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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아이가 상처가 났다며 다짜고짜 따지는 전화가 왔다. 상처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었다. 알고 보니 그 아이는 학교가 아닌 태권도학원에서 다친 것이었다. 알아보기도 전에 교사한테 항의전화부터 했던 것이다."

"학교에서 퇴근하고 나서 밤 9시가 넘어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으니까 다음날 아침 7시까지 해서 '부재중 전화'가 계속 들어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교사들이 털어 놓는 '휴대전화 교권 침해' 사례다.

경남도교육청은 특히 심야 시간에 학생이나 학부모가 학교생활과 무관한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교육활동과 무관한 심야 사적 연락이나 학교 밖 상담요구를 하는 등 '휴대전화 교권침해'가 많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개 교권침해라고 하면 지금까지는 교사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폭언·욕설이라든지 성희롱, 폭행, 수업진행방해 등이었다. 그런데 최근 휴대전화와 관련한 교권침해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례는 더 있다. 경남도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발령 받은 지 2년 남짓한 여선생은 너무 늦은 시간에 학부모한테 전화가 와서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또 밤 10~12시 사이 잠에 들어야 할 시간에 학부모나 학생들한테서 전화가 와서 힘들다고 하는 교사들도 있다. 특히 교사들은 늦은 밤에 울리는 전화뿐만 아니라 문자메시지, 그리고 카톡 소리로 사생활 침해를 당하는 사례가 있다.

대개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사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근무한다. 근무시간 이외에 전화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카톡도 업무와 관련이 있으면 업무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

교사들은 아이가 아프다거나 급한 사무가 있다면 연락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교사들은 급한 일이 아닌데, 일상적인 업무라든지 개인적인 일까지 근무시간 이외에 전화 등으로 응대해야 하는 사례가 있다.

한 반에 학생수는 30~40명 정도다.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한 명이지만, 교사 입장에서 보면 30~40명이 되는 것이다. 학교 업무 이외에 일상적인 일에, 그것도 근무시간 이외에 전화나 문자, 카톡을 한다면 교사 입장에서 부담인 것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사들은 급한 일이거나 아이가 아플 경우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전화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례들도 많다"며 "가령 학부모가 '심심하다'거나 '대화가 필요하다'며 전화를 해오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 문제로 대화를 하다 보면 교사와 학부모가 친해질 수 있다. 친하다 보니까 사적인 대화까지 할 수 있다고 보지만, 학생이 많다 보니 교사 입장에서 일일이 응대하다 보니 부담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과 김지수 경남도의회 의장, 이만기 학교운영위원회 경남협의회장, 표병호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 위원장, 전희영 전교조 경남지부장은 3월 25일 경남도교육청 제2청사에서 ‘교육 공동체와 함께하는 교권보호 선언’을 했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과 김지수 경남도의회 의장, 이만기 학교운영위원회 경남협의회장, 표병호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 위원장, 전희영 전교조 경남지부장은 3월 25일 경남도교육청 제2청사에서 ‘교육 공동체와 함께하는 교권보호 선언’을 했다.
ⓒ 경남도교육청 이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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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장 통해 알린 내용을 다시 전화해서 물어"

최근 전교조 경남지부도 '휴대전화 교권 침해 사례'를 모았다. 전희영 전교조 경남지부장은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심야 시간에 학부모가 술을 한 잔 하고서는 전화를 해서 특별한 내용이 아닌데 하소연 하듯이 하는 사례도 있고, 학교 업무가 아닌 집안 일인데도 상담하는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고 밝혔다.

교사들이 학습준비물이나 체험학습 등에 대해 '알림장' 등을 통해 공지를 했는데도, 학부모들이 일과 시간 이후에 전화를 해서 다시 물어보는 사례도 있다.

전 지부장은 "학부모한테 공지할 사항은 대개 '알림장'을 통한다. 알림장만 잘 보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데, 전화를 해서 묻는다고 한다"며 "그리고 학부모들이 자잘한 내용으로 전화나 문자, 카톡을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교사들도 있다"고 밝혔다.

사례는 또 있다. 교사들은 "체험학습은 보통 3~4일 전에 신청하는데 일요일에 그것도 밤 10시에 전화를 해서 다음날 있을 체험학습 신청한다"거나 "저녁에 전화를 해서 아이들이 하교한 뒤에 학생들 간의 다툼에 대해 확인요청하는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밤 9시에 전화를 해서 남편이 집을 나간 이야기를 30분 넘도록 하는 경우", "학생이 아닌 학부모 사이의 갈등에 대해 퇴근시간이 지나서 상담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교사들은 털어놓았다.

학교나 학생과 관계된 일이 아니라 학부모가 교사한테 개인적인 관심을 표현하는 내용의 카톡을 보내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학부모가 자녀의 휴대전화로 교사의 카톡 사진을 훑어보며 "어디 다녔다"거나 "어느 선생과 친구다" 등의 사실을 알아냈다고 아이가 학교에 와서 이야기를 했고, 이에 교사는 부담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전희영 지부장은 "교사들은 근무시간 외에 그것도 늦은 밤 시간에 전화 때문에 교권을 침해 받는 사례가 잦다"며 "교사의 사생활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남도교육청은 '교권보호'에 나섰다. 교육청은 지난 25일 제2청사에서 '교육 공동체와 함께하는 교권보호 선언식'을 가졌고, 교사를 위한 심리검사실, 상담실 등을 갖춘 '경남행복교권드림센터'를 개관했다.

이날 '교권보호 선언식'에는 박종훈 교육감과 김지수 경남도의회 의장, 이만기 학교운영위원회 경남협의회장, 표병호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 위원장, 전희영 전교조 경남지부장 등이 참석했다.

교육청은 학교 현장 교권 침해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의지로, 직접 학교로 찾아가서 심리검사나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진단하고, 도움이 필요한 교원에게는 심리·법률 상담과 행정적인 지원서비스를 펼치는 '찾아가는 교원행복버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박종훈 교육감은 "교육은 교직원,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등 교육공동체 참여와 협력 속에서 상호 '존중과 배려' 문화가 뿌리내릴 때 가능하다"며 "교권 존중, 교육활동 보호에 다 함께 노력하자"고 밝혔다.
 
경남행복교권드림센터 개관.
 경남행복교권드림센터 개관.
ⓒ 경남도교육청 이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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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교권침해, #휴대전화, #경남도교육청, #경남행복교권드림센터, #전교조 경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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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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