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계약직 직원의 '미투'나 MBC 드라마 피디의 성추행 폭로가 이어졌음에도 방송계 내부에 미투 운동이 크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 왜 방송계 노동자들은 이 문제를 드러내며 말하지 못하는 걸까. 말 한마디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기에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있는 것이다."

'방송계갑질119'의 한 관계자 말이다. '방송계갑질119'는 카카오톡 오픈 카톡방을 개설한 날 성폭력 관련 제보 카톡이 올라온 것을 보고 익명으로 방송계 내부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지난 2월 14일부터 3월 2일까지 보름 간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223건의 응답을 받았다. 방송계갑질119와 방송스태프노조(준)가 이 결과를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18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방송계갑질119와 방송스태프노조 준비위원회가 '2018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방송계갑질119'의 김혜진 변호사와 서명숙 작가, 희망연대노동조합의 이만재씨, 언론개혁시민연대의 권순택씨가 연사로 나왔다.

18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방송계갑질119와 방송스태프노조 준비위원회가 '2018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방송계갑질119'의 김혜진 변호사와 서명숙 작가, 희망연대노동조합의 이만재씨, 언론개혁시민연대의 권순택씨가 연사로 나왔다. ⓒ 유지영


10명 중 9명 "성폭력 피해 입어" 대답

이는 방송 현장에서 일하는 작가들(80.2%)과 피디를 포함한 연출자들(17.1%) 외 기술 스태프들 223명(여성 209명, 남성 14명)에게 조사한 결과다.

223명의 응답자 가운데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200명(89.7%)이었다. 즉 방송 업계 종사자 10명 중 9명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피해 경험으로는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70.4%)가 가장 많았으며,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57.8%), '신체 접촉을 하거나 강요하는 행위'(43.9%), '성적 관계를 요구하는 행위'(13.9%) 순이었다. 

그러나 이후 성폭력 대처를 묻는 질문에는 '참고 넘어갔다'고 답한 사람이 156명(80.4%)으로 나와, 문제제기 했다(19.6%)는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또 문제제기를 했다고 한 사람들 중 48.7%가 '사후 조치가 아예 없었다'고 답했다. 사후조치가 있었던 경우에도 사후 조치에 '만족한다'는 비율은 13.5%에 그쳤다(불만족스러웠다 37.8%).

방송업계 종사자들(응답자 중)의 74.9%가 방송제작현장 내에 성폭력이 심각한 편이라고 답했다. 그 원인으로 '성폭력 행위자와의 권력관계'(79.4%)와 '성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조직문화'(79.5%)를 꼽았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18일 기자회견에서 "방송 제작 현장의 특수성을 생각해야 한다"며 "방송은 보통 프로그램(프로젝트) 단위로 성립됐다가 완료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잘 보여야 다음 작품을 같이 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개인적 관계에 의해 일자리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다소 폐쇄적인 업계 상황이 방송제작현장의 성폭력을 악화시킨다는 뜻이다.

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성폭력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며 교육이 "단순히 보여주기식으로 끝나선 안 되며 스태프들의 참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 '충격'

"'한 번만 만져보게 해달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같은 팀 피디에게 업무상 전화를 걸어도 늘 사귀자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작가였을 때 메인 피디에게 강제 성 접촉을 당했으나 묵인하고 일을 그만 두었다."
"상사가 몰카를 찍었다. 쓰레기 같은 이 바닥에 여자로서 계속 있을 수 있을까 고민이다."
"제작사 대표가 신체 부위를 위아래로 만졌다."
"출연 연예인으로부터 안마방을 잡아달라는 요구를 들은 적이 있다."
"방송사 국장이 메인작가 입봉과 든든한 지원을 제의하며 연인관계를 제의했다."

방송계갑질119가 공개한 방송제작현장 내 성폭력 개별 피해 사례들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신체의 주요 부위를 허락 없이 만지는 성추행은 물론, 일자리를 대가로 성적 관계를 제안하는 제의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방송계갑질119 관계자는 "이는 결국 권력 관계와 이해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방송계 내부 시스템 자체가 위계적으로 구성돼 있다. 프리랜서나 비정규직 등의 '특수고용' 형태가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방송계갑질119는 "방송사들이 성폭력 예방을 위한 조치를 실시한다면서 '신고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 신고센터의 경우 가장 열악한 위치에 놓인 외주제작부문 종사자나 프리랜서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방송제작현장에 종사하는 스태프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현장의 성폭력 문제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에도 "방송제작현장의 특성을 반영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성폭력 신고센터 구성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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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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