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 '하남 석바대 골목'편의 한 장면.

SBS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 '하남 석바대 골목'편의 한 장면. 모녀분식집의 모습. ⓒ SBS

 
SBS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35번째 골목 '하남 석바대 골목' 첫 편이 공개됐다. 석바대 골목은 본래 하남 상권의 중심이었지만 신도시 개발 이후 상권의 중심이 역세권으로 이동하면서 사람들 발길이 뜸해진 상황.

모녀분식집과 춘천닭갈빗집, 고기국수집 세 팀이 솔루션 대상으로 선정됐고 이날 방송에서는 앞선 두 가게 사장님들과의 첫 만남이 그려졌다. 첫 번째로 등장한 모녀분식집은 최금순-길새봄 모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로 엄마와 딸의 다정한 케미가 유난히 돋보였다.

엄마 사장님은 분식집 경력만 22년에 이르는 베테랑이고, 딸은 허리부상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분식집 운영을 돕게 됐다고 밝혔다. 모녀분식집은 김밥은 딸이 전담하고 나머지 메뉴들은 엄마가 책임지는 구조였다. 사장님은 재료 구입에서 손질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지도하며 분식집 운영에 있어서만큼은 딸을 엄격하게 교육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대표 메뉴를 묻는 질문에 '23가지 메뉴 전부'라고 대답할 만큼 음식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모녀분식집을 방문한 백종원은 김밥과 직화제육볶음을 주문했다. 백종원은 사장님이 일반 단무지 대신 사용하는 비트 단무지에 대하여 "보라색은 식욕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하며 다소 긴장된 분위기를 형성했다. 하지만 막상 시식이 시작되자 백종원은 의외로 재료와 맛을 모두 호평하며 "건강하고 맛있는 맛"이라는 극찬이 이어졌다. 청양고추와 깻잎으로 마라맛 풍미를 낸 제육볶음도 준수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다만 백종원은 가게 주방 여건과 사장님의 몸상태를 고려할 때 메뉴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진단했고 김밥에 더 가능성이 보인다고 권유했다.

모녀의 애틋한 숨은 사연도 공개됐다. 알고보니 두 사람은 친엄마와 딸이 아니라 재혼 가정으로 맺어진 인연이었다. 새봄씨는 민감한 중학생 사춘기 시절 만난 새엄마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하게 됐던 과정을 공개했다. 만난 지 몇 달 만에 새봄씨가 사장님에게 무의식 중에 처음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자 새봄씨는 놀랍게도 친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선택했다. "한 번도 엄마 없는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던 새봄씨의 고백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계모와 양녀를 바라보는 세상의 삐딱한 편견에 대하여 사장님은 "그냥 가족이고 내 자식이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하며 "제 아이가 되어줬다. 그 이상의 선물이 없다"며 애틋한 모정을 드러냈다.

시작부터 총체적 난국이었던 닭갈빗집
 
 SBS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 '하남 석바대 골목'편의 한 장면.

SBS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 '하남 석바대 골목'편의 한 장면. 닭갈빗집의 모습. ⓒ SBS

 
두 번째로 춘천 닭갈빗집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시종일관 훈훈한 분위기로 전개됐던 모녀분식집과 정반대로 닭갈빗집은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아들 곽민철씨가 사장님이고 어머니 신경미씨가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닭갈빗집은 시작부터 총체적 난국이었다. 혼자 주방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는 엄마와는 달리, 아들 사장님은 빈둥거리면서 가게의 안팎을 어슬렁거렸다. 매일 가게에 찾아오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기타를 치며 놀았고, 심지어 손님이 있는 상황에서도 친구와 음주를 하기도 했다.

점검 당일날, 오후 2시 가게 오픈시간이 다 됐고 방송이 촬영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장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가게에 놀러온 지인과 다트게임을 하며 빈둥거렸다. 지켜보던 백종원은 "장사가 잘 되려면 손님을 맞이할 기운이라는 게 필요한데 오히려 손님을 밀어내고 있다. 나도 가기가 싫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백종원이 가게에 도착해도 사장님과 친구의 철없는 행동들은 계속됐다. 사장님은 주문을 받고도 주방에 있는 엄마에게는 백종원이 왔다는 사실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사장님의 친구는 한동안 가게에서 빈둥거리다가 뒤늦게야 눈치를 보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계속해서 일을 하고 있던 엄마는 백종원이 직접 호출을 하고 나서야 겨우 주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들 사장님보다 먼저 상황실에 도착한 엄마 신경미씨의 표정에는 고단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뒤이어 상황실에 도착한 사장님은 여전히 해맑은 표정으로 노래를 열창하거나 "연매출 7억 원이 목표"라는 황당한 발언을 이어가며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장님 모자를 상황실로 보내고 난 후 백종원은 닭갈비 시식을 건너뛰고 주방 점검부터 나섰다. 가게는 안쪽 주방 옆에 화장실이 위치하며 손님이 화장실을 가려고 하면 주방 내부가 완전히 노출되는 특이한 구조였다. 화구 바로 위에는 배전반이 위치하여 화재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컸다. 배전반을 비롯하여 주방 곳곳은 청소되지 않은 기름때로 가득했다.

식재료는 제대로 구분도 되지 않은 채 상온에서 그대로 보관중이었고, 전자렌지 위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주방과 가게 테이블 곳곳에는 다이어트 식품에서부터 영단어장, 태블릿 PC까지 가게와 상관없는 사장님의 개인물품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결정타는 테이블 밑에 위치한 개집이었다. 사장님은 저녁마다 가게에 애완견을 데려온다고 고백했다. 개집에는 심지어 강아지가 물어뜯는 장난감과 간식들이 방치되어 있어서 퀴퀴한 냄새가 가게 전체까지 올라왔다.

또한 이미 다먹은 디저트용 아이스크림통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가 하면, 사장님이 구입하여 유통기한이 이미 지난 닭가슴살까지 방치되어 있었다. 가게 점검 내내 "더러워 죽겠다"며 경악을 금치못하던 백종원은 결국 아들 사장님을 소환했다. 이어진 예고편에서는 백종원이 사장님에게 "기본이 안 돼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하고 지켜보던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등장하며 닭갈빗집이 앞날이 순탄하지 않을 것을 암시했다.

'빌런'으로 시청률 침체 돌파?   
  
 SBS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 '하남 석바대 골목' 편 중 한 장면.

SBS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 '하남 석바대 골목' 편 중 한 장면. ⓒ SBS

   
<골목식당>에는 그동안 지역마다 '빌런(악당)'이라 불리는 캐릭터들이 종종 등장하곤 했다. 장사에 대한 이해나 의지가 없는 사장님,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본인의 자존심과 이익만 챙기려는 사장님, 솔루션 당시에는 고분고분했다가 방송이 끝난 후 초심을 잃고 뒤통수를 치는 사장님 등 빌런의 종류도 다양했다.

이들의 존재는 방송 당시에는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냈지만, 한편으로는 국내 요식업의 현실과 '장사의 기본'이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반면교사로서의 역할을 했다. 또한 <골목식당>으로서도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높은 빌런들이 등장하는 회차에서 더 많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유발하며 일종의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석바대 골목 첫 편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닭갈빗집은 여러모로 과거에 방송된 포방터 홍탁집을 연상시켰다. 홍탁집은 지난 2018년 11월 <골목식당> 출연 당시 백종원의 솔루션을 받아 환골탈태한 식당이다. 모자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엄마만 일을 하고 아들이 불성실한 태도로 도마에 오른 것이 석바대 닭갈빗집과 흡사하다.

당시 홍탁집은 백종원과 각서를 쓴 뒤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백종원이 1년간 단톡방으로 매일 기상시간과 닭 손질 과정을 보고 받는가 하면, 2020년에는 중간점검 편으로 다시 등장하는 등 여러모로 지금까지도 <골목식당>의 레전드 출연자와 에피소드로 회자되고 있다.

<골목식당>은 그간 요리사업가인 백종원이 침체된 골목 상권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요식업의 기본과 창업과정에서 겪게 되는 현실적인 어려움 등을 보여주며 공익성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공익예능'으로서 사회적 영향력 그리고 백종원이라 이름값에 쏠리는 유명세와 기대감이 점점 높아지면서 <골목식당>이 관여하는 솔루션의 영역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게 바람직한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백종원은 요리연구가이자 사업가로서 자신의 전문적 영역을 살려 자영업자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도움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의 인생을 개조하거나 구원해줄 수는 없고 그래야 할 의무도 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골목식당>은 백종원에게 요식업 멘토 이상의 역할을 부여하는 모양새다.

<골목식당>은 백종원이 '인생의 사부'가 되어 철없는 빌런을 호되게 꾸짖고 엄격하게 훈련해 마침내 새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개과천선'의 드라마를 연출해낸다. 시청자들을 열받게 하는 빌런의 무능하고 철없는 모습이 부각될수록 후반부 반전의 해피엔딩이 주는 쾌감도 배가 된다. 홍탁집은 그러한 <골목식당>표 인간개조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알려졌다.

닭갈빗집 사장님의 엄마도 "아들이지만 사장님이니까 뭐라고 못하겠더라"고 고백하며 "둘째 아들이 형(사장님)을 아빠도 엄마도 혼내지 못하는데 백종원은 혼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더라"라고 백종원의 솔루션에 한가닥 기대감을 드러냈다. 가족도 통제하지 못하는, 그것도 다 큰 성인을 방송에서 잠깐 인연을 맺은 백종원에게 갱생시켜달라는 것은 너무 과도한 기대가 아닐까.

<골목식당> 제작진은 항상 빌런에 대한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일부런 그런 사람들을 섭외하느는 것은 아니라고 변명해왔다. 하지만 기본적인 위생과 매너, 방송에 임하는 진정성 등은 솔루션이 시작되기 전에 제작진이 사전 섭외단계에서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게 바로 제작진의 역할이었다. 공교롭게도 하필 <골목식당>이 시청률에서 다소 침체기를 맞고 있었던 것과 맞물려 닭갈빗집 빌런이 등장한 시점이 왠지 무관해보이지 않는 이유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선의와 명분이 항상 올바른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위기의 골목상권과 자영업자를 살리자는 취지로 시작된 <골목식당>이 무분별하게 빌런을 이용하여 화제를 끌어내려고 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골목식당>이 가진 위상을 고려하면, 앞으로는 정말로 도움이 절실하고 장사를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갖춘 사장님들에게만 합당한 기회가 주어져야하지 않을까.
골목식당 백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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