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축구무대에서 '와일드카드'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다. 아시안게임에서는 2002년 부산 대회부터 적용됐다. 23세 이하 연령 제한이 있는 국제대회에서 팀별로 나이와 상관 없이 최대 3명까지 발탁가능한 와일드카드는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변수이자 어쩌면 각 팀의 전력을 좌우할 수 있는 강력한 조커로 평가받는다.

한국축구도 국제무대에서 와일드카드 때문에 희비가 엇갈린 경우가 많았다. 와일드카드 선수들에 대한 높은 기대치에 비하여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다. 또한 부상과 상대의 집중견제 등의 변수로 인하여 와일드카드로 뽑힌 선수들이 한 대회에서 모두 나란히 좋은 활약을 펼친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이후 2014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국제대회에서 한국대표팀의 와일드카드로 뽑힌 선수는 총 27명이다. 포지션별로 살펴보면 수비수가 가장 많은 9명이었고 공격수가 8명, 미드필더는 7명, 골키퍼는 3명이 와일드카드로 발탁된 바 있다. 2002 부산 대회는 이영표-김영철-이운재까지 유일하게 수비자원으로만 3명을 채웠다. 박주영-김정우-김동진처럼 드물게 국제대회에서 와일드카드로 2회 이상 발탁된 선수들도 있다.

전반적으로는 공격수들의 활약보다는 미드필더 수비수 포지션의 선수들의 기여도가 더 나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총 한골 싸움에 승부가 좌우되는 국제대회일수록 공격보다 안정된 수비를 더 중시하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와일드카드가 잘 활용된 사례와 안타까운 결과

역대 대표팀 중 와일드카드를 비교적 잘 활용한 사례로는 고 이광종 감독이 이끌었던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꼽을 수 있다. 당시 한국은 장신 공격수 김신욱, 수비수 박주호, 골키퍼 김승규까지 직전 브라질월드컵 성인대표팀 멤버 3인을 와일드카드로 선택했다. 비록 김신욱이 조별리그에서 당한 부상으로 토너먼트에서는 거의 기여하지 못했지만 박주호와 김승규는 수비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한국의 무실점 행진을 이끌었다.

당시 와일드카드 발탁에는 또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이광종 감독이 당초 우선순위로 고려했던 손흥민과 이명주 등의 차출이 소속팀의 반대로 잇달아 무산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또한 주포지션이 왼쪽 수비수였던 박주호는 김진수와 역할이 겹친다는 포지션 중복 우려가 나오기도 했으나 멀티플레이어답게 아시안게임에서는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격 변신하여 성공적인 공존을 이뤄냈다. 대회 개막 전까지 이광종호의 전력에 대하여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은 28년 만에 아시안게임 정상 탈환에 성공할 수 있었고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전원 병역혜택까지 얻는 행운까지 누리며 해피엔딩이 됐다.

하지만 2014년을 제외하면 한국축구가 와일드카드로 수혜를 입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아시안게임 최초로 와일드카드가 활용된 2002년 부산 대회에서는 이란과의 4강전에서 이영표가 결정적인 승부차기를 실축하며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 선택받았던 이천수, 김두현, 김동진은 대회 내내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선보이며 가장 실패한 와일드카드 조합으로 평가받는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는 박주영-김정우-신광훈을 기용했으나 역시 4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와일드카드로 뽑힌 선수들이 여러 차례 부상의 저주에 발목 잡히는 징크스도 반복됐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의 황선홍을 비롯하여,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의 김동진, 2012 런던올림픽의 김창수,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의 김신욱 등이 대회 도중 부상으로 쓰러지며 한국은 기대했던 최상의 전력을 가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많았다. 특히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당초 와일드카드로 선발했던 홍명보가 부상으로 낙마하면서 본선 개막 하루 전 대타로 급하게 투입된 수비수 강철은 실패한 와일드카드로 평가된다.

'AG 와일드카드' 손흥민-조현우-황의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김학범 감독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와일드카드(24세 이상)에 손흥민(왼쪽부터), 조현우, 황의조가 포함된 대표팀 소집 명단을 발표했다.

▲ 'AG 와일드카드' 손흥민-조현우-황의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김학범 감독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와일드카드(24세 이상)에 손흥민(왼쪽부터), 조현우, 황의조가 포함된 대표팀 소집 명단을 발표했다. ⓒ 연합뉴스


성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김학범호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와일드카드는 손흥민-조현우-황의조까지 공격수 2명에 골키퍼 1명으로 구성됐다. 와일드카드에 수비수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격수 자원을 2명이나 뽑은 것도 2016 리우올림픽(손흥민-석현준-장현수)을 제외하면 아시안게임에서는 최초다.

김학범호의 와일드카드는 이전 대회에 비하여 유독 논란이 많은 편이다. 한국축구의 에이스로 꼽히는 손흥민의 병역문제라는 민감한 이슈가 걸려있다. 그런 데다, 비교적 이름값이 떨어지고 포지션 중복 우려까지 거론되고 있는 황의조의 발탁, 노련한 수비 자원의 부재라는 불안요소가 맞물려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AG 축구 와일드카드에 손흥민, 황의조, 조현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김학범 감독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와일드카드(24세 이상)에 손흥민, 황의조, 조현우가 포함된 대표팀 소집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AG 축구 와일드카드에 손흥민, 황의조, 조현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김학범 감독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와일드카드(24세 이상)에 손흥민, 황의조, 조현우가 포함된 대표팀 소집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손흥민은 최근 소속팀 토트넘과 2023년까지 계약 연장에 성공했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병역문제가 유럽에서의 선수경력에 걸림돌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손흥민은 이미 병역혜택을 노릴 수 있었던 세 번의 국제대회(2012 런던올림픽, 2014 인천아시안게임, 2016 리우올림픽)를 모두 놓친 바 있어서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또한 김학범 감독은 논란이 되고 있는 황의조의 발탁에 대하여 손흥민-황희찬-이승우 등 해외파 공격수들의 정확한 대표팀 합류 시점이 불투명하다는 점과 전술적인 필요성을 이유로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황의조가 김학범 감독과 성남 시절 사제관계였다는 점을 들어 인맥축구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월드컵 멤버인 문선민이나 유럽파 공격수 석현준 등을 거론하며 과연 황의조보다 더 우수한 공격수 자원이 없었느냐는 점도 팬들의 불만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심지어 황의조를 향해 인신공격성 비난을 퍼붓는 팬들도 있어서 지난 월드컵 당시 장현수나 김민우의 사례처럼 선수가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다.

사실상 금메달이 아니면 실패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김학범 감독과 황의조 모두 오직 성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김학범호는 과연 와일드카드의 저주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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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아시안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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