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봤지? 나 메이스야!' 14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 서울SK 대 원주DB 경기. SK 메이스가 슛에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

▲ '봤지? 나 메이스야!' 14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 서울SK 대 원주DB 경기. SK 메이스가 슛에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은 일년 농사의 대장정을 가늠하는 마지막 하이라이트 무대다. 선수, 감독, 팬들 모두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 만큼 경기는 치열해지고 감정은 더 격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심판의 역할이다. 큰 경기일수록 심판이 얼마나 경기운영을 잘 하느냐에 따라 명승부가 될수도 있고, 아니면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14일 열린 서울 SK와 원주 DB의 2017-18 프로농구 챔프 4차전은 안타깝게도 후자였다. 역대급 명승부가 될 수도 있었던 경기가 막판 심판의 아쉬운 경기운영 때문에 '막장드라마'로 전락해버렸다. 농구는 선수들이 했지만 승부는 심판이 끝낸 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양팀은 이날 막판까지 팽팽한 공방전을 벌였다. 서울이 전반 빠른 속공을 앞세워 13점차까지 앞서나갔으나 후반들어 디온테 버튼을 앞세운 원주의 맹추격에 고전했다. 손에 땀을 쥐는 승부가 이어지던 경기 종료 17초전 의외의 사건이 발생했다. 원주가 버튼의 레이업슛으로 80-82까지 추격한 뒤 곧바로 서울 진영에서 기습적인 전면강압수비를 펼쳤다. 서울 테리코 화이트가 원주의 더블팀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심판은 원주의 파울을 선언했다.

이상범 원주 감독은 팔을 급하게 휘저으며 파울보다 화이트의 트래블링이 먼저라고 소리쳤다. 순간적으로 사이드라인에서 더블팀에 둘러싸여 당황한 화이트가 공을 든 채 발을 약간 끄는 듯한 모습이 나왔지만 결국 트래블링은 인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박범재 심판이 판정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이상범 감독에게 테크니컬 파울을 선언한 것.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자유투 2개와 공격권을 내주게된 원주에게는 치명타였다. 이상범 감독은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원주 선수들과 팬들 모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 장면은 두 가지 면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첫 번째로 과연 테크니컬 파울까지 꼭 줘야 하는 상황이었나 하는 부분이다. 이상범 감독은 팔을 휘저으며 트래블링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과격한 동작이나 발언은 없었다. 원칙적으로 감독이 심판에 대하여 직접적인 항의는 금지되어 있지만 그동안 프로농구 경기 중 그 정도의 가벼운 어필은 수도 없이 나왔고 심판도 경기 흐름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는 묵인해왔다.

그런데 이날은 정규리그 경기도 아니고 챔피언결정전, 그것도 승패가 좌우되는 중요한 승부처였다. 한 골, 판정 하나에 승부의 흐름이 뒤바뀔수 있었던 예민한 상황에서 그 정도로 테크니컬 파울을 준다면 감독이든 선수든 코트에 남아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리한 판정에 번복까지...

두 번째로 심판 스스로도 경기운영에 일관성이 없는 태도로 혼란을 부채질했다는 점이다. 심판은 이상범 감독에게 내린 테크니컬 파울을 두 번이나 번복하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첫 번째로 테크니컬 파울 판정을 내린 후 심판들이 상의하여 이를 번복하다가 서울 SK 벤치에서 강하게 항의하자 다시 입장을 바꿔 결국 테크니컬 파울을 인정하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판도 처음부터 이상범 감독에게 테크니컬 파울까지 부과할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미 원주 벤치가 한 차례 테크니컬 파울경고를 받은 상황이었고 정작 심판도 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규정상 두 번째 경고를 받게 되면 자동으로 테크니컬 파울이 선언된다.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부담을 느낀 심판이 판정을 슬쩍 뒤집으려다가 이를 눈치 챈 서울 벤치의 항의로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부터 무리한 판정을 내린 것도 문제지만, 심판이 자신이 내린 판정에 확신도 없이 눈치를 보거나 자신들끼리 결정을 뒤집으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 더 심각한 장면이다. 챔피언결정전이라는 빅매치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승부처의 무게감과는 어울리지 않는 경기운영이었다.

경기 내내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휘하던 이상범 감독은 테크니컬 파울 판정을 받은 뒤 허탈한 듯 그대로 벤치에 앉아버렸다. 원주는 버튼의 3점슛과 추가 자유투로 막판까지 추격의지를 불태웠지만 곧이어 자유투 불발 이후 리바운드 경합 상황에서 또다시 버튼의 파울이 선언되며 추격의 동력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 장면에서 원주 선수들은 심판의 판정에 납득하지 못하며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는 결국 서울 SK의 87-85 승리로 끝났다. 서울은 2연패 뒤 2연승을 기록하며 챔프전의 향방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이상범 감독 '반칙 아니야?' 14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 서울SK 대 원주DB 경기. DB 이상범 감독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 이상범 감독 '반칙 아니야?' 14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 서울SK 대 원주DB 경기. DB 이상범 감독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심판은 더욱 정확한 시각으로 판단해야 할 사람인데

심판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도 있다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씁쓸한 장면이다. 심판은 사람이지만 적어도 보통 사람들보다 더 정확한 시각과 이성으로 판단하라고 심판이라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당장 이날 경기 후 화제의 초점은 경기 내용보다도 17초 전에 벌어진 판정 논란에만 맞춰졌다. 원주와 서울 팬들이 온라인에서 판정 논란을 둘러싸고 감정적인 대리전을 벌이는 광경도 나왔다. 결국 심판이라는 '블랙홀'이 명승부로 기억되어야 할 챔피언결정전의 이슈를 모두 빨아들여버린 것이다.

경기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선수들이 되어야 한다. 양팀 모두 일년 내내 치열한 경쟁과 피땀어린 투혼을 발휘하며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승패를 떠나 양팀 선수와 감독 모두 경기외적인 방해요소 때문에 그동안의 노력이 허탈하게 물거품이 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이날처럼 심판이 주인공이 되는 경기라면 올해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은 실패한 시리즈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작은 나비효과 하나가 올해 챔피언결정전을 망칠 수도 있다. 심판과 KBL 모두 각성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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