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여유 있게 전기 리그를 제패한 삼성 라이온즈는 투수층이 탄탄한 OB베어스 대신 롯데 자이언츠를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선택했다. 그 해 롯데는 홀로 27승과 284.2이닝, 그리고 14번의 완투를 기록한 고 최동원 한 명에 의존하는 소위 '원맨팀'이었기 때문에 OB에 비해 수월한 상대로 판단했던 것.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최동원은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따내며 삼성을 울렸다.

KBO리그 출범 후 3년 동안 두 번이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머문 삼성은 1985년 아예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 버렸다. '원투펀치' 김시진과 김일융이 각각 200이닝 이상을 책임지며 무려 50승을 합작한 삼성은 110경기에서 77승1무32패(승률 .706)를 기록하며 전·후기리그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KBO리그는 이후 규정을 변경해 플레이오프 제도를 도입하며 한국시리즈가 취소되는 것을 막았다.

사실 1985년 삼성의 7할 승률은 구단별 전력 차이가 심했던 출범 초기였기에 가능한 성적이었다. 따라서 많은 야구팬들은 역대 최고 승률 팀으로 2000년의 현대 유니콘스를 꼽곤 한다. 당시 현대는 .695라는 난공불락의 승률(91승 2무 40패)을 기록했는데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18년 2000년의 현대에게 도전하는 팀이 등장했다. 시즌이 절반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2위와의 승차를 8.5경기로 벌리며 일찌감치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두산 베어스다.

두산의 우완 3인방, 그리고 포수 양의지

쐐기포 쏘는 양의지 1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9회초 무사 상황에서 두산 양의지가 솔로 홈런을 치고 있다.

▲ 쐐기포 쏘는 양의지 1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9회초 무사 상황에서 두산 양의지가 솔로 홈런을 치고 있다. ⓒ 연합뉴스


장기 레이스를 치르면서 안정된 전력을 꾸리기 위해서는 탄탄한 마운드, 그 중에서도 강한 선발진 구축이 필수적이다. 2000년의 현대와 올해의 두산은 난공불락의 선발 트로이카를 보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뛰어난 선발 카드를 3장이나 보유하고 있으면 시즌 운용에 한결 여유를 둘 수 있다. 현대와 두산의 선발 트로이카가 모두 우완이라는 것도 닮은 점이다.

현대는 1999년 20승을 차지했던 에이스 정민태(한화 이글스 2군투수코치)가 2000년에도 변함없이 207이닝을 책임지며 든든한 기둥 역할을 했다. 여기에 고교 시절부터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 받은 임선동이 드디어 잠재력을 폭발시켰고 1998년 신인왕 출신 김수경(고양 다이노스 투수코치)도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000년 현대의 선발 트로이카는 각각 18승씩을 기록하며 사상 초유의 한 시즌 다승왕 3명 배출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올 시즌 두산에도 대단히 믿음직한 선발 트로이카가 있다. 외국인 원투펀치 조쉬 린드블럼과 세스 후랭코프, 그리고 선발 투수로 변신해 완벽하게 부활한 이용찬이다. 두산의 선발 3인방은 나란히 2점대 중반의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25승을 합작하고 있다. 작년까지 두산의 토종 에이스 역할을 하던 좌완 장원준이 3승 4패 9.26으로 부진함에도 전혀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아무리 투수들이 뛰어나도 이들을 리드하는 안방마님의 역량이 부족하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2000년 현대에는 박경완(SK와이번스 배터리코치)이라는 KBO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가 전성기 구간을 보내고 있었다. 박경완은 2000년 뛰어난 투수리드와 강한 어깨를 자랑했을 뿐 아니라 타격에서도 타율 .282 40홈런 95타점으로 2000년 홈런왕과 정규리그 MVP, 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휩쓸었다.

올해 두산에는 '베어스의 비선실세'로 불리는 양의지가 있다. 이미 지난 3년 동안 두산을 두 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양의지는 올해도 타율 .399 15홈런 45타점 49득점 OPS(출루율+장타율) 1.164로 두산 타선의 핵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수비 역시 59경기에서 456.1이닝을 소화하고 있음에도 실책은 단 1게에 불과하고 도루 저지율도 39.4%로 리그 정상급이다. 올 시즌 두산은 '양의지의 팀'이라고 해도 크게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불안한 뒷문, 거포 외인 타자의 부재도 약점

기뻐하는 박치국-박세혁 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리그 두산 대 kt 경기. 두산 마무리투수 박치국(오른쪽)과 포수 박세혁이 9-8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2018.6.14

▲ 기뻐하는 박치국-박세혁 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리그 두산 대 kt 경기. 두산 마무리투수 박치국(오른쪽)과 포수 박세혁이 9-8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2018.6.14 ⓒ 연합뉴스


선발 트로이카와 포수의 무게감만 보면 2000년의 현대와 2018년의 두산은 분명 닮은 점이 있다. 타고투저의 시대인 올해와 그 시절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렵다. 그러나 허경민, 최주환, 박건우, 김재환, 오재원 등 두산 타선의 힘은 3할 타자가 4명(박종호, 이명수, 전준호, 박재홍)이었던 그 시절의 현대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의 두산과 2000년의 현대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불펜진의 높이다.

2000년 현대에는 3승 2패3 9세이브 ERA 2.09를 기록했던 마무리 위재영(독립야구단 '저니맨 외인구단' 감독대행)이 있었고 초대 홀드왕(16개)에 오른 조웅천(두산 2군 투수코치)도 시즌 8승을 따냈다. 여기에 좌완 루키 마일영(한화 2군불펜코치, 5승 5패 2세이브 4홀드 ERA 3.38)과 잠수함 박장희(9승 3패 ERA 3.90), 베테랑 정명원(kt 위즈 투수코치, 5승 2패 ERA 3.98) 등이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힘을 보탰다. 당시 현대가 '투수왕국'으로 불린 건 '다승왕 트리오'의 존재 때문만은 아니었다.

반면에 올해 두산은 불펜 평균자책점 4.67로 1위 한화(3.66)와 1점 이상 차이 나는 3위에 머물러 있다. 마무리 함덕주(5승 1패 15세이브 2홀드 ERA 1.93)와 셋업맨 박치국(1승 3패 3세이브 9홀드 ERA 2.54)의 활약은 시즌 전 기대치를 훌쩍 뛰어 넘는다. 하지만 김강률(3승 6세이브 3홀드 ERA 5.40)과 이현승(1승 6홀드 ERA 4.97), 김승회(1승 1패 2홀드 ERA 3.72) 등 제 몫을 해줘야 할 베테랑들이 의외로 기복을 보이고 있어 불펜의 안정감이 떨어진다.

강력한 외국인 타자의 유무도 양 팀의 큰 차이점이다. 2000년 현대에는 톰 퀸란이라는 거포형 외국인 타자가 있었다. 퀸란은 시즌 타율 .236에 불과했지만 37홈런(3위)을 때린 뛰어난 장타력과 안정된 3루 수비로 현대의 핫코너를 지켰다.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는 3홈런10타점을 몰아치며 사상 첫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외국인 선수가 됐다. 반면에 지미 파레디스를 퇴출시킨 두산은 현재까지도 외국인 타자 없이 시즌을 치르고 있다.

두산은 68경기를 치른 현재 47승 21패의 성적으로 .691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시즌은 절반 이상 남았고 남은 시즌에도 두산이 현재의 무서운 승수쌓기 속도를 유지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올해의 두산이 역대 최강팀으로 꼽히는 2000년의 현대 유니콘스를 소환시킬 정도로 놀라운 시즌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과연 두산은 21세기 최강팀으로 꼽히는 현대를 능가하는 팀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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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두산 베어스 현대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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