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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자가 직접 물류센터에서 이틀간 일하면서 취재한 내용으로 38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도 이천 물류센터 공사현장 화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작업의 종류를 떠나 기본적으로 안전을 대하는 측면에서 보면 물류센터 공사 전이나 완공 후에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전의 외주화가 지속적인 문제점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은 원청과 하청업체, 일용직과 외국인 노동자로 이어지는 생계의 먹이사슬이 존재하고 있고, 안전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기 위한 교묘한 무책임 때문에 안전의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이 점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기자말]
 
29일 화재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A물류창고에서 소방대원들이 밤을 잊은 채 수색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20.4.29
 29일 화재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A물류창고에서 소방대원들이 밤을 잊은 채 수색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20.4.29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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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도 군포와 이천에서 잇따라 발생한 물류센터 화재는 아직도 법과 현실의 괴리감이 큰 우리 안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4월 21일 군포터미널 내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담배꽁초를 버려 220억 원가량의 재산피해를 낸 혐의로 튀니지 국적의 A씨가 중실화 혐의로 구속됐다. 같은 달 29일 발생한 이천 물류센터 화재 참사에선 무려 38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안전불감증이니 인재니 하는 두루뭉술한 말로 또다시 사고의 본질은 가려지고 있다.   

도대체 물류창고 현장에는 어떤 문제점들이 있을까? 5월 2일과 3일, 양일간 경기도에 있는 한 물류창고에서 일하며 그 속을 직접 들여다보았다.

기자가 일한 곳은 신축건물로 지하 2층, 지상 5층의 1급 소방대상물이다. 소방대상물은 면적과 층수에 따라서 특급, 1급, 2급, 3급으로 분류되며 해당 급수에 맞는 소방안전관리자를 반드시 선임해야 한다.     

곳곳이 안전 지뢰밭 
  
경기도 소재의 한 물류센터 내부
 경기도 소재의 한 물류센터 내부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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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틀간 20시간을 일하며 물류센터 내부를 살펴보니 곳곳이 안전 지뢰밭이었다. 문제를 크게 건물 구조적인 문제, 인적 문제 그리고 시스템의 문제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우선 건물의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보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신축건물인데도 창고시설 특성상 층고가 높고 냉장창고와 냉동창고의 온도차이로 인해 생긴 결로, 습기, 먼지 등이 열·연기 화재 감지기의 잦은 오작동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일단 감지기가 작동하면 정상적인 경우 방재실에 위치한 화재 수신반으로 신호가 전달된다. 이렇게 수신반에 신호가 전달되면 화면에 감지기의 위치와 상태가 표시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비상 방송설비를 통해 건물 전체에 대피 안내방송이 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틀 동안 무려 30여 차례 이상 발생한 감지기 오작동은 방재실을 마비시켜 버리기에 충분했다. 시설팀을 비롯해 보안팀 등 많은 인력이 오작동이 된 감지기를 찾아내 제거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재 수신반 중간 빨간 네모칸안에 오렌지색으로 점등된 버튼들이 주경종. 지구경종 등이 작동하지 않도록 차단해 놓은 것이다.
 화재 수신반 중간 빨간 네모칸안에 오렌지색으로 점등된 버튼들이 주경종. 지구경종 등이 작동하지 않도록 차단해 놓은 것이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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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감지기 오작동의 원인을 파악하기보다는 회사의 높은 분들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최대한 화재경보가 울리지 않도록, 정확하게는 화재경보가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해당 설비를 직접 설치한 게 아니다 보니 그 원인을 제삼자가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부실설계인지, 시공의 문제인지 확인이 필요해 보였지만, 방화셔터와 벽 틈에 설치된 감지기에는 사람이 접근하기조차 어려워 보였다.   

건물이 지어진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오작동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방재실 관계자들은 내부적으로 오작동에 대한 보고는 하지만, 정작 시공업체를 불러 A/S를 요청하고 원인을 파악하려 하지는 않았다. 한 관계자는 업체 설치 담당자가 퇴사하는 바람에 이도저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보통 건물이 완공이 되면 2년 동안 하자보수를 받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3일 오전에는 감지기 오작동으로 방화셔터가 작동해 사고가 날 뻔하기도 했다. 

또 다른 문제는 감지기 오작동이 빈번하다 보니 관할 소방서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자동화재속보설비를 결속해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방서가 출동하면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감지기 오작동으로 인해 방화셔터가 중간까지 내려와 있다.
 감지기 오작동으로 인해 방화셔터가 중간까지 내려와 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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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교육은 어디로? 각자도생의 시대 

두 번째로 인적문제를 살펴보자. 지하 1층에 내려가 보니 상당수의 외국인 근로자와 일용직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었지만 정작 필요한 소방안전 교육은 없었다. 관련 교육을 받지 못하다 보니 비상구 앞에 각종 장애물이 방치되어 있고 지게차와 팔레트에 부딪혀 파손된 소방설비도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물류센터는 건물이 크고 곳곳이 막혀있어 자칫 사고가 나면 대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안전교육은 필수다.

한편 물류센터 특성상 다수의 업체 사람들이 드나들다 보니 부적절한 장소에서의 흡연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비상구 앞을 롤테이너들이 가로막고 있다.
 비상구 앞을 롤테이너들이 가로막고 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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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팀에서 수거한 담배꽁초들.
 미화팀에서 수거한 담배꽁초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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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은 그만하자

마지막으로 시스템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해당 건물의 본사와는 별도로 건물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하청업체에서 시설관리를 맡아서 하다 보니 소방안전관리자를 비롯해 방재실 직원에겐 화재예방을 위한 권한이 없었다. 본사 직원 또는 협력사 등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시설물을 유지·보수하는 쪽에 대부분의 업무가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아무나 화재 수신반을 만지는가 하면 수신반의 회로를 차단해 놓으라는 부적절한 지시도 오고 간다. 소위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끌고 가는 비정상적 상황'이 화재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정부와 지자체, 관계기관이 관리·감독 등 제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사고가 날 때마다 "유가족에게 슬픈 소식을 전달 드려 죄송하다"는 변명도 식상하다.

관련 법령을 개선하고 현장 안전수칙을 강화해 보지만 원청, 하청, 협력업체, 일용직과 외국인 근로자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에서 안전시스템은 여전히 가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태그:#이건 소방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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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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