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2013 시즌부터 2017-2018 시즌까지 V리그 여자부의 판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과연 이번 시즌 기업은행의 챔프전 파트너는 누구일까?"였다. 실제로 IBK기업은행 알토스는 2012-2013 시즌부터 2017-2018 시즌까지 6시즌 연속 챔프전에 진출해 3번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비록 연속 우승은 한 번도 없었지만 2010년대 V리그 여자부 최고의 팀이 기업은행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는 15일부터 시작되는 봄 배구에서는 누구보다 봄 배구에 익숙하던 기업은행의 플레이를 볼 수 없다. 지난 6일 19연패 중이던 최하위 KGC인삼공사에 덜미를 잡히면서 정규리그 4위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오는 10일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의 최종전에서 승점 3점을 따더라도 최종 승점 50점으로 52점으로 정규 리그를 마친 3위 GS칼텍스 KIXX에 미치지 못한다.

사실 6개 구단 중 3개 팀이 봄 배구에 진출하는 V리그 여자부에서 하위권 팀들은 저마다 치명적인 악재가 있었다. 5위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외국인 선수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큰 혼란을 겪으며 개막 11연패를 당했고 인삼공사 역시 알레나 버그스마의 부상 이후 팀 전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시즌 내내 한지현 리베로를 제외한 주요 선수들의 이탈이 없었음에도 봄 배구 진출 실패라는 실망스런 성적표를 받고 말았다.

박정아와 김희진, 외국인 선수로 구성된 막강 삼각편대 자랑하던 기업은행
 
 김희진은 박정아와 외국인 선수의 활약 덕에 센터와 라이트를 오가며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김희진은 박정아와 외국인 선수의 활약 덕에 센터와 라이트를 오가며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 한국배구연맹

 
아무리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크다지만 V리그에서 '쌍포 구축'은 강 팀이 되기 위한 최우선 조건이다. 2016-2017 시즌 타비 러브와 이재영으로 구성된 쌍포를 앞세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이번 시즌에도 베레니카 톰시아와 이재영의 활약에 힘입어 정규리그 우승이 매우 유력하다. 반면에 테일러 심슨이 7경기 만에 부상으로 교체된 2017-2018 시즌엔 최하위로 추락하기도 했다.

두 시즌 연속 우승을 노리는 도로공사는 더욱 노골적으로(?) 쌍포를 구축해 활용하고 있다. 발군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지만 수비와 서브 리시브에서 약점이 있는 박정아를 영입해 외국인 선수와 공격을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도로공사에 풍부한 경험을 갖춘 베테랑 리베로 임명옥과 리베로급 수비를 자랑하는 '문라이트' 문정원이 있기에 가능한 전술이다.

김희진과 박정아라는 '특급 신인'을 지명한 채 출발했던 기업은행 역시 6연속 챔프전에 진출하며 강호로 군림하는 동안 늘 위력적인 쌍포를 거느려 왔다. 물론 알레시아 리귤릭과 카리나 오카시오, 데스티니 후커 같은 아포짓 스파이커(오른쪽 공격수)를 활용하려면 대표팀의 주전 라이트 김희진이 센터로 변신해야 한다. 센터는 후위로 빠지면 리베로와 교체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센터로 출전하면 아무래도 득점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희진은 전위에 포진된 시간 동안 자신의 공격력을 최대한 활용해 강한 이동공격과 속공, 블로킹으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김희진은 후위에서도 강한 서브와 이따금씩 터지는 후위공격으로 팀 전력에 큰 보탬이 됐다. 물론 김희진의 센터 변신에 따른 효과는 박정아라는 V리그 정상급 윙스파이커가 있었기에 더욱 극대화될 수 있었다.

기업은행의 쌍포가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 시기는 메디슨 리쉘이 활약한 2016-2017 시즌과 2017-2018 시즌이었다. 평균 이상의 서브 리시브와 폭발적인 공격력을 갖춘 메디가 활약하면서 박정아는 수비 부담을 덜고 공격에 전념할 수 있었다. 김희진 역시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라이트에 배치되며 공격력을 극대화했다. 박정아와 김희진, 외국인 선수가 버틴 기업은행은 최고의 삼각편대를 형성했고 이는 6연속 챔프전 진출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확실한 토종 공격수 부재 속 어나이 1800회 공격시도 '혹사'  
 
 만23세의 어나이는 생애 첫 해외리그에서 한 시즌에 1800회가 넘는 공격을 시도하며 혹사 당했다.

만23세의 어나이는 생애 첫 해외리그에서 한 시즌에 1800회가 넘는 공격을 시도하며 혹사 당했다. ⓒ 한국배구연맹

 
기업은행은 2016-2017 시즌이 끝나고 박정아가 도로공사로 이적했고 2017-2018 시즌이 끝난 후에는 메디와의 계약기간마저 끝나 버렸다. 기업은행으로서는 삼각편대의 한쪽 날개와 주요 엔진 하나를 잃어버린 셈이다. 이정철 감독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996년생 어도라 어나이를 지명했고 김미연(흥국생명)이 떠난 자리를 메우기 위해 '사인 앤 트레이드'를 통해 2년 동안 배구계를 떠나 있던 '모카' 백목화를 영입했다.

3라운드까지 10승5패로 상위권을 유지하던 기업은행은 올스타 휴식기를 앞두고 3연패를 당하더니 후반기 9경기에서 3승6패로 무너지며 7연속 봄 배구 진출이 좌절됐다. 기업은행은 2016-2017 시즌 1위였던 공격 성공률이 이번 시즌 5위(36.87%)까지 떨어지며 예년처럼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쌍포 구축 실패'로 인한 공격 패턴의 단순화는 시즌 내내 기업은행의 발목을 잡았다.

기량을 걱정했던 어나이는 772득점으로 사실상 정규리그 득점왕을 예약하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팀 내 득점 2위가 센터 김희진(427점)이었을 정도로 다른 토종 날개 공격수들의 활약이 부족했다. 물론 이적 2년 차를 맞은 고예림은 307득점과 리시브 성공률 49.21%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고예림은 기본적으로 거포 타입이라기보다는 수비와 리시브에 더 큰 장점을 보이는 '살림꾼' 타입의 윙스파이커다.
 
고예림 '손끝을 노린다' 27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화성종합경기타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8-2019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IBK기업은행과 흥국생명의 경기. IBK기업은행 고예림이 공격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화성종합경기타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8-2019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IBK기업은행과 흥국생명의 경기. IBK기업은행 고예림이 공격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김희진을 라이트에 배치해 전후위에서 공격을 펼치게 하면 어나이와 이상적인 쌍포를 구축할 수 있다. 실제로 이정철 감독은 이번 시즌 '라이트 김희진 작전'을 심심치 않게 사용했다. 하지만 중앙에서 김희진의 역할을 대신해야 할 백업 센터 김현지나 문지윤은 국가대표 센터 김수지의 파트너가 되기엔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어나이는 공격시도 2위 이재영(1406회)보다도 400회 이상 많은 1853회의 공격을 시도하며 혹사 당했다.

지난 2016-2017시즌 인삼공사는 득점왕에 오른 알레나의 맹활약에 힘입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알레나의 부담을 덜어줄 공격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인삼공사는 지난 시즌 5위에 이어 이번 시즌에는 최하위로 추락했다. 기업은행 역시 시즌이 끝난 후 어나이의 공격 부담을 덜어줄 토종 공격수를 구하지 못하면 6연속 챔프전 진출의 영광은 과거의 '추억'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어나이 '블로킹을 뚫어라' 27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화성종합경기타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8-2019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IBK기업은행과 흥국생명의 경기. IBK기업은행 어나이가 공격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화성종합경기타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8-2019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IBK기업은행과 흥국생명의 경기. IBK기업은행 어나이가 공격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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