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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영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사회학자로서의 성찰을 담은 칼럼을 연재합니다.[편집자말]
 
지난 3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퀸스의 엘름허스트 병원 입구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3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퀸스의 엘름허스트 병원 입구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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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전 세계를 차례차례 휩쓸며 지나는 중이고, 그 끝도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그런데 전 지구를 강타한 리스크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은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더 아프게, 더 힘들게 이 시기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화 시대의 리스크: 생산된 리스크 + 리스크의 민주화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리스크라는 것이 '생산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과 더불어 '민주화'되었음을 통찰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세계화된 시대에는 리스크 또한 전 지구적으로 작동한다. 황사나 미세먼지도, 온난화도, 핵무기도 부자나 높은 사람을 피해가지 않는다. 산업화된 리스크 또한 전 지구적 연결망 안에서 작동하기에 부자나라라고, 큰 나라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중국이 감기에 걸리면, 미국은 몸살을 앓게 되고, 전 세계는 폐렴에 걸릴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산다.

바이러스 또한, 특히 코로나19처럼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는 사람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 바이러스는 치명률이 높았던 사스나 메르스, 에볼라보다 훨씬 '민주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여전히 리스크의 계층성이 강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사라지지 않는 리스크의 계층성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현상이 관찰되지만, 자본주의의 중심 미국 상황은 '민주적' 바이러스조차 '선택적'으로 작용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에서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비율은 18%이지만, 코로나19 확진자 중 비율은 그 2배에 가깝고, 사망자 중 비율은 다시 그 2배에 달하는 곳까지 실정이다.(CNN 보도 참조) 거주자의 평균 연봉이 26억이 넘는다는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 앞의 부자섬 피셔아일랜드에서는 거주자들이 자비로 주민과 피고용인 등에 대한 코로나19 전수조사를 했다고 한다. 영국 총리도, CNN 유명 앵커 부부도 바이러스를 피하지 못했지만, 이것이 치명률보다는 전염력을 택한(?)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코로나19의 계층성을 다 덮지는 못한다.

중세 흑사병이, 20세기 초 (소위) 스페인독감이 그러했듯, 21세기 복지국가에서도 여전히 먼저 당하고, 치명적으로 당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인 것이다. 미세먼지는 민주적이지만, 좋은 집에 비싼 공기청정기를 두고 사는 사람과 종일 공사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동일한 리스크를 가진다 말하긴 민망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젊은 사람, 건강한 사람 그리고 잘 사는 사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덜 노출되고, 덜 죽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는 이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교정'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전통사회에 비교해서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중대한 질문 앞에 서있다. 그 힘과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인류가 그 힘과 능력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의지를 가지는가 하는 것이 역사가 진정 '발전'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가름할 가늠자가 될 것이다.

태그:#코로나19, #리스크민주화, #리스크계층성, #천개의샘, #코로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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