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팀이 간파한 전술을 고집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게임 흐름을 바꾸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한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이 게임을 통해 한국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게임 통산 500승이라는 기록을 만들어낸 것도 의미 있는 일이며 지난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우승 팀 카타르를 이번에 이겼다는 것도 나름대로 성과라 할 수 있다. 비록 시원한 승리로 말하기에는 모자라지만 코로나19 감염 선수가 나온 와중에도 유럽 현지에서 열린 A매치 두 게임 일정을 소화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17일 오후 10시 오스트리아에 있는 BSFZ 아레나에서 벌어진 카타르 축구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2-1로 이기고 이번 가을 A매치 두 게임을 마무리했다.

 
 17일 오후 오스트리아 마리아 엔처스도르프의 BSFZ 아레나에서 열린 한국과 카타르의 축구대표팀 평가전. 황희찬이 선제골을 터트린 뒤 기뻐하고 있다.

17일 오후 오스트리아 마리아 엔처스도르프의 BSFZ 아레나에서 열린 한국과 카타르의 축구대표팀 평가전. 황희찬이 선제골을 터트린 뒤 기뻐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제공

 
A매치 500승의 주춧돌, 최단 시간 골로 만들다

벤투호는 지난 15일 열린 멕시코와의 평가전, 후방 빌드 업 과정에서 실수가 많아 잔소리를 꽤 들어야 했다. 이번 상대 팀 카타르가 현 아시아 남자축구 디펜딩 챔피언이기에 가볍게 볼 상대는 아니었지만 벤투호의 2021년 계획을 세우는데 중요한 근거 자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였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르기 위한 아시아지역 예선 일정이 새해부터 이어지기 때문에 서아시아권의 실력자 카타트를 상대로 우리 공격력이 어디까지 통할 수 있는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킥 오프 휘슬 소리가 들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카타르 수비수들이 공을 뒤로 돌릴 때 바짝 따라붙은 황의조가 골문 바로 앞에서 부알렘 쿠키 소유의 공을 가로챘고 곧바로 황희찬에게 패스해 빈 골문에 공을 밀어 넣었다. 정확히 16초만에 벌어진 일이어서 한국 남자축구 A매치 최단 시간 득점 기록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어설프게 공을 돌리다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우리 수비수들이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도 직접 경험한 바 있기에 이토록 이른 시간에 입장을 바꿔 골을 성공시켰으니 묘한 감정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카타르 수비수 부알렘 쿠키가 실점하는 순간 얼굴을 감싸쥔 것이 남의 일이 아닌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수비 라인은 여전히 뒷문이 뻥 뚫려 있었다. 선취골 여운이 가시기도 전인 9분에 뼈아픈 동점골을 내준 것이다. 센터백(권경원-원두재)을 기준으로 오프 사이드 함정을 의미하는 최종 수비 라인을 그려야 하는 순간, 오른쪽 풀백으로 나온 김태환 위치가 애매했다. 카타르의 타렉 살만이 기습적으로 찔러준 공을 골잡이 알모에즈 알리가 훌륭한 라인 브레이킹 실력을 뽐내며 받아서 묵직한 오른발 슛으로 1-1 점수판을 만들었다.

이 동점골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도 더 많은 골을 내줄 것처럼 허둥거리는 우리 수비 라인에 있었다. 실점 후 2분만에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이 어이없는 패스 미스를 저질러 카타르 에이스 알 하이도스에게 아찔한 슛 기회를 내준 것이다. 그로부터 10분 뒤에도 카타르 득점 선수 알모에즈 알리의 감각적인 전진 패스를 받은 미드필드 알라에딘의 왼발 슛이 우리 골문을 크게 위협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골키퍼 구성윤이 자기 왼쪽으로 몸을 날려 그 공을 쳐냈다.

카타르가 자랑하는 플레이 메이커 알 하이도스는 30분에도 한국 미드필더 정우영을 가볍게 따돌리고 위력적인 오른발 슛을 날려 우리 골키퍼 구성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 때 손흥민의 소속 팀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 이적 소식이 들리기도 했던 한국 센터백의 희망 김민재를 비롯하여 노련한 왼발잡이 풀백 김진수가 서로 다른 이유로 이번에 합류하지 못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권경원-원두재'가 맡고 있는 한국 수비 라인의 중심은 여러가지로 불안감에 흔들렸다. 

단순히 후방 빌드 업 조직력 훈련이 미흡하다는 것과는 다른 근본적인 수비 차원의 문제였다. 가장 눈에 띄는 불안 요소는 전문적인 센터백 자원이 아닌 원두재의 부담감이었다. U-23 대표팀에서 그 실력을 검증받은 바 있는 원두재이기에 약간 성격이 다른 역할을 맡을 수도 있지만, A 매치 레벨을 상징하듯 상대 팀 공격수들부터 압박 수위가 남달랐고 이에 당황한 그가 눈에 띄는 실수를 몇 차례 저지른 것이다.

후반전, 전술 변화의 가치 깨닫다

카타르 선수들의 강한 압박 축구를 견디느라 숨 쉴 틈조차 없었지만 이 게임 중반부(31~60분)에 이르자 우리 선수들은 눈에 띄게 실수를 줄이고 당당히 게임 흐름을 휘어잡기 시작했다. 36분에 왼쪽 측면에서 날카로운 패스 조직력을 뽐내며 귀중한 결승골을 뽑아낸 것이다. 왼쪽 옆줄 바로 앞 좁은 공간이었지만 미드필더 이재성은 주장 손흥민의 빠른 공간 침투를 바라보며 감각적인 전진 패스를 밀어주었고 손흥민은 멕시코와의 평가전에 이어 다시 한 번 골잡이 황의조와 찰떡 궁합을 자랑했다. 지체없이 왼발로 넘겨준 크로스를 황의조가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마중나가서 방향을 살짝 틀어 성공시켰다.

비록 이후 시간에는 더이상 골이 터지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지만 파울루 벤투 감독은 후반전에 접어들어서 과감한 변화를 꾀했다. 우선 4-3-3 포메이션을 4-2-3-1 형태로 바꾸며 중원을 든든하게 지켰다. 63분에 이주용과 손준호가 함께 들어오면서 수비쪽 상태는 눈에 띄게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짧은 패스, 중거리 패스를 적절하게 섞어서 탈압박을 정확하게 펼치기 위해 필드 플레이어들이 부지런히 더 좋은 위치로 끊임없이 움직인 덕분이었다.

카타르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윙백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서 '압델카림 하산(왼쪽), 페드로 미겔(오른쪽)'이 번갈아 가며 우리 측면 공간을 파고들었지만 김태환과 이주용이 시간을 나눠서 뛰었고 윤종규가 63분 동안은 왼쪽 풀백으로, 그 이후 시간은 오른쪽 풀백 역할을 맡아 A 매치 데뷔 게임을 비교적 무난하게 치르며 상대 팀 측면 공격 봉쇄 임무를 수행했다.

64분부터는 카타르의 실질적인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아크람 아피프가 교체 선수로 들어와 뛰었지만 끝내 한국 골문 안쪽을 직접 위협하는 슛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이 게임 후반부에는 에이스 손흥민에게 골잡이 역할을 맡겨 결정적인 슛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한 번 더 변화를 준 것이 눈에 띄었다. 이미 카타르 수비수들이 손흥민의 존재 가치를 잘 알고 있기에 이 변화가 큰 효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손흥민 못지 않게 빠른 날개 공격수 엄원상과 함께 시도하는 역습 기대감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어린 이강인도 75분에 남태희 대신 들어와 가운데 미드필더와 측면 미드필더 역할을 두 가지나 소화해내며 기술적 완성도 높은 탈압박 개인 전술을 뽐내기도 했다. 여기에 2020 K리그 1 MVP에 빛나는 손준호까지 들어와서 살림꾼 역할을 맡아주었으니 흔히 말하는 구멍을 최소화하며 게임을 마무리할 수 있는 뒷심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곡절 끝에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열린 A매치 두 게임을 1승 1패(4득점 4실점)로 끝낸 우리 선수들은 각자 소속팀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세기를 띄우는 등 특별 수송 계획에 따르게 된다.

남자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결과(17일 오후 10시, BSFZ 아레나-오스트리아)

한국 2-1 카타르 [득점 : 황희찬(1분,도움-황의조), 황의조(36분,도움-손흥민) / 알모에즈 알리(9분,도움-타렉 살만)]

한국 남자축구대표 선수들
FW : 손흥민, 황의조(87분↔주세종), 황희찬(75분↔엄원상)
MF : 이재성(63분↔손준호), 정우영, 남태희(75분↔이강인)
DF : 윤종규, 권경원, 원두재, 김태환(63분↔이주용)
GK : 구성윤(46분↔이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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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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