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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5일 민변,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해온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들이 의기투합해 회생희망센터를 만든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이은종·김남주 변호사가 지난 1년 동안 채무자를 위해 회생 파산 사건을 진행한 경험담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싣습니다.[편집자말]
 
채무 면책 통보서
 채무 면책 통보서
ⓒ 법무법인 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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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를 면책한다"

'면책한다'라는 뜻은 빚을 갚아야 할 책임을 면제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채무자에게는 찬란한 희망의 불빛 같은 말입니다. 저희는 이 짧은 8자를 얻어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변호사들입니다. 저희는 채무자 파산회생 사건을 1년 동안 집중적으로 해왔습니다.

1년 일을 해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글로 적어봅니다. 저희가 빚으로 고민하고 계신 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은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운이 없었던 것이니 다시 시작해 봅시다", "죄 지은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 아니니 당당하게 재기합시다" 입니다.

"파산회생 사건을 몇 건 해본 변호사 주제에 당신들이 채무자의 심정을 진심으로 알기나 해?"라고 물어보신다면, "그럼요 제가 해봐서 아는데 빚 문제, 그거 큰 문제 아닙니다" 이렇게 선뜻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번거롭지만 시도만 한다면 빚은 헤어나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라는 답은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채권자들 입장 생각이나 해봤나?

채권자들 입장에서 "돈 떼인 채권자 생각은 해봤어?",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문제는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물어 보실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채권자도 보호받아야죠. 저희 생각도 채권자와 같습니다. 하지만 채무자를 더 쥐어 짜 봐야 빚을 갚을 수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시대 추노꾼처럼 계속 쫓아다니면 이 분들은 산골로 숨어 들어 화전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다고 채권자가 돈을 변제 받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채무자가 경제영역에서 퇴장을 해버리면 사회 전체적으로 중요한 자원을 상실하는 문제가 있고, 사회복지 비용이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채무자가 재산을 숨겼는지, 기타 부정한 행위가 없는지는 법원이 면밀히 살펴본 후 면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개발사 등 벤처회사 경영자의 파산 도와

저희 법무법인은 지난 1년간 '회생희망센터'라는 이름으로 변호사들(공인회계사 자격도 있음)이 직접 채무자 회생을 위해 회생·파산 사건을 수행했습니다. 1년 동안 약 78억 원 채무를 면책(면제)시켰습니다. 4개월 19일 만에 채무가 면책된 사례도 있었고, 한 사람이 66억 원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전부 면책 신청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희망'을 드리고자 시작했는데, 그렇게까지는 못했어도 적어도 채무자들께 마음 속에 다시 희망을 품게 하는데 도움을 드리지 않았나 자찬해 봅니다(관련기사 : "우장창창과 채무자, '을을 위한 김앤장'도 있어야죠").

저희의 주된 고객은 벤처회사(특히 게임개발사)를 운영하다가 경영난으로 사업을 접는 사장님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은 끝까지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지인, 사돈의 팔촌까지 자금을 융통해서 사업에 투자했지만 끝내 도산하였습니다.

대부분은 매우 성실한 사장님들이었습니다. 본인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사업을 접으려고 하니 선뜻 결단이 서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저희와 상담을 진행하신 후에도 한참을 고뇌하셨습니다. 저희는 그럴 때마다 "사장님은 운이 없었지, 무능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습니다"라고 조언했습니다. 직원의 밀린 임금 문제, 투자자들과의 관계, 사업 파트너들과의 신뢰, 가족에 대한 미안한 마음, 곧 갚겠다고 빌린 지인들 채무... 고민스러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고뇌가 깊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채무자들의 고뇌
 
회사의 파산은 사업주 개인의 파산으로 이어지기 쉽다. (Photo by rawpixel.com from Pexels)
 회사의 파산은 사업주 개인의 파산으로 이어지기 쉽다. (Photo by rawpixel.com from Pexels)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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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뇌하는 사이에 채무가 연체되면서, 특히 카드론이나 제2금융권 채무까지 연체되면서 독촉을 받으면 더는 견디지 못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겁을 잔뜩 먹고 다급히 채권자들이 집에 찾아오는 것은 아닌지, 험한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저희에게 물어옵니다. 그때가 채무자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때 같아 보였습니다. 이럴 때 저희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요. 그럴 일 없습니다. 채권자들도 법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불법 추심은 못합니다"라고 안심을 시켜드립니다.

실제로 채권자들, 특히 카드회사, 제2금융기관 또는 그 회사로부터 채권을 넘겨받은 전문추심회사는 '부지런히' 매일 전화하고 우편물과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는 하지만, '험한 일'을 하진 않았습니다. 채무자는 집에 채무독촉 우편물이 오기 시작하면서 가족들이 채무 연체상태를 알게 되고 가족까지 불안해 하기에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이때가 인생의 '바닥'을 치는 때라고 저희는 말합니다. '바닥', 참 암울한 곳입니다. 하지만, '바닥'은 더 이상 그 밑으로 내려갈 일이 없는 곳입니다. 올라올 일만 남았습니다. 단, 회생파산 절차를 이용한다면 말입니다. 그 절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바닥'에 계속 머물 수도 있습니다.

채무자의 회피는 답 아니고 도피일 뿐, 최소한 직원 밀린 급여는 해결해줘야

어떤 채무자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회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국으로 나가거나 본인 이름으로 경제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채권자들은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법적 조치를 통해서 채권의 시효를 연장합니다.

저희 고객 중에서는 거의 20년 전에 사업에 실패해서 큰 빚을 지고 중국에 가서 생활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생활하기 위해서 파산신청을 의뢰하신 분도 있습니다. 그 분의 빚은 여전히 시효가 연장되어 원금을 넘는 이자가 덧붙여져서 남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빚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따라오고 자녀들에게 채무가 상속될 수도 있습니다. 도피하는 것보다 정면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회피를 하더라도 최소한 직원 급여 중에서 정부가 대신 지급해주는 체당금을 받도록 협조는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일은 힘든 일이 아닙니다. 본인 돈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회계 자료만 근로복지공단에 제공해주면 되는 일입니다. 본인을 위해 노력해준 직원들에게 최소한 그 정도는 해줘야겠지요. 그마저도 안 해주면 직원들은 사장님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소해서 처벌받게 할 수도 있으니, 선택이 아니라 사장님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체당금 절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필수입니다.

배우자가 작은 집 하나 소유하고 있는데 어떡하죠?

채무자들이 또 하나 걱정하는 문제가 배우자에게 채무가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상식인데요, 회생이나 파산절차에 가면 배우자 재산도 빚 갚는데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배우자 재산은 배우자의 것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채무 변제에 사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배우자 재산이 실질적으로 채무자 재산이라면 빚을 갚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법원은 배우자 재산이 진짜 배우자 재산인지 혹시 채무자의 재산이 아닌지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배우자 명의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던 사례에서 법원은 그 아파트를 어떻게 매수했는지 자금 원천을 꼼꼼하게 살펴봤는데, 배우자가 결혼 전부터 가지고 있던 돈에다가 결혼 후 자신의 수입을 저축한 돈을 보태고, 대출을 끼고 매수한 사실을 잘 소명해서 가족들의 보금자리인 그 아파트를 보유할 수 있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안에서는 배우자가 수억 원의 예적금과 보험 등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돈이 채무자가 준 돈이 아니라 배우자가 모은 돈이라는 사실을 잘 해명해서 빚 갚는데 사용하지 않았던 사례도 있습니다. 채무자 입장에서는 이것을 해명하기 위해서 번거롭겠지만 채권자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살펴봐야 하는 문제이니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해야겠죠.

회생이 좋아요? 파산이 좋아요?

법적 절차를 통해서 채무에서 면책 받겠다고 마음먹으면, 그 다음 "회생이 좋을까요, 파산이 좋을까요"라고 물어옵니다. 두 제도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감은 '회생'이 더 좋고, '파산'은 어감이 안 좋아서 그런지, 보통 채무자들은 '회생' 절차를 더 선호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보통 '파산'을 더 권해 드립니다. 소득으로 3년간 빚의 일부라도 갚는 회생 절차보다 파산 시점의 재산으로만 빚을 갚고 면책 받는 파산절차가 채무자 입장에서 면책까지 걸리는 시간도 짧고, 빚 갚는 돈도 더 적게 내기 때문에 유리합니다.

저희가 일을 해보니 실무적으로 개인회생절차에서 회생 위원들이 아주 많은 자료를 요청합니다. 물론 채권자들과 채무자들 사이에서 공평을 도모하기 위해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겠지요. 하지만 채권자들 입장에서는 과도한 채무로 인생의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오만가지 서류를, 그것도 한참 지난 일에 관한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채무자들이 그 고역을 하느니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는 지점입니다.

채무 면제 후 재도전 사례

이렇게 법적 절차를 활용해서 채무에서 면제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인생이 원상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어깨를 짓누르는 빚에서 벗어났지 않습니까. 다시 뛸 수 있게 몸이 가벼워졌지 않습니까. 이제 노력하기 나름 아닐까요. 재기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고, 재기지원펀드 자금도 3300억 원 조성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재기를 지원하는 이유는 한번 실패해본 분들이 생존확률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재도전 한마당' 행사를 열어 실패 극복 경험을 나누는 실패콘퍼런스 행사를 했습니다. 재기하는 중소기업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힐링캠프까지 마련되어 있습니다.

저희 고객 중 한 분은 파산절차 진행 중에도 중국 소재 대학교에 게임 강의를 하기도 하고, 면책을 받은 후 다시 귀국해서 VR 관련 회사에 부대표로 복귀하여 광저우, 서울, 부산 찍고 광주로 연일 사업을 위해 달리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IT 업계 임원으로 취업해서 다시 일을 시작하거나 파산 전에 확보한 인적 네트워크를 살려 투자 중개를 시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꼭 성공할 것이라 믿습니다. 저희들은 이 분들을 보면서 오히려 저희가 에너지를 얻고 남들이 하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파산회생 업무를 하는 변호사로서 자긍심도 생겼습니다.

채무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힘내시라고, 그리고 주변에 도움의 손길은 많으니 꼭 잡고 이겨내자고,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볕들 날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언급된 사례는 당사자께 동의를 받았습니다.
 
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대표 변호사(왼쪽)와 상가임차인소송센터장과 회생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는 박현정(오른쪽), 이은종 변호사.
 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대표 변호사(왼쪽)와 상가임차인소송센터장과 회생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는 박현정(오른쪽), 이은종 변호사.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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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법무법인 도담 이은종 변호사·공인회계사, 김남주 변호사가 쓴 글입니다.


태그:#채무회생, #파산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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