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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 경남시민행동은 10일 저녁 창원마산 오동동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에서 “창원 수요집회”를 열었다.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 경남시민행동은 10일 저녁 창원마산 오동동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에서 “창원 수요집회”를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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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하라. 배상하라. 끝까지 이어가자."

10일 저녁 경남 창원마산 오동동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에 모인 100여 명의 시민들이 외쳤다. 이날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 경남시민행동은 지난 3일에 이어 두 번째 수요집회를 열었다. 이날 수요집회는 시민발언과 문화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 경남시민행동이 10일 저녁 창원마산 오동동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에서 연 “창원 수요집회”에서 이경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 경남시민행동이 10일 저녁 창원마산 오동동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에서 연 “창원 수요집회”에서 이경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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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서 이경희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마창진시민모임 대표는 "최근 이용수 할머니 사건 때문에 역사수정주의자들이 더 활개를 친다.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든가 수요집회를 그만 두라고 한다"며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30년 동안 외치고 해도 답답하니까, 다른 방법으로 하자고 한 것을 저들은 교묘하게 뒤집어 가지고, 수요집회를 하지 마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역사는 피해자중심주의로 가야 한다. 피해 당사자가 몸소 겪은 증언이 진실이다"며 "지금 우리는 일본과 싸우는 게 아니다. 역사수정주의자와 같은 한국의 보수, 일본의 아베 같은 우익이나 보수들과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저도 옆집과 싸우지 않고 잘 지내고 싶다. 그렇게 하려면 반드시 지켜야 될 게 있다. 서로 갈등의 중요한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며 "역사의 진실을 바라보고,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며 배상하고, 후손에게 역사를 제대로 가르칠 때 사이좋게 지내고 화해가 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경희 대표는 "우리는 지금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함께, 더 힘차게, 씩씩하게, 끝까지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문현숙 경남여성연대 대표는 "며칠 전, 남해에 살다 돌아가신 고 박숙이 할머니의 생애에 대해 들었다. 16살 때 돈을 벌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끌려가서 7년간 위안부 생활을 강요 받았다"고 했다.

문 대표는 "남해 고향으로 돌아와 3명의 고아를 키우셨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남해를 떠나고 나서야 피해자라고 밝히셨다"며 "할머니가 96세로 돌아가시기 전까기 젊은 학생들을 열심히 만났다"고 했다.

이어 "학생들을 만나면, 나라가 없어서 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 나라 잃은 백성은 이런 일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이럴 때일수록 박숙이 할머니 같은 피해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그 정신을 새겨야 한다. 우리 운동이 수세에 몰릴 것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문현숙 대표는 "요즘 정의기억연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는 정의연과 할머니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 빚을 나누어 가져야 할 때이고, 그렇게 하는 게 우리의 몫이다"며 "우리 모두가 이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 경남시민행동이 10일 저녁 창원마산 오동동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에서 연 “창원 수요집회”에서 정민호씨가 발언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 경남시민행동이 10일 저녁 창원마산 오동동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에서 연 “창원 수요집회”에서 정민호씨가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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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정민호(마산내서)씨도 "먼저 (정의기억연대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손영미 소장의 명복을 빈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제가 기억하는 '정신대'라는 말은 초등학교 때 증조할머니께서 처음 해 주셨다. 12살에 시집을 오셨는데 왜 그렇게 일찍 오셨냐고 여쭤보니 '혼인 안한 처녀는 정신대로 끌려간다는 소문을 듣고, 일찍 시집을 오셨다'고 하셨다"고 했다.

1907년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을 설명한 그는 "일본은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일본제일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만을 사용하게 했다. 전형적인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 중 하나였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대한제국은 국채 1200만원이라는 빚을 지게 된다. 당시 대한제국 1년 예산이 대략 2300만원 정도 였다고 하니 절반 정도 되는 엄청난 큰 돈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약 250조원 정도다"고 했다.

이어 "이 빚을 갚기 위해 국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남자들은 담배 끊기 운동, 여자들은 은비녀 모우기 운동, 기생들도 거금을 헌납하는 등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는 신분의 귀천이 따로 없었다"며 "그리하여 1년 동안 약 4만명이 참여하여 230만원이 모금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움직임에 당황한 일본이 계략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국채보상운동을 이끌던 대한매일신보 영국인 베델과 한국인 사장 양기탁이 돈을 횡령했다고 누명을 씌웠던 것"이라며 "이 일을 계기로 베델은 영국으로 추방되고 양기탁은 재판에 회부되고 만다. 물론 국채보상운동도 실패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작금의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보면, 과거 일본이 하던 행태가 지금의 언론과 야당이 주장하는 억지 논리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렇다면 왜 저들은 30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활동가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되려는 순간 의혹을 제기하는 것일까"라고 질문했다.

정씨는 "시민활동가 윤미향가 아닌 국회의원 윤미향은 국회를 움직여 입법 활동을 더욱 가속화 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 일본의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알리는 데 더욱 큰 목소리를 가지기 때문"이라며 "이런 일련의 활동을 일본이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우리나라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정씨는 "국가가 외면했던 세월 동안, 스스로 증인이 되어야 했던 고통스런 세월 동안, 그 30년 세월을 묵묵히 할머니 곁에서 같이 비를 맞아 주었던 사람이 누구냐"며 "세계적 여성인권운동으로 발돋움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정의연의 전신) 정대협 아니냐"고 했다.

그는 "일본의 전시 성폭력 문제에 평소 관심도 없었던 위정자들은 작은 흠으로 30년 세월을 통째로 부정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이 원하는 동아시아 30년 침략전쟁 역사 부정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립운동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왜놈 편에 서서야 되겠느냐"며 "10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나도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 그것이 비록 수치스러운 역사일지라도 우리는 후손들에게 되풀이 되지 않는 역사를 물려주기 위해서 기억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 경남시민행동은 10일 저녁 창원마산 오동동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에서 “창원 수요집회”를 열었다.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 경남시민행동은 10일 저녁 창원마산 오동동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에서 “창원 수요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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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 경남시민행동은 10일 저녁 창원마산 오동동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에서 “창원 수요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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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일본군'위안부', #수요집회, #인권자주평화다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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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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