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전> 스틸컷 영화 <독전> 스틸컷

▲ 영화 <독전> 스틸컷 영화 <독전> 스틸컷 ⓒ NEW


사실 범죄극은 싫다. 당당하게 범행하는 괴물들을 바라보는 게 두렵다. 괴물이라 함은 소름 돋는 기괴함과 냉혹함에 절은 비인간성을 말한다. 그러나 어쩌지 못하고 <독전>을 선택한다. 배우 고 김주혁 때문이다. 그가 나오는 영화는 꼭 봐야 직성이 풀려서다. 그의 현대판 '방자' 역(영화 '방자전')에 반해 고색창연한 춘향전을 다시 들추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놀랍다. 필름 누아르를 재미나게 보긴 처음이다. 있을 법한 <독전>의 파편들이 내 일상에 끼어들까 불안하긴 해도, 매혹되어 빠져든다. 이유는 둘이다. 하나는 등장하는 캐릭터마다 개성적인 볼거리를 제공해서다. 진하림(김주혁 분)의 아인슈타인 헤어스타일 같은 감각적 미장센이 한몫한 미친 존재감들이 겉보기 괴물스러움 너머를 보게 한다.

다른 하나는 결말의 예상 밖 서정성이다. 카리스마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조진웅(원호 역)을 왜 캐스팅했는지 비로소 알게 한다. 굽이굽이 돌아 탁 트인 설원에서 울린 총소리는 누가 죽었든 매한가지인 짠함으로 객석의 나를 눈감게 한다. 원호의 그렁그렁한 눈물과 락(류준열 분)의 물기를 잇는 질문, "너는 살면서 행복한 적 있어?"가 나를 향한다.

영화 <독전>은 원작인 영화 <마약전쟁>의 중국식 표기다. 그래서 관람 전에는 약쟁이들의 싸움인 '독전(毒戰)'으로 풀이했는데, 각각의 캐릭터에 눈 빠뜨리면서 '독전(獨戰)'으로 바꾼다. 그러다 결국 '독전(獨專, 남과 상의하지 않고 혼자서 판단함)'으로 아퀴짓는다. 락과 원호의 우뚝한 외로움에 감염돼서다. 물기 밴 누아르의 지평을 연 이해영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미친존재감... '그래서 조진웅이었구나' 인정

<독전>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시아 최대 마약조직의 숨은 보스 이선생을 잡으려는 형사 원호의 이야기다. 영화 말미에서야 이선생이 누구인지 밝혀진다. 등장인물 중 서사의 끈이 가장 긴 캐릭터는 원호와 락이다.

그다지 맺힌 데가 없어 보이는 배우 조진웅이 독하지도 무르지도 못하면서 저돌적인 원호를 열연한다. 약발로 실신해 욕조에 담겼다 깨어난 이후부터 형사의 미친 존재감과 인간적 뚝심이 제대로 읽힌다. '그래서 조진웅이어야 했구나' 인정한다.

류준열은 원래 표정이 저런가 싶게 착색된 락이다. 무표정에 잠깐 미동이 일면 영화 서두처럼 순한 기운이 흐르고, 순간 움찔하면 잔혹한 고형체가 된다. 마지막 장면들에선 고요한 정물화 같더니, 질문 하나에 물기 가득한 주머니가 된다. 얼굴 근육을 가지고 노는 '꾼' 같다.

정말이지 <독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독에 쩐 미친 존재감들이 속출한다. 팔색조 누아르다. 다짜고짜 욕설 달고 나타나는 미성년자 수정(금새록 분)이 섣부른 퇴폐를 분칠하고 서막을 열자, 꽃무늬 바지에 걸쳐진 빨간 상의의 연옥(김성령 분)이 불꽃과 함께 튀어 오른다.

종전의 범죄물에서와 완전 다른 말투를 선보인 김성령이 확 다가온다. 한물간 성마른 몸짓으로 원호 말을 자르고 제 용건을 툭 던지는 뻔뻔함이 그 바닥에서 잔뼈 굵은 듯 실감난다.  연옥의 미친 존재감은 이선생을 등장시키는 시퀀스다.

전무후무할 염전의 명장면들
 <독전>의 스틸 사진

<독전>의 스틸 사진 ⓒ NEW


물론 청천벽력 같은 등장으로 객석을 사로잡은 카리스마는 진하림이다. 광기로 번득이는 깊고 동그란 김주혁의 눈 연기를 대신할 수 없어 진하림 시늉하는 원호의 극중 연기가 영 싱거울 정도다. 고 김주혁의 빈자리가 새삼 휑하게 느껴진다.

진하림 옆에서 천생연분처럼 손발을 맞추는 보령(진서연 분)의 약빤 연기는 실제 상황 같다. 여배우의 육체가 그렇게 화면에 들러붙듯 적절하게 활용된 예는 드문 듯하다. 쎈 약 기운에 육체 이탈하듯 고꾸라지던 마지막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렇듯 눈에 띄는 조연들이 또 있다. 염전 공장에서 크게 음악 틀어 놓고 춤추며 약을 만드는 청각장애인 남매(오빠 김동영 분, 여동생 이주영 분)다. 그들만의 은밀한 소통과 뭉침이 활갯짓하는 몸 전체로 자유분방하게 표출된다. 전무후무할 염전의 명장면들이다.

차승원(브라이언 역)은 궤변가의 가학성을 유감없이 선보인다. 느닷없는 폭력과 댄디한 몸차림이 대비되는 사이코 기질을 능글맞은 차분함으로 뿜어낸다. 피고문자의 180도 달라진 비굴함으로 포장할 줄 아는 그는 분명 필모그래피가 상당한 프로다.

그렇듯 캐릭터에 공을 들여 재미를 안긴 <독전>이 그래도 아쉽다. 사건에서 사건으로 넘어감이 뭉텅뭉텅하다. 예를 들면, 브라이언의 공장에서 락이 선창(박해준 분)에게 놓여나 브라이언에게 선창의 절단된 팔뚝을 보낸 과정을 생략한다.

청각장애인 남매가 제아무리 날고뛰는 재주가 있다 해도 그렇지, 누아르를 도술이 통하는 무협지처럼 만든 건 심하다. 누아르의 매력은 그 생략된 날고뛰는 과정의 건조함을 참신하게 빚는 맛이 압권인데 말이다.

그래도 암튼 배우 조진웅과 이해영 감독을 알게 한 <독전>이 반갑다.

 영화 <독전> 스틸 컷.

영화 <독전> 스틸 컷. ⓒ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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