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상류사회> 포스터.

영화 <상류사회>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1960)를 임상수 감독이 각색한 <하녀>(2010)엔 돈의 힘을 빌려 상류층이 된 남성 훈(이정재)이 등장한다. 가지고 싶은 건 가져야 하는 이 남성에게 은이(전도연)라는 평범한 여성은 성적이면서 동시에 물적 대상이 됐다.

흔히 말하는 대한민국 상류층의 전형적 이미지는 아마 이 영화 이후부터 강화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같은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2014)은 한층 본격적으로 상류 집단이라 불리는 인물들의 내면을 다뤘고, <내부자들> <베테랑> 등 이른바 사회 고발 혹은 풍자 성격을 갖는 오락영화에서 일부 재활용되기도 했다.  

또 다른 권력자들의 이야기?

재벌, 정치인이 중심에 선 이야기에서 언제나 여성은 소유의 대상이었다. 오는 29일 개봉할 변혁 감독의 <상류사회> 역시 크게 보면 재벌과 정치인의 전형적 이미지가 활용되는 대표적 작품이다. 다른 게 있다면 완전한 상류층이 아닌 상류층에 속하고 싶은 '어설픈 상위 계급'이 중심에 섰다는 점.

대학 내 인기 강사 태준(박해일), 국내 대형 미술관 부관장인 수연(수애)은 남부럽지 않게 사는 부부다. 시민은행 설립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공익적 성격의 경제 모델을 구상하는 태준과 치열하게 자신을 증명하며 관장 자리를 노리는 수연은 사뭇 대조적인데 영화는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놓인 신분 도약의 기회를 두고 두 사람이 반응하는 과정을 동력 삼아 사건을 진행시킨다.

막연하게 정치인을 꿈꾸는 태준에게 수연은 '기회를 잡으려고만 하지 말고 기회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이 대사에 수연의 성격이 대부분 드러난다. 재벌의 돈세탁을 마다하지 않으며 지켜온 부관장 자리에서 도약하고자 하는 수연은 스스로 욕망의 화신처럼 살아온 인물이다. 반면, 그 말에 수긍하며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보수 정당의 공천을 마다않는 태준은 일말의 윤리성을 지닌 중산 계급을 상징한다.
 영화 <상류사회> 관련 사진.

영화 <상류사회>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돈과 권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아니 적극적으로 무릎 꿇고 개처럼 살며 그걸 얻길 원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단상을 묘사한다. "꼴등이 일등 되는 게 아닌 이등과 삼등이 일등이 되려 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우리 사회에 다수가 아닌 일부 소수를 마치 핀셋으로 집어들듯 꺼내서 이것이 우리의 국민성이라고 설파하는 자세를 취한다.

일단 이 지점에 어폐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돈과 권력이 여전히 전부라는 이 영화의 단정적 태도는 금융위기 이후 제법 다양해진 사회구성원들의 가치관 내지는 삶의 태도를 오롯이 반영하진 못한다. 일부의 모습을 통해 과장하는 셈이다.

물론 이 영화가 묘사한 상류층의 모습들이 진실에 가깝거나 일부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 소수 상류층의 이야기가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에게 어떤 감흥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답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설정

사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노골적인 정사 장면, 특히나 이런 류의 영화에서 마찬가지로 전형화되다시피 한 남성 시각 중심의 묘사다. 영화는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수연의 욕망을 동력 삼고 있지만 동시에 수연과 같은 경쟁자 혹은 그와 동떨어진 재벌가 딸을 성적 대상화시킨다. 심지어 미술관 후견인인 재벌 그룹 회장(윤제문)에게 자신의 지위를 확인받기 위해 나서는 수연조차도 그의 성적 대상이 되기를 각오해야만 했다.

이를테면 태준의 비서관이 된 박은지(김규선) 역시 자신의 상황 안에서 욕망에 충실하지만, 영화에선 결국 태준의 섹스 상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등장한다. 직급은 수연보다 낮지만, 재벌가 자제인 민현아(한주영)조차도 등장하는 내내 섹시함을 강조하는 옷을 입고 있다.
 영화 <상류사회> 관련 사진.

영화 <상류사회>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특히 윤제문의 강한 정사신 장면은 극의 흐름상 매우 동떨어진 설정은 아니었지만 불필요하게 적나라하고 꽤 오랜 시간 묘사된다. 일본 AV배우 하마사키 마오가 이 장면에 등장하는데 남체와 여체를 소모적으로 활용하는 감독의 방식에 큰 의문점이 든다.

이 때문에 욕망의 폭주를 멈추고 방향을 바꿔보려는 수연과 태준이라는 캐릭터의 진정성이 희미해진다. 극 후반부에서 수연은 대사를 통해 욕망을 고백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극적 전환을 보이지만 영화적 감동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배우 수애와 박해일이 아니었다면 이 캐릭터들의 입체성은 보다 약해졌을 것이다. 여러모로 배우가 영화적 설정과 영화 속 세계관을 지탱해내는 분위기다.

한 줄 평 : 편견과 고정관념 속에서 더 내딛지 못한 한 걸음
평점 : ★★★(3/5)   

영화 <상류사회> 관련 정보

연출 및 각본 : 변혁
출연 : 박해일, 수애, 윤제문, 라미란, 이진욱, 김규선, 한주영, 김강우
제공 및 배급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 하이브미디어코프
크랭크인 : 2017년 11월 1일
크랭크업 : 2018년 1월 22일
러닝타임 : 120분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 2018년 8월 29일


상류사회 박해일 수애 이진욱 윤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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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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