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0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KIA 윌리엄스 감독이 1회 초에 선수들의 플레이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 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0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KIA 윌리엄스 감독이 1회 초에 선수들의 플레이를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올시즌부터 KBO리그를 중계하고 있는 미국 스포츠 방송 ESPN은 국내 구단들을 메이저리그에 빗대어 소개하며 KIA 타이거즈를 '한국의 뉴욕 양키스'라고 설명한 바 있다. 리그 최다우승팀이자 전통의 명문, 높은 TV중계 시청률과 전국구적 인기 구단이라는 점이 여러모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ESPN이 빠뜨린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이 모든 정보가 '과거형'이라는 사실이다. 올시즌 KBO리그를 처음으로 접한 해외 팬들은 KIA 타이거즈의 경기력을 보고 '이것이 과연 한국 프로야구 최고 명문구단의 실력인가',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즌 초반이지만 KIA의 상황이 심각해보인다. KIA는 5경기를 치른 현재 1승 4패로 10개 구단 중 꼴찌로 추락했다. 아직 극초반이라 순위에 큰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 경기력이 더 암울하다. 지난 5일 개막 이후 제대로 풀린 경기가 사실상 한 번도 없다고 할만큼 험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삼성과의 주말 대구 3연전은 KIA의 초라한 현 주소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올시즌도 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받는 삼성은 홈 개막전에서 NC에 무기력하게 3연패를 당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KIA는 시즌 첫 대결이었던 지난 8일 0-5로 무기력하게 영봉패를 당하며 초보 허삼영 감독에게 데뷔 첫 승을 선물한 데 이어, 9일에는 2-14로 대량실점을 허용하며 완패했다. 10일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삼성에 위닝시리즈를 내줬다. NC와 개막 3연전에서 총 5득점, 팀타율 .138에 그쳤던 물방망이가 기아를 만나자 순식간에 불방망이로 변신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반면 KIA의 경기력은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8일 경기에서는 수비에서 실책이 속출하며 무너졌다면, 9일에는 타선에서 병살쇼가 속출했다. 1회 김선빈의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더블플레이로 이어진 것을 시작으로 2회, 4회, 6회, 8회 모두 주자가 출루하고도 후속타자들이 줄줄이 병살을 기록하며 흐름이 끊겼다.

막장 경기력의 절정은 8회에 벌어졌다. 7회까지 2-5로 끌려가던 KIA는 8회말 4번째 투수 김현준-이준영-변시원까지 3명의 투수가 한 이닝에만 볼넷 6개를 내주는 등 형편없는 제구력을 선보인 끝에 무려 6피안타 9실점을 헌납했다. 이 경기에서 KIA가 허용한 전체 볼넷만 무려 9개였다.

급기야 윌리엄스 KIA 감독은 2-14로 점수차가 벌어지며 승부가 기울자 마운드에 전문 투수가 아닌 야수인 황윤호를 올렸다. 2사 만루에 구원 등판한 황윤호는 다행히 삼성 박해민을 파울 플라이로 막아 이닝을 마치며 더 큰 참사를 막기는 했다. 

지명타자제도가 운영되는 KBO리그에서도 종종 야수가 투수로 등판하거나, 투수가 대타로 나서는 경우가 있다. 야수인 나성범(NC)이나 강백호(kt) 등의 투수 등판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만 이 경우는 팬 서비스 차원의 이벤트 성격이 강했다는 게 차이다.

하지만 황윤호의 경우 팬 서비스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고육책에 가까웠다. 당시 KIA는 이미 마운드가 완전히 고갈된 상황이었다. 개막 5경기 중 6일 외인선발 브룩스가 5.2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4경기에서는 양현종(3이닝 4실점), 이민우(5.2이닝 4실점), 가뇽 (5.1이닝 4실점), 임기영(4.1이닝 4실점) 등이 모두 저조한 내용을 보였고, 이는 자연히 불펜의 과부하로 이어졌다. 하지만 KIA 불펜진은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9.00(19이닝 23피안타 16볼넷 21실점)으로 난타를 당하며 선발보다 더 부진했다. 

윌리엄스 감독은 어차피 승부가 이미 기운 상황에서 불펜 투수진마저 내보내는 줄줄이 난타를 당하자, 다음날 경기까지 고려하여 이상의 마운드 소모를 막기 위해 결국 '야수의 투수 투입'이라는 변칙을 선택했다. 팀마다 1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이벤트성 장면이 시즌 초반, 그것도 굴욕적인 대패를 당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은 선수들 입장에서도 자존심에 흠집이 날 수밖에 없다.

물론 윌리엄스 감독의 선택도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기를 지켜본 팬들의 입장에서는 황윤호의 투입 자체가 사실상 경기를 포기한 공개적인 '백기투항'과 다를 바 없다. KIA 투수들 입장에서도 앞서 줄줄이 화려한 볼넷쇼를 남발한 끝에 야수가 대신 마운드에 투입되어 이닝을 겨우 마무리했을만큼 신뢰를 주지못했다는 점에서 '굴욕을 두 번 당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KIA는 현재 타선, 수비, 마운드가 모두 총체적인 난국이다. 윌리엄스 감독의 한국야구 적응, 몇몇 선수들의 부상 공백같은 변수가 있었다고 하지만 다른 팀들도 그 정도의 조건은 비슷하다. 오히려 KIA는 베스트 전력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벌써부터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는 경기력이 불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어쩐지 황윤호의 투수 투입같은 돌발 해프닝이 올시즌 KIA에는 한번의 우연한 이벤트로만 끝나지 않을 것같다는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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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타이거즈 황윤호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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