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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춘 인천광역시장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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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장 박남춘은 베이비부머의 상징이자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1958년 개띠다. 그의 생물학적 DNA(유전자)는 모르겠지만, 사회·정치적 DNA는 명확한 키워드를 갖고 있다. '바다'와 '노무현'이 대표적이다.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빼면 박남춘의 자기 정체성은 희미해진다. 현재까지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의 그를 만들어낸 외부 동력은 이 두 가지 키워드였다.

'바다'와의 인연은 이렇다. 대표적인 항구도시 인천 출신. 아내도 인천 동네 친구. 아버지와 어머니는 황해도 출신으로 인천에 정착. 아버지는 미8군 항만사령부 군무원 출신. 박남춘은 1985년부터 11년 동안 해운항만청 근무. YS와 DJ 권력교체기에는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실 행정관. 1998년 노무현 장관 시절 해양수산부 총무과장. 2001년 국립해양조사원장. 대학원 석사학위는 국제운송학. 첫 책은 <드넓은 바다, 끝없는 열정>. 인천에서 재선 국회의원, 현재는 인천시장. 군대만 공군.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1998년 해수부 장관-총무과장으로 만났다. "일면식도 없는 내가 거부하는데도 끝까지 총무과장을 고집한 걸 보면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었단다. 노 장관 밑에서 해수부의 부처 혁신을 주도했던 박남춘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인사제도·관리 비서관, 인사수석비서관으로 근무. 애초 정치에 뜻이 없었던 그는 노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를 결심했다. 노 대통령과의 인연이 20년째인 올해 인천시장에 당선.
 
박남춘 인천시장은 지난 5월 인천시장 예비후보 당시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9주기 추모메시지를 통해 고인과의 각별한 인연을 회상하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더 나은 세상, 더 좋은 인천을 만드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지난 5월 인천시장 예비후보 당시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9주기 추모메시지를 통해 고인과의 각별한 인연을 회상하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더 나은 세상, 더 좋은 인천을 만드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 박남춘 선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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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춘 인천시장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달리 '노무현'과 '바다'를 많이 거론한 건, 질문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박 시장의 사회·정치적 DNA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박 시장은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에 합의한 '10·4 남북정상선언'이 보수정권 아래서 무위로 돌아간 걸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올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에 합의한 '판문점·평양 선언'이 '10·4선언'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담은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평가한다. 

박 시장은 "남북 정상들의 선언을 이행하는데 있어서 인천이 실천의 중심에 서 있다"고 강조한다. 남북교류와 관련해 눈에 띄는 답변은 '바다가 맞닿아 있는 남·북한과 중국, 3자가 새로운 일을 구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경기도와 강원도도 북한과 접경지역이지만, 인천은 서해 바다로는 북한과 맞닿아 있고 하늘길과 바닷길의 거점이라는 대체불가능한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남북교류가 전제조건이다.

최우선 핵심과제로 꼽고 있는 '원도심과 신도심의 격차 해소'나 '원도심 도시재생'과 관련해서 박 시장은 "충분한 자원을 투자하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해 자신감을 심어주는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원도심 정책이 실패했던 건 "찔끔찔끔 하다가 끝났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허종식 부시장에게 '균형발전'이라는 직함을 달아준 것도 '총체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박 시장은 "원도심은 인천의 좋은 자원"이라고 강조한다.

박남춘 시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8일 오후 2시 인천시장실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박 시장과의 일문일답니다.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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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 100일이 지났는데 소회가 어떤가. 가장 힘들었던 일은?
"취임하는 날부터 태풍이 왔다. 취임식을 못하고, 취임사를 읽은 뒤 바로 재난상황실에 가서 업무를 시작했다. 유달리 크고 작은 화재가 많았다. 불행한 일이지만, 남동공단 화재로 한 공장에서 9명이 희생됐다. 유가족들께서 사회장으로 해달라는 했는데, 기준 때문에 못 해드려 마음이 무거웠다.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안전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 해양수산부 공무원, 청와대 수석비서관, 국회의원을 거쳐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이 됐다. 인천시장직을 수행해보니, 각각의 경험이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나.
"해양수산부에서는 과장 시절까지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해 정책으로 법제화하는 훈련을 받았다. 인천은 해양도시이니까 해양수산부 시절의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됐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는 국정상황실장과 인사수석비서관을 맡으면서 국정이 돌아가는 원리와 각각의 정책들이 갖는 정무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공교롭게도 행정안전위원회 상임위에 6년 동안 있었다. 그때 소방과 안전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민주당에서는 정책위부의장, 원내부대표, 최고위원 등의 경험을 통해서 정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알게 됐다. 광역단체장이 품었던 생각을 어떻게 하면 법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그때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경험이 인천시장 직무를 수행하는데 소중한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 입법부인 국회의원과 지방행정을 책임지는 인천시장은 어떤 차이점이 있나.
"국회의원은 '최신예 전투기 조종사'라고 표현하고 싶다. 국회의원은 의제와 문제점을 빨리 파악해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의견을 잘 듣고, 이슈화한 뒤 (입법) 절차를 잘 밟아나가면 된다. 협의 단계를 많이 거치지 않고도 상임위에서 질의를 통해 의사를 표출할 수 있고 (개선안을 이끌어낼 수 있다). 개별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이다보니까 혼자 구상해도 크게 지장이 없고, 속도도 빠르다. 

그런데 광역단체장은 '중고 함공모함'을 몰고 운항하는 느낌이다. '중고'라는 말은 제가 처음 맡는 조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전 시장들이 있었고, 인천시의 이름으로 추진해온 정책들이 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시민들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목적항'으로 가고 있는 거다. 시장 개인의 의사대로 신속하고 기민하게 결정할 수는 없다. 함께 타고 있는 승조원들, 인천시 공직자들이 뜻을 같이 해주어야 정책으로 뿌리내리고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

- 국회의원보다 인천시장 일이 더 힘든가.
"인천시장은 보좌를 받는 조직이 많은 대신 (담당해야 할) 범위가 넓다. 지방정부 일은 종합행정이라 시장이 두루 알아야 한다. 저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경험이 있어서 상황 파악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시의 정책을 들여다볼 때도 역사적인 배경 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래서 (광역단체장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박남춘 인천시장 인터뷰 1편 - '10·4선언 11주년 기념행사'로 본 평양 방문기
ⓒ 홍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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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10·4선언 1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는데, 이전에도 평양에 다녀온 적이 있는지.
"없다. 평양에 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이전에 북한 쪽에 가장 가까이 간 건 지난 2007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께서 남북 정상회담을 하러 남북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가실 때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인사했을 때다. 그리고 청와대로 돌아왔다."

- 처음 방문이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평양은 어떤 느낌이었나.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정세현·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일행과 같은 차를 탔다. 여러차례 평양에 다녀온 적이 있는 그 분들께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씀이 '평양에 높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는 거다. 여명거리 같은 곳은 똑같은 모양의 건물이 거의 없더라. 전직 통일부 장관들께서는 과거와 비교하면 북한 사람들이 많이 유연해졌다고 하더라. 그리고 평양거리에 반미 구호가 싹 사라졌다고 하더라."

- 평양에 가기 전 페이스북에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군사분계선에서 찍었던 사진을 올렸던데, 당시 10·4선언의 합의사항이 이후에 제대로 이행됐다면 남북문제는 물론 인천도 크게 달라졌을텐데.
"아쉽다. (남북관계가) 지난 9년 동안 후퇴했다. 10·4선언은 많은 부분이 인천과 직결된다. 북방한계선인 NLL을 포함한 공동어로수역이 이행됐더라면 서해 5도가 이미 평화지역이 됐을 것이다. 조업시간도 연장됐을 것이고, 서해 5도 주민들이 가장 바라는 여객선 운항 거리도 단축됐을 것이다. 항로만 변경해도 배시간이 1시간 가까이 단축될 수 있다. 평양 가기 전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를 갔을 때도 주민들에게 '우리 삶이 바뀌게 해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개성-해주-인천을 잇는 서해 평화협력지대가 10·4선언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이행됐더라면 인천이 더 발전했을 거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올해 이뤄진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이 10·4선언을 기반으로 해서 그것을 잘 이행하자는 합의라는 점이다. 이제라도 늦었지만 유엔 제재를 잘 감안해서 확실하게 남북교류가 잘 진척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 '가을이 왔다' 북한 예술단 공연을 인천에 유치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실현가능성이 어느 정도 된다고 보는지.
"참 복잡한 문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공연은 공연 횟수가 어느 정도인지도 따지더라. 그런데 인천 아트센터는 새 건물이라 불리한 점이 있다. 그렇지만, 대관 일정이 많이 안 잡혀 있어서 언제든 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연 경험이야 사전 리허설을 통해 극복하면 되고. 중요한 건 북한 예술단 규모다. 숙박과 이동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협의가 들어가야 공연 유치 여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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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방문 때 북한측 관계자들을 만나 협의하거나 제안한 다른 공동사업이나 프로젝트는?
"(북한) 민화협 인사들이 왔다. 방북했던 시장·지사들과 함께 그 분들을 만났다. 과거 인천에서 했던 (남북교류) 사업들을 복원하자, 고려 역사와 관련된 학술 교류를 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이광재 전 지사와 이야기를 나눌 때 보니 (북한측에서) 스마트 시티에 관심이 많더라. 그래서 스마트 시티가 잘 돼 있는 인천 송도에도 와보고, 국제 학술대회를 평양-인천에서 번갈아가며 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도 나눴다.

자칫 지방자치단체 간에 (남북교류 사업이) 중복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인천은 산업이나 환경 등 우리와 여러가지 측면에서 비슷한 북한 지역을 선정해 자매도시 인연을 맺어 집중적으로 교류하면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려면 인천이 (북한의) 어느 도시와 가장 흡사한지 조사를 해야 한다. 인천시 공무원들도 워크샵 등을 통해 전문가들에게 배워야 하고. 너무 서두르면 실수한다. 

우리 인천은 10·4선언 이행의 중심에 있다. 남북군사회담도 인천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관심있게 살펴볼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기반을 닦아야 하는 평화고속도로, 우리나라 관문인 영종도를 기점으로 해서 북한으로 가장 빨리 가는 고속도로를 놓는 일을 추진하려고 한다. 강화를 거쳐서 한 길은 개성으로 가고, 다른 한 길은 해주로 가는 고속도로를 놓자고 제안하고, 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어느 것이 남북교류 사업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인천의 대부분의 일들이 (남북문제와) 연결돼 있다. 인천공항같은 경우도, 북한측하고 이야기가 잘 되면 거점 공항으로 쓸 수 있다. 백두산 갈 때 인천공항을 거쳐갈 수 있도록. 항로 개설도 하고, 필요하면 삼지연공항에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투자해 기반시설을 함께 닦을 수도 있다. 찾아보면 무궁무진하다. 인천항을 통해 개성으로 물건을 날랐듯이 해상 물류의 중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 현재 추진중인 '교동 평화산업단지' 조성에 대해서는 일부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지근거리에 개성공단이 있는데 경쟁력이 떨어지고 중복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남북이) 상호 협력한다는 측면에서 노력하면 얼마든지 길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인천의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아직 자동차 보급이 잘 안 돼 있다. 인천은 자동차 산업도 갖고 있다. 그리고 인천이 갖고 있는 선진 항만의 노하우와 시스템을 통해 북한측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인천은 다양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인천은 중국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바다를 맞대고 있는) 남한과 북한, 중국이 연결되는 새로운 일을 구상할 수도 있다." 

- 평양 방문단 일행들이 지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식수한 소위 '노무현 소나무'를 봤다고 들었다. 감회가 남달랐을텐데. 
"(노무현) 대통령님은 가셨어도 추구했던 남북 평화와 번영에 대한 생각들이 저 소나무가 풋풋하게 살아있듯이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봉하에서 가져간 흙과 물을 뿌리면서 남북평화를 잘 계승·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관송이라고 하는데, 옆으로 잘 퍼져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더라."
 
▲ 박남춘 인천시장 인터뷰 2편 - 박남춘이 본 노무현과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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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시장께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해양수산부 시절부터 청와대까지 인연이 이어졌고, 문재인 대통령과는 참여정부 시절 함께 청와대에 근무했다. 박남춘이 본 노무현과 문재인은 어떤 사람인가.
"두 분 모두 제게는 좋은 스승이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해수부 장관 시절 총무과장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게 청와대까지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권위주의와 지역주의의 벽에 어떻게 자신의 몸을 던져 정치를 했는가를 어깨너머로나마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건 내게 영광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당대에는 꽃을 못 피우더라. 

사실 정치를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돌아가시니까 (정치를) 하게 되더라. 원칙과 소신에 의해 대통령이 되신 분을 스승으로 뒀는데, 그 분이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나라도 그 분 뜻을 이어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향인 인천에서 정치를 하게 된 거다. 그 분만큼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그 분 생각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게 됐다. 문 대통령과 직접 상하관계로 일하게 된 건 제가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수석 시절에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맡았다. 당시 인사추천위원장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께서는 그 당시에는 정치하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본인은 정치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모든 문제를 결정할 때 굉장히 명철했다. 어려운 결정을 할 때 노 대통령께서 문재인 실장의 의견을 많이 듣고 굉장히 존중했다. '실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많이 물었다. 그만큼 문 대통령은 의사 결정이 신중하고, 공부를 많이 한다. 인사추천위원장으로서 자기 생각이 있을 수 있는데도 비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한 번도 없다. 외유내강한 분이다. 모든 일을 정말 열심히 한다. 그때도 그랬고, 대선후보 시절에도 캠프 사람들이 '밤 새서 자료 읽지 말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 박남춘 인천시장 인터뷰② ▶ http://omn.kr/1bdf4 로 이어집니다.)

태그:#박남춘, #인천시장, #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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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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