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안양 KGC 인삼공사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경기. 인삼공사 오세근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지난 10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안양 KGC 인삼공사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경기. 인삼공사 오세근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농구 안양 KGC 인삼공사의 간판스타 오세근은 2010년대 이후 서장훈-김주성의 아성을 잇는 한국농구 최고의 토종빅맨으로 꼽힌다. 데뷔 이래 KGC에서만 10년 가까이 활약중인 원클럽맨이며 프로농구 챔프전 우승도 두 차례나 경험했고, 정규리그 MVP(2017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2014년) 등 지금 은퇴한다 해도 레전드로 남을 수 있는 화려한 업적들을 쌓았다.

그러나 더 빛날 수도 있었을 오세근의 커리어를 깎아 먹은 것은 빈번한 부상이었다. 2011-12시즌 프로에 데뷔한 오세근은 올해로 어느덧 10년 차를 맞이하고 있지만 정규리그 54경기를 모두 소화한 것은 2016-17시즌 단 한 번 뿐이다. 오세근이 비교적 건강하게 한 시즌을 완주했다고 할만한 경우는 단 3번(2011-12시즌 52경기, 2013-14시즌 49경기, 2016-17시즌 54경기)뿐이고 이중 KGC는 2번(2011-12, 2016-17)을 우승했다. 괜히 '건세근'(건강한 오세근이 있으면 우승후보)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오세근은 나머지 6시즌 동안은 평균 24.6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다. 데뷔 2년 차에 발목 부상으로 아예 1시즌을 통째로 날리기도 했으며 이후로도 무릎, 갈비뼈, 어깨 등의 부상에 시달리며 수술대에 오른 것만 수차례다. 또한 2015-16시즌에는 부상이 아니라 중앙대 시절 스포츠도박 불법 베팅을 한 사실이 드러나며 20경기 출전 정지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조기종료된 2019~2020 시즌도 어깨 부상으로 17경기 만에 중도 이탈하며 시즌 종료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2020년 11월 13일 현재 오세근은 프로 통산 318경기에 출장했는데 이 기간 동안 무려 172경기나 결장했다. 커리어의 약 35%에 이르는 일정을 결장했다는 것은 리그 MVP급 선수의 내구성으로는 대단히 아쉬운 수치다.

잦은 부상이 남긴 후유증은 오세근의 시간만이 아니라 자신감과 기량마저 조금씩 갉아먹었다. 2020-21시즌 개막 이후 오세근은 오랜만에 결장 없이 팀이 치른 13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하지만 오세근은 평균 12점, 5.5리바운드로 이름값에 비해 다소 초라한 기록에 그치며 예전만큼의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우승후보로까지 지목되었던 안양 KGC는 7승 6패로 5위에 그치며 간신히 5할을 넘는 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팀의 기둥 오세근의 몸상태가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KGC는 지난 12일 부산 KT에게 충격패를 당했다. 상대인 KT는 KGC를 만나기 전까지 최근 7연패의 수렁에 빠져 있었으며 마커스 데릭슨의 부상 공백으로 외국인 선수가 브랜든 브라운 1명 밖에 없는 절대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KGC는 외국인 2명을 모두 가동하고도 오히려 KT의 골밑공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강력한 토종빅맨이 없는 KT에서 매치업의 우위를 점할수 있었던 오세근은 8점 5리바운드에 그쳤다.

오세근은 잦은 부상 때문에 몸 상태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듯 예전같은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오지 않고 있다. 특유의 파워 넘치는 포스트업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확률 높았던 중거리슛의 정확도 역시 많이 떨어졌다. 오세근이 올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던 경기에서 KGC는 6승 1패를 거둔 반면, 한 자릿수 득점에 그친 경기에서는 1승 5패라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더 큰 문제는 수비다. KGC의 강점은 본래 수비에 있었는데 올시즌에는 양희종의 부상 공백과 오세근의 부진이 겹치면서 초반부터 수비 조직력에 구멍이 뚫렸다. 당초 올시즌 높이가 좋은 장신 외국인 선수들이 가세한 것이 변수로 주목되었지만 뚜껑을 열자 오히려 기동력을 앞세운 스몰라인업이 더 각광을 받고 있다. 상대가 정통 4번(파워포워드)을 두지 않고 스몰라인업을 내세웠을 때는 오세근이 외곽까지 수비 범위를 넓혀야하는데, 오세근의 순발력이 떨어지며 상대 스텝을 민첩하게 따라가지 못하다보니 베이스라인에서부터 번번이 뜷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설상가상 KGC의 1옵션 외국인 선수인 얼 클락도 신장만 크지 수비가 그렇게 좋지 않고 골밑보다 외곽지향적인 플레이를 즐겨하는 선수라 오세근의 약점을 제대로 커버해주지 못하고 있다. KT전에서는 오세근과 클락이 둘다 수비가 안되어 정통빅맨이 없는 KT에게 골밑을 연달아 집중 공략당하는 웃지못할 장면이 나왔다. 김승기 감독도 작전타임 때마다 지적했지만 선수들이 따라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느덧 선수생활 후반기에 접어든 오세근은 '양보다 질'로 승부해야할 시기다. 더 이상 오세근이 매경기 30분 이상을 출장하여 20점-10리바운드 이상을 기록하고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팀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눈높이를 낮춰야할 필요가 있다. 오세근도 어느덧 33세이고 조금 이른듯 하지만 기량과 몸상태가 전성기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한다. 오세근보다 한 세대위의 선배이자 KBL 역대급 빅맨이라는 서장훈과 김주성 등도 30대 중반에 접어들며 서서히 팀내 위상과 플레이스타일의 변화를 요구받으며 시행착오를 겪은 바 있다.

단순히 출장시간 조절보다도 역할의 변화까지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한다. 오세근을 과감하게 식스맨으로 내리거나 아예 중요한 승부처에만 기용하는 것이다. 오세근의 장점인 슈팅능력을 활용하여 스트레치형 포워드로의 완전한 전환도 고려해볼 만하다. 핵심은 오세근에게 주어지는 체력적-전술적 부담을 최소화하고 '선수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플레이'에만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말년의 김주성은 2016년부터 식스맨으로 보직을 변경하고 3점슛의 비중을 늘려 플레이스타일도 빅맨에서 사실상 장신 슈팅가드에 가깝게 전향했다. 이상범 원주 DB 감독은 김주성을 4쿼터 위주로 집중기용하며 경기를 마무리하는 '조커'의 역할을 맡겼다.

KGC도 이제 오세근 의존도에서 서서히 벗어나 다음 시대를 생각해야할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KGC에는 이미 변준형-문성곤 등 오세근 다음 세대의 간판 스타 계보를 물려받아야할 선수들이 존재한다. 올시즌만이 아니라 선수와 팀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제는 오세근에게 주어진 부담을 차츰 덜어내 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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