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랑>의 한 장면. 특기대 해체와 권력장악을 노리는 공안부장 이기석

영화 <인랑>의 한 장면. 특기대 해체와 권력장악을 노리는 공안부장 이기석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어느 시대 어느 나라건 개혁이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세력들이 있다. 오랜 시간 유지됐던 자신들의 기득권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멀리 찾을 것도 없이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국방부와 기무사가 벌이는 진실공방 또한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오랜 시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세력들은 누군가 자신들의 힘을 약하게 만들려고 할 때 반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은 더 큰 힘이다.

25일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영화 <인랑>은 이런 권력기관의 대립을 다룬다. 사회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기존 권력기관의 중심이었던 '공안부'와 새롭게 등장한 수도경비특수기동대(특기대)의 권력 다툼이 영화의 핵심이다. 사회 혼란을 주도적으로 수습하지 못해 약해진 공안부는 특기대에 밀리며 입지가 축소된 것에 자존심이 많이 상한 상태다. 따라서 기존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새롭게 떠오른 특기대를 견제하려고 하는데, 이는 기득권을 누리던 세력들이 자주 보여주는 모습과도 같다.

물론 특기대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는 없다. 특기대는 권력의 힘으로 부상한 자신들의 위상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나름의 대비책을 세운다. 특기대 내의 '인랑'은 그런 존재다. 이 과정에서 음모와 배신이 얽히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반정부단체 섹트는 공안부와 특기대 모두에게 적이지만,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섹트 활동 전력으로 권력에 쫓기는 신세라고 할지라도 때로는 권력기관의 구미에 따라 요긴한 도구로 바뀐다. 살아남기 위해 어디든 줄을 대야 하고, 무리한 요구가 있어도 들어줘야 한다. 섹트라는 주홍글씨가 남긴 운명이다. 권력기관은 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활용하려 한다.

원작에 충실했으나 영화적 배경은 설득력 약해

 영화 <인랑>의 한 장면. 특기대원 임중경

영화 <인랑>의 한 장면. 특기대원 임중경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일본 만화가 원작이지만, <인랑>은 권력기관의 역학관계를 통해 시대적 현실을 엿보게 한다.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도 그것에 맞춰져 있다. 영화에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냉전시대의 위상을 그리워하며 권력을 탐하는 공안부가 주요 갈등을 촉발시킨다. 여전히 개혁이나 변화를 거부하며 권력 곳곳에 존재해 있는 냉전 수구세력의 실체를 떠올리게도 하는 부분이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불사하는 태도 역시도 그렇다. 영화를 보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촛불시위 당시 기무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계엄령 문건이 떠올랐다. 자신들의 입지가 약해지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책임을 떠 넘기거나 자신들의 존재감을 어떻게든 과시하려 한다. 이를 통해 변화를 거부하려고 한다.

영화 속 공안부와 특기대의 파워게임에선 힘이 센 쪽이 평정한다. 하지만 그렇게 권력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것에 회의감이 생기기도 한다. 늑대의 심성을 가진 인간로 묘사돼지만 사람으로서 갖는 트라우마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인랑>은 이를 종합적으로 활용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SF, 액션, 첩보, 누아르에 주연인 강동원과 한효주의 멜로라인까지 영화 한 편에 여러 장르를 섞어 놨다. 속고 속이는 과정은 관객들이 쉽게 눈치 챌 수 없게 만든다.

권력기관의 대결은 극심한 충돌을 불러일으키는데, 무엇보다 남산타워와 마지막 부분에서 펼쳐지는 공안부와 특기대의 대결은 꽤 공들인 장면들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액션과 첩보물을 좋아하는 관객들은 더욱 몰두하며 보게 되는 장면이다. 특히 200억 원이 넘게 투입 제작비가 영상으로 와 닿는다. 적절히 가미된 멜로 역시 영화적 긴장을 느슨하게 하면서도 다시 조이는 역할을 해 재미를 선사한다.

다만 도입부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되는 배경과 싱황 설정은 설득력이 크지 않아 아쉽다. 원작에 충실하려 했기 때문이겠으나 현재 국제 정세와는 상반된다. 반정부 무장단체인 섹트의 출현 요인에 대해서도 통일을 반대하는 강대국의 무역봉쇄와 원유 수입제한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이 부분도 마찬가지다. 한국적 상황에서 이념이나 논리가 아닌 경제 위기가 심화돼 무장단체까지 생겨난다는 설정은 다소 무리해 보인다.

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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