집의 떡볶이보다 더 맛있다는 보장도 없다. 다른 음식들도 비슷하다. "며느리에게만 알려준" 3대째 내려온 옛날 레시피대로 만든 음식이 여러 우여곡절 끝에 현대식으로 변형된 음식보다 더 나을 것이란 보장 역시 없다.

최근 민주당의 '적통 논쟁'은 묘하게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원조' 싸움과 비슷하다. 원조 민주당 후보. 진짜 원조 민주당 후보. 진짜 진짜 원조 민주당 후보. 원조를 가르는 기준이 오래됐는지가 아니라, 각 대선 후보가 민주당이 겪어온 위기의 시간들 속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로 판가름된다는 점 정도만 차이가 있다. 자칭 원조와 진짜 원조, 진짜 진짜 원조 후보들은 급기야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2004년으로 민주당의 시계를 돌렸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시 논쟁에 휩싸인 것이다.

차라리 '원조 떡볶이집' 찾는 게 더 쉽겠다
 
지난 1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경선 개표식에서 경선 후보로 선출된 추미애(오른쪽부터), 이재명, 정세균, 이낙연, 박용진, 김두관 후보가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경선 개표식에서 경선 후보로 선출된 추미애(오른쪽부터), 이재명, 정세균, 이낙연, 박용진, 김두관 후보가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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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반문' 딱지에 시달렸던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고 주장하며 반격을 시작했다. 이에 이낙연 전 대표는 자신은 진짜 탄핵안에 찬성 표결을 하지 않았고, 탄핵을 원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적통 논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지만"이라고 말한 김두관 후보는 추미애 전 장관과 이낙연 전 대표를 싸잡아 비판하며 "야당과 손잡고 노 대통령을 탄핵한 정당의 주역"이라고 은근 슬쩍 자신이 민주당의 "진짜 원조"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정세균 전 총리도 이 판에 빠지지 않았다. 정세균 전 총리는 "제가 마지막까지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고 탄핵을 막기 위해 의장석을 지킨 사람"이라고 자신이 민주당의 "진짜 진짜 원조"라는 사실을 주장했다. 탄핵에 찬성했던 추미애 전 장관은 자신을 "민주당 맏며느리"라고 말하고 상대 남성 후보들을 "아드님"이라 호명하며 적통 논쟁이 후보들이 "정신도 심장도 민주당"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에 긍정적이라 말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했던 후보자들의 발언도 소환됐다. 특히 이낙연 전 대표는 여러 차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한 적이 있어서 더욱 많은 기사에 언급됐다. 그는 시위에 대한 경찰 진압으로 전국농민회총연맹 시위 참가자 2인이 숨진 일을 지적하거나 빈곤층 증가, 교육 격차 심화 등을 비판하는 말을 다수 한 바 있다. 논쟁이 점점 가열되자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가 "노무현을 선거에서 놓아달라"라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민주당의 진짜 원조가 누구인지 찾는 게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서 진짜 원조 떡볶이집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고, '친문'이며,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한 적 없는 사람만이 진짜 원조의 타이틀을 가질 수 있다면, 도대체 그 타이틀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모든 후보들이 노리고 있는 것이 대통령 자리인 줄 알았는데, 지금의 논쟁만 보면 후보들이 이 모든 과정을 민주당 '왕위 계승권 싸움'의 일종으로 생각하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 흠이 될 이유는 무엇이며, 17년 전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된 탄핵안 투표에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가 2022년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의 증거가 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결과가 모든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인간의 생각이 늘 고정돼 있을 것이라 믿는 것도 그렇게 타당하지는 않다.

아무리 좋은 정권이었다 한들 '무비판'은 좋은 결과보다는 나쁜 결과로 흐를 때가 많았다. 17년전의 결정이 만약 다시 소환돼야 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과오의 맥락으로 판단돼야 하는 것이지 '충성심'으로 판단돼선 안 된다.

경선 일정상 지지자들과 당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의 적통 논쟁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다.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뒷전이고 '충성심' 증명이 우선인 상황만 보자면, 과연 지금의 후보들이 자신이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서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을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옛날 맛'에만 집착하는 식당은 망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을 통과한 정세균, 이낙연, 이재명, 추미애, 박용진 후보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경선 개표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을 통과한 정세균, 이낙연, 이재명, 추미애, 박용진 후보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경선 개표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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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도 있었고, 공도 있었던 사람이다. 그를 완전무결한 인간으로 상상하고 신격화 하는 행위는 '노무현 이후의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 지금의 정부가 잘한 것과 잘못한 것들을 고민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비전을 제시해도 모자를 판국에, 17년이나 된 사건을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피곤하다는 생각만 든다.

시대가 지나며 사람들의 입맛은 변화하고 있는데 '진짜 원조 맛집' 타이틀을 버리기 싫어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꼴이다. 원조 레시피, 원조의 맛, 원조의 정신,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채 옛날의 맛에만 집착하는 식당은 망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어떤 후보가 '진짜 원조' 후보인지보다 어떤 후보가 더 국가 운영의 비전이 있는지가 궁금하다. '충성심' 경쟁 대신 지금의 정부와 과거의 정부에 대해 솔직하게 평가하고 비판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후보가 더 나은 국정 운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적어도 나에게는 존재한다.

역시 '원조' 타이틀보다는 내 입에 맞고, 건강에 좋은 음식이 최고다. 옛 맛에 집착하는 가게보다는 창업 이후 끊임없이 고민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가게가 평균적으로 더 맛이 좋았다. 대통령도 그럴 것이다. 원조, 진짜 원조, 진짜 진짜 원조 간판 싸움은 그만하고 공약으로 승부하는 선거를 이번에는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태그:#민주당, #이낙연, #이재명, #적통, #신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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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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