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챔피언' 울산이 새 감독으로 한국 축구의 레전드를 선임했다.

울산 현대 구단은 24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올 시즌을 끝으로 물러난 김도훈 감독을 대신해 내년부터 팀을 이끌 새 감독으로 홍명보 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를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김도훈 감독이 팀을 이끌었던 지난 4년 동안 FA컵 우승 1회(2017년)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2020년)를 차지한 울산은 2005년 이후 15년간 무관에 머물렀던 K리그 정상에 오르기 위해 '홍명보 카드'를 꺼냈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30년 동안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축구의 레전드로 군림했지만 K리그 감독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명보 감독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K리그에 감독으로 공헌할 수 있게 된 점과 그 팀이 K리그를 선도하는 울산이라는 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울산이 K리그에서 성적과 팬 프렌들리 활동 등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1990년대 한국축구를 이끌었던 '아시아의 베켄바워'
 
 축구협회와 3년 간의 동행을 마무리하는 홍명보 전무.

축구협회와 3년 간의 동행을 마무리하는 홍명보 전무. ⓒ 연합뉴스

 
한국 축구 역사에서 '손차박(손흥민, 차범근, 박지성)'으로 불리는 유럽파 3인방을 제외하면 홍명보 감독보다 뛰어난 실적을 쌓은 인물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홍명보 감독은 선수로서도, 지도자로서도 화려한 업적을 만든 한국축구가 낳은 슈퍼스타다. 고려대 시절이었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통해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홍명보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월드컵 본선에만 무려 4번이나 출전했다.

홍명보 감독이 한국 축구에서 가장 위상이 높았던 시기는 1994년 미국 월드컵이었다. 당시 홍명보 감독은 최후방 수비수로 출전했으면서도 스페인전 프리킥 만회골과 독일전 중거리 만회골을 터트리며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멀티골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축구 역사에서 단일 월드컵 멀티골을 기록한 선수는 홍명보를 포함해 단 4명(홍명보, 안정환, 이청용, 손흥민) 밖에 없다.

2002 월드컵에서는 터키와의 3, 4위전에서 경기 시작과 동시에 하칸 쉬퀴르에게 공을 빼앗겨 월드컵 역대 최단시간(11초) 골을 허용하는 흑역사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실수를 제외하면 홍명보의 2002 월드컵 활약은 '완벽'에 가까웠다. 최진철,김태영과 강력한 스리백을 형성한 홍명보는 조별리그부터 4강까지 6경기에서 단 3골만을 허용한 최고의 수비라인을 이끌었고 아시아인 최초로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홍명보는 클럽에서도 최고의 길만 걸었다. 1992년 포항에 입단한 홍명보는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포항을 K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데뷔 첫 해 리그 MVP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1997년 벨마레 히라쓰카를 거쳐 1999년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한 홍명보는 황선홍, 유상철과 함께 코리안 삼총사로 활약했다. 2003년과 2004년에는 데이비드 베컴과 스티븐 제라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등이 활약했던 미 메이저리그 사커 LA 갤럭시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홍명보 감독의 포지션은 골키퍼 바로 앞에 위치하는 최후방 수비수였지만 홍명보 감독의 플레이스타일은 흔히 생각하는 전통적인 센터백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홍명보는 최후방에서 수비를 하다가도 경기 흐름을 바꿔야 할 시기가 오면 과감하게 공격에 가담해 미드필더 위치에서 '프리롤'로 활약했다. 홍명보가 한국축구의 중심으로 활약하던 90년대 '아시아의 베켄바워'로 불린 이유다.

브라질 월드컵 실패 뒤로 하고 울산 리그 우승 도전

2004년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한 홍명보 감독은 2005년부터 대표팀 코치를 맡으면서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대표팀 수석코치와 러시아리그의 FC 안지 마하치칼라 수석코치를 거친 홍명보 감독은 2009년 U-20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감독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 의 멤버들을 주축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어 주기를 기대하는 대한축구협회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은 연령별 대표팀을 지도하면서 감독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2009년 U-20 월드컵에서 한국을 8강에 진출시킨 홍명보 감독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기성용, 구자철, 박주영, 김보경 등이 주축이 된 대표팀을 이끌었다. 한국은 런던올림픽 8강에서 개최국 영국, 3, 4위전에서 숙적 일본을 꺾고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은 이 기세를 몰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휘봉까지 잡게 됐다.

하지만 큰 기대와 달리 한국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의 부진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실패를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홍명보 감독도 처음으로 좌절을 경험했다. 브라질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홍명보 감독은 2015년부터 3년 간 중국팀을 지휘하다가 2017년부터 대한축구협회의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따라서 울산 감독이 된 것은 약 4년 만의 현장 복귀다.

울산은 2019년 다득점, 올해는 승점 3점 차이로 아쉽게 우승을 놓쳤을 만큼 객관적인 전력 만큼은 K리그 정상급으로 꼽힌다. 골키퍼 조현우부터 수비라인에 박주호, 홍철, 정승현, 미드필더에 이청용, 윤빛가람, 신진호, 공격진에 주니오, 비욘존슨까지 K리그를 주름잡는 스타 선수들이 즐비하다. 여기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상당히 많은 규모의 상금을 벌어 겨울 이적시장에서 추가적인 보강도 가능하다.

홍명보 감독으로서는 전임 김도훈 감독이 지난 4년 간 잘 차려 놓은 밥상을 체하지 않고 잘 먹기만 하더라도 울산을 16년 만에 K리그 정상으로 올릴 수 있다. 만약 울산을 우승시킨다면 브라질 월드컵 실패 이후 나락으로 떨어졌던 지도자로서의 명예도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홍명보 감독이 울산을 맡으면서 K리그 지도자들의 경쟁이 한층 더 뜨거워졌고 축구팬들은 K리그를 즐기는 재미가 하나 더 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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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 아시아의 베켄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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