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랑> 포스터

영화 <인랑>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인랑>은 동명의 일본 SF 애니매이션을 리메이크한 실사 영화다. 원작자 '오시이 마모루'는 잔혹 동화 '빨간 두건'(빨간 망토)을 차용해 일본의 대체 역사인 1950년대 권력암투를 선보인다. 영화 <인랑>은 그 누아르를 한국의 2029년 통일준비 정국에 접붙인다. 몇 년 전 기획이라서 오늘 한반도 상황보다 뒤진 셈이지만, 지금 여기의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연상시키는 늑대들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영화 <인랑>에서 늑대는 '늑대로 불리는 인간 병기'인 인랑을 가리킨다. 그러나 나는 '빨간 망토'의 교훈을 떠올리며 늑대 범주를 '인랑' 너머로 확대해 감상한다. 나름 정리하면 이렇다. '빨간 망토'는 그럴듯한 명분의 시류에 휩쓸려 희생되는 개개인이고, 늑대는 '빨간 망토'류의 개인들을 제 잇속을 차리는 수단으로 삼는 집단논리나 권력욕이다.

드러난 동기는 다르지만, 자폭한 빨간망토 소녀(신은수 분)나 그의 언니 이윤희(한효주 분)는 늑대에 물린 희생양이다. 진압 때 얻은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인랑 임중경(강동원 분)도 인간성 훼손 측면에서 희생양이다. 그러할 때 늑대 부류는 크게 셋이다. 반통일 반정부 무장테러단체 '섹트', '섹트'를 진압하기 위한 새로운 경찰조직 '특기대'(특수 무장 기동 준비대), '특기대'를 없앨 음모를 꾸미는 정보기관 '공안부'다.

<인랑> 속 철저히 늑대다운 캐릭터는 공안부 한상우

솔직히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임중경과 이윤희의 러브라인은 맛깔스럽지 않다. 그러나 사이 존재인 인랑, 즉 늑대의 잔혹성에 충실한 역할과 무시로 튀어나오는 인간적 감성 사이에서 부대끼는 임중경을 부각시킨다. 또한 그것은 한반도를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혼란기의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 놓여나게 한 근미래 버전의 스토리와 관계한다. 그걸 다지는 연결고리 캐릭터가 특기대의 리더 장진태(정우성 분)다.

나는 배우 정우성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영화 <인랑>의 장진태에게서 묵은지처럼 곰삭은 연기자 정우성을 보게 되니 좋다. 임중경을 향한 이윤희에게 장진태가 말한다. "우리는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늑대야." 그 말을 뒤집은, 장진태의 깁스한 왼팔이 역에서 이윤희를 배웅하는 임중경으로 연계된 해피엔딩은 인간으로 기운 인랑들(특기대)을 시사한다.

영화 <인랑>에서 철저히 늑대다운 캐릭터는 공안부의 한상우(김무열 분)다. 볼거리의 압권이었던 지하수로 공간에서 총기 열전을 벌이던 특기대 출신 한상우가 임중경을 향해 울분을 터뜨린다. "대체 내가 너랑 다른 게 뭔데?" 경쟁심이 박차를 가한 쿠데타의 실패를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공안부장 이기석(허준호 분)이 정치적 탄압이라고 일축하는 장면은 영화를 빼쏜 듯한 지금 여기의 난제들을 환기시킨다.

나는 영화 <인랑>의 미덕을 마지막 화면의 포스터 문장에서 찾는다. 제대로 외우지 못해 마지막 어말어미가 헷갈리지만, "미래를 맞는 자,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하다"다. 일상적 문법을 비틀어 어색하긴 해도, 관객에게 '빨간 망토'를 상기시키며 현재의 선택과 결정에 주목하게 한다. 민주국가의 근간이 되는 삼권분립을 훼손한 흔적들이 빼곡한 양승태 전 대법원체제의 문건들 처리도 그 중 하나다.

문득 고 신영복 교수의 '나무야 나무야'에서 마주한 글귀가 떠오른다. "피라미드의 건설이 정치가 아니라 피라미드의 해체가 정치다"라는. '빨간 망토'의 해피엔딩은 원전 이후 여러 버전을 낳는다. 늑대이기보다 인간을 택한 김지운 감독의 연출이 감동 창출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 의도는 지금 여기의 정치에서 유의미한 버전으로 재생산될 수도 있다. 새삼 감동을 안겼던 정치가, 고 노회찬 의원이 그립다.

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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