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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은 한국 사회를 느리지만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28년 묶여 있던 산업안전보건법이 높은 국회의 입법 장벽을 넘어 개정됐고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시작됐습니다. 그의 죽음의 의미를 짚어봅니다.[편집자말]
 
고 김용균씨가 지난해 9월 입사를 앞두고 자택에서 정장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고 김용균씨가 지난해 9월 입사를 앞두고 자택에서 정장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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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의 노래를 좋아하고, 군대 면회 온 아빠와 나란히 앉아 어색한 사진을 찍는 젊은이. 정규직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밀리고 밀려 비정규직이 되고, 그래도 번듯한 공기업이라며 기뻐했던 청년. 첫 출근 차림의 동영상을 엄마에게 보내고, 잘 지내니 아무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컵라면을 담은 가방을 들고 나서던 노동자. 누구나 길을 걷다 보면 몇 번이고 마주쳤을, 평범하고 또 평범한 스물네 살 김용균. 우리 사회가 몰랐어야 할 그 이름을 모두가 알게 된 계기는 그의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상기시켰다. 노동자가 생명을 부지하기가 쉽지 않은 한국, 하청에 외주에 이리저리 더 싼 목숨값을 찾아 다음 죽을 사람을 더 잘 찾아야 더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는 나라다. 이런 한국에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는 사치였다.

위험한 일자리라도 감지덕지해야 '젊은이답다'는 평가를 얻는다.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권리'란 단어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모두 김용균'이란 구호 속에는, 자신의 삶과 생명이 담겨 있다.

그의 죽음은 이런 한국사회를 진전시켰다. 28년 묶여 있던 산업안전보건법이 불과 8일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비록 정부 원안에 비해 사용자의 책임은 줄고, 민감한 내용은 시행령으로 위임된 미완의 개정이었지만, 높은 국회의 입법 장벽을 뛰어넘은 것은 온전히 그의 죽음과 유족의 의지였다.

정부도 느리지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무총리가 임명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유족과 시민대책위의 참여를 보장하기로 했으며, 노동부와 산자부 등은 부처합동 대책을 제시했다. 당정협의를 통해 발전소의 연료환경운전설비 업무에 대해 발전소 직접고용은 아니지만 공공기관으로 정규직 전환을 시작하기로 했다.

발전소 하청노동자 사망에 원청사의 책임을 분명히 했고, 원하청 구조 속에 나타나는 부당한 임금 중간 갈취를 없앴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국회와 정부가 여기까지 한 걸음 움직이게 하는 데에 꼬박 62일이 걸렸다.

기업살인법이 필요하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망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작업복.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망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작업복.
ⓒ 전국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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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죽음이 남긴 가장 중요한 의미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를 공유하는 것이다. '김용균법'이라고 떠들썩했던 개정 산안법을, 정작 김용균은 적용받지 못한다. 하루에 예닐곱 명씩, 일 년이면 2천명의 금쪽같은 목숨이 산업재해로 사그라지는 구조적 원인도 그대로다.

여전히 많은 위험업무가 하청업체로 외주된다. 내 공장에서 하청노동자가 죽어도 책임질 필요가 없고 무재해 사업장으로 지정되는 마당에, 어느 사용자가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는가. 자기 손이 아닌 사회구조를 통해 누군가가 죽음에 이를 때, 사람들의 죄책감은 무뎌진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선 '위험'과 '외주화'를 모두 다뤄야 한다. 바로 기업살인법(안전조치 미비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에 범죄 책임을 묻는 법률) 제정과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필요한 이유다.

그가 울린 경종은 '목숨값으로 움직이는 사회'를 향해 있다. 이 경종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오늘 길을 걷다 마주친 누군가가 또 '김용균'이 될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승철 기자는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입니다.


태그:#김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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