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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2주에 한 번씩 하는 성당 봉사단체 모임이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인 8월 9일에 있었습니다. 작년 말에 회장님은 새해를 맞이해서 분기별로 한 가지씩 뜻깊은 행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올 1월에는 어려운 사람들을 성당으로 초대해서 떡만둣국 잔치를 했고, 5월에는 두 가정을 대상으로 도배를 했습니다. 해보지 않은 것이라서 힘은 들었지만, 하고 난 뒤에 회원들은 정말로 보람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는 8월말로 대충 잡은 나들이였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성당에서 반찬을 만들어 드리는 대상자들을 모시고 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쐬어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여름의 견뎌내기 힘든 무더위가 그런 생각을 더욱 더 갖게 만들었습니다.

대상자들 대부분이 연세가 많아 밖에 오래 계시지 못하고, 몇 분은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서, 이 행사는 그냥 넘어갔으면 하고 나는 속으로 바랐습니다.

회장님은 회합 시간에 이것에 대해 아주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순간 회합실은 조용해졌습니다. 하지만 조금 있다가 회원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취소하고 다음에 다시 추진하자는 말도 있었고, 이왕 계획에 잡은 것이니 그냥 밀고 나가자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한 회원이 발언권을 얻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번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분들의 처지입니다. 우리가 가정방문을 하며 활동을 해 봐서 알고 있듯이 그분들은 거의 다 집에서만 생활합니다.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는 일이 그분들한테는 아주 큰일입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더 움직이고 그분들 편에서 생각하고 일을 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한 회원의 그 발언은 순식간에 우리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줬습니다. 나 또한 그분들이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는 일이 매우 큰일이라는 그의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회장님은 하나로 통일된 분위기를 금방 알아채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자신도 사실 이번 행사에 대해서 많이 주저했는데, 회원들이 이렇게 추진하자고 하니 우리 다함께 힘을 합쳐서 잘해보자고 말했습니다.

하마터면 놓칠 뻔한 기회
 
대상자들은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하셨습니다.
 대상자들은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하셨습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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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날짜와 장소가 토의를 거쳐서 정해졌습니다. 참가자를 정해서 일일이 연락을 하며, 나들이 당일에 성당으로 모셔오기로 했습니다. 관광버스를 하는 성당 신자를 만나서 버스를 예약했습니다. 날짜는 9월 29일 토요일로 정했는데 그 사이에 한가위 명절이 끼어있어서 시간이 넉넉지 않았지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우리가 정한 계획표에 따라 열심히 움직여 주었습니다.

휠체어를 두 대 빌려오는 것은 사회복지 일을 하는 한 회원이 맡기로 했습니다. 장소는 성당에서 가까운 강화로 잡았는데, 일정표는 버스기사가 대상자의 처지를 고려해서 어렵지 않은 곳으로 짰습니다. 나들이 하루 전인 28일에는 몇 명의 회원들이 회장님의 개인 사무실에 모여서 참가자에게 나눠줄 간식을 하나하나 즐거운 마음으로 포장을 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9월 29일이 왔습니다. 대상자들과 회원들 모두 30명이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연세가 많아서 몸이 불편한 대상자들을 회원들이 각자 맡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주었습니다.

대상자들은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하셨습니다. 버스 안에서 대상자들은 자신들의 노래솜씨를 마음껏 뽐냈습니다. 두 분은 한 곡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두 곡이나 신나게 불러서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나도 이번 나들이 덕분에 대상자들과 석모대교를 처음 건넜고, 거기에서 족욕이라는 것도 처음 해봤습니다. 어느 회원은 족욕을 마친 한 할머니의 발을 직접 키친타월로 닦아주고 양말을 신겨주었습니다. 한 회원은 휠체어를 탄 대상자를 모시고 화장실에 갔는데, 장애인용이 없는 불편한 환경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잘 볼 수 있게 거들어드렸습니다.

족욕을 한 뒤에 보문사 입구에 있는 한 식당에 모여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거의 다 큰 방에 앉았지만 몸이 불편한 몇 명은 밖의 의자에 앉았습니다. 대상자들 사이사이에 회원들이 껴 앉아서 그동안 못 나눴던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초지진에 내려서 해바라기를 실컷 하며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김치" 하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 하트를 만드는 그분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저절로 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버스가 성당에 닿은 뒤 집이 먼 대상자들을 회원들이 직접 모셔다드렸습니다. 나중에 평가회를 겸한 저녁식사를 회원들이 같이 했는데, 자가용으로 대상자들을 모셔다드린 한 회원이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차 안에서 살아생전 강화에 한 번도 못 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성당의 봉사단체 덕분에 갔다 오게 됐다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한 회원은 이번에 대상자들과 바람 쐰 것이 매우 좋았다며,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말고 연중행사로 했으면 참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화기애애한 평가회를 보면서 8월 회합 때의 그 회원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의 말 한 마디가 그날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행사를 하게 만들어준 그 회원이 한없이 고마웠습니다.

태그:#봉사활동, #여행생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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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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