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하는 황희찬 28일 오후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온두라스의 국가대표 축구 평가전. 황희찬이 돌파하고 있다.

▲ 돌파하는 황희찬 28일 오후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온두라스의 국가대표 축구 평가전. 황희찬이 돌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반 45분은 그야말로 답답한 경기였다. 공격 진영에서 부지런한 움직임은 좋았으나, 그 이상의 무언가는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전 전술 변화로부터 반전은 시작됐다. 전반전 아쉬운 경기력은 뒤로하고 손흥민과 문선민의 연속골로 반전을 이끌어낸 대한민국(이하 한국) 대표팀의 전술적 유연성이 빛났다.

28일 오후 8시 대구스타디움에서 펼쳐진 한국과 온두라스의 평가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2대 0 승리를 거뒀다. 후반 15분 손흥민이 선제골을 터뜨리면서 분위기를 단박에 반전시켰고, 후반 교체 투입된 문선민이 후반 27분 추가골을 터뜨리며 화끈한 A매치 신고식을 마쳤다. 신태용 감독의 후반전 전술 변화와 더불어 교체 선수들과 A매치 데뷔전을 가진 선수들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결과였다.

한국 대표팀에 있어서 이번 온두라스전은 의미가 컸다. 온두라스는 러시아 월드컵 본선 상대인 멕시코를 대비한 리허설이었다. 물론 온두라스는 멕시코보다 약했다. 하지만 멕시코와 체격 조건이나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이번 평가전은 월드컵 본선 명단을 발표한 이후 치러지는 첫 번째 평가전이었다. 월드컵 본선 전까지 4차례의 평가전을 가지는 대표팀 입장에서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오는 6월 3일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 선수들 또한 이번 경기부터 확실한 눈도장을 찍을 필요가 있었다.

시종일관 답답했던 4-4-2 포메이션

한국은 4-4-2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출발했다. 많은 선수들이 부상으로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한 데다, 기성용과 손흥민 등 기존 선수들도 몸 상태가 완벽치 않은 가운데서도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주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전방에서 강력한 압박과 빠른 공격 전개로 상대의 수비 부담을 가중시키겠다는 신태용 감독의 의중이었다. 경기 초반에는 그 전략이 효과를 보이는 듯했다. 한국 대표팀은 왕성한 활동량에 기반을 둬 전반 초반부터 전방 압박을 시도했다. 공격수들이 공을 뺏긴 위치에서 곧바로 압박을 시도하면서 상대 수비수들의 실수를 유도하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온두라스가 빠르게 공격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즉각적인 파울로 역습을 끊어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 플레이였다. 한국은 전반전 내내 끈끈한 전방 압박을 가져가고도 시원한 슈팅을 한 차례도 가져가지 못했다.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장면은 많이 나왔지만, 결정적인 장면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전반 종료 전까지 8개의 슈팅을 시도했으나, 유효 슈팅이 단 1개에 불과했던 것이 그 방증이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선수들의 마무리 동작이 시원치 않았다. 선수들끼리 유기적인 2대 1 패스 플레이로 좁은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온두라스 수비수들을 벗겨내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의 패스나 크로스의 정확도가 크게 떨어졌다. 부정확한 플레이가 지속되니 공격수들이 슈팅 찬스를 잡기란 어려웠다.

오른쪽 윙어로 나선 이청용의 소극적인 플레이도 4-4-2 포메이션이 힘을 받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 포메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측면 미드필더다. 전방 압박이 힘을 받는 동시에 전방에 크게 뚫린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종방향으로의 돌파력을 지닌 측면 미드필더가 필요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날 경기의 이청용의 활약은 아쉽기만 했다. 황희찬이 최전방에만 머무르지 않고 오른쪽 측면을 수시로 드나들며 상대 수비수들을 중앙으로 묶어뒀을 때 빠르게 측면 공간을 점유하는 플레이가 부족했다. 날개의 힘을 잃자 전반 막바지에는 황희찬과 손흥민이 서로 고립되는 장면까지 발생했다.  

결과론적으로 권창훈과 이재성의 공백이 크게 느껴졌던 4-4-2 포메이션이었다.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한 권창훈은 일찍이 월드컵 꿈을 접어야 했고, 이재성도 피로 누적으로 인해 이번 경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이 두 선수는 탈압박 뿐만 아니라 돌파에도 능한 선수들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배가되었다. 그들이 순간적인 돌파로 상대의 측면을 무너뜨리고, 최전방의 손흥민과 황희찬에게 양질의 크로스와 패스가 연결되었다면 한국은 더욱 강력한 공격력을 뽐낼 수 있었을 것이다.

반전 만들어낸 3-5-2 포메이션

'앞서 간다' 28일 오후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온두라스의 국가대표 축구 평가전. 손흥민이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 '앞서 간다' 28일 오후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온두라스의 국가대표 축구 평가전. 손흥민이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반 내내 답답한 경기력을 감출 수 없었던 신태용 감독은 빠르게 전술 변화를 단행했다. 후반 초반 4-4-2에서 3-5-2로 포메이션 자체를 바꿨다. 후반 10분 상대와의 경합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이청용을 빼고 문선민을 집어넣고, 홍철과 김민우를 서로 교체했다.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였던 정우영을 센터백으로 내리며 스리백으로 수비 변화를 가져갔다. 전반전 번뜩이는 플레이가 빛났던 이승우를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기고 김민우와 고요한을 전진시켜 윙백을 구축했다.

효과는 빨랐다. 후반 15분 손흥민의 선제골이 터지면서 한국은 경기 주도권을 잡아갔다. 중앙으로 이동한 이승우가 좌측 미드필더 로페스의 공을 가로챈 후 손흥민에게 곧장 패스를 연결했고, 손흥민은 이를 중거리 슈팅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는 미드필더 숫자를 늘린 것으로부터 기인한 결과였다. 공격 상황에서 김민우와 고요한이 전반전보다 높은 위치까지 올라오며 공격 지원이 가능해졌고, 손흥민과 황희찬은 계속해서 2선과 최전방을 넘나들었기에 중원 싸움에서 한국이 온두라스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었다. 이승우가 손흥민에게 패스를 연결하기 전 고요한과 함께 상대 선수를 압박하는 것에서부터 선제골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반 27분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린 문선민의 추가골 장면에서는 결정력이 빛을 발했다. 중원에서 손흥민이 상대의 압박을 이겨내고 볼을 지켜냈고, 이것이 왼쪽 측면을 돌파한 황희찬에게 이어졌다. 골대 정면에서 볼을 이어받은 문선민이 침착하게 상대 수비수의 태클을 개인기로 벗겨낸 뒤 왼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K리그에서 물오른 득점 능력을 그대로 A매치 데뷔전에서 이어나간 문선민의 결정력이 빛났던 순간이었다.

수비 안정감도 더했다. 물론 이번 경기에서 온두라스의 공격력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수비 평가는 다소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의 역할 분담이 무리 없이 이뤄졌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특히 정우영이 포어 리베로(fore libero)로 변신하며 공격력과 수비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전반전부터 주세종과 함께 번갈아 포백 앞에 수비적으로 위치를 자리 잡았던 그는 후반전 라인을 뒤로 물린 상태에서도 안정적인 상대 공격수 마킹과 적극적인 빌드업으로 한국의 공·수 모두를 책임졌다. 후반 막판 상대의 공격을 실점 없이 막아낸 것도 정우영의 공이 컸다.

월드컵 직전 나타난 포메이션의 딜레마

한국 대표팀의 포메이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던 온두라스 평가전이었다. 신태용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후반전 양측 풀백을 모두 교체하며 윙백으로 올린 것과 후반 26분 스리백에 능통한 오반석을 교체 투입한 것에서 그 의중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스웨덴과의 경기 때 포메이션이 바뀔 수도 있다. 포백에서 4-4-2를 구사하는 플랜 A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갖춰지고 있다. 독일 등 상대에 따라서 다른 전술을 짜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를 주고 상대에 맞춰 무엇을 해야 할지는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고민도 하고 있다"고 밝히며 주 포메이션에 대한 고심을 이어나갔다.

결국 4-4-2 포메이션에서 얼마나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 3-5-2 포메이션에서 얼마나 스리백의 전술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인가가 주요 과제로 남게 되었다. 대표팀은 다음달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이하 보스니아)와 마지막 국내 평가전을 가진다. 보스니아는 이번 평가전 상대인 온두라스보다 객관적 전력이 뛰어난 팀이다. 단단한 수비뿐만 아니라 세리에 A에서 활약하는 제코 등 출중한 실력을 지닌 공격수들이 많다. 따라서 상대 수비 공략법을 익히는 동시에 이번 온두라스와의 경기에서 확인하지 못한 수비력을 점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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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월드컵 A매치 대한민국 온두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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