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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유 작가의 페이스북 2018년 2월 23일자에는, '페미니즘이 한국을 구할 것, 변화는 순식간에 온다'는 기사가 링크되어 있다. 2015년 10월 4일자 경향신문, 세계적인 통계 전문가 한스 로슬링 카롤린스카 교수의 대담을 다룬 것이다. "스웨덴은 인구정책이 아니라 페미니즘을 통한 양성평등을 통해 출산율이 반전됐다"는 것이 요지. '별똥별 아줌마'로 친근한 이 과학저술가는 요즘 뜨겁게 '페미니즘'을 설파하고 있다. 그 이지유 작가를 지난 4월 2일 카페성수에서 만났다. 그는 4번째 과학북클럽을 위해 이곳 성수동에 왔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 과학과 놀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 다양한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지유 작가.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 과학과 놀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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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독서모임 과학북클럽이 선정한 4권의 책은 <펭귄도 사실은 롱다리다>(이지유/웃는 돌고래), <재미있는 주기율표>(사이먼 바셔그림 에이드리언 딩글 지음, 해나무), <위험한 과학책>(랜들 먼로, 이지연 옮김, 시공사) 그리고 <야밤의 공대생 만화>(맹기완, 뿌리와 이파리)였다. 이 책들을 고른 이유나 배경을 알고 싶다.
"이곳 카페 성수에서 기획한 내용이 '과알못(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을 위한 과학책 읽기'였다. 내가 보기에 제일 좋은 책은 그림책이겠지만, 참석자들이 당황해 할까 싶어 조금 고쳤다. 생물, 화학, 공학의 세계를 골고루 다루었고, 만화나 그림 그리고 인포그래픽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접하려 했다."

- 개인적으로는 최애(가장 사랑하는) 과학자가 있는지 궁금하다. 
"글쎄, 예전에는 있었지만... 마리 퀴리다. 이 분을 다룬 책이 많은데, 나는 아직 그녀에 대해서는 쓸 수가 없다고 느낀다. 마리의 큰 딸은 과학자였고, 둘째딸은 저널리스트였다. 둘째딸이 엄마와 주고받은 편지로 평전을 썼다. 모든 퀴리 이야기의 원전이 되는 책이다. 나는 너무 경이로워서 '마리는 외계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내가 20대-30대-40대 그리고 지금 50대에 읽는 느낌이 모두 다르다. 미투 운동을 포함해, 우리가 겪어야 할, 어떤 점프를 겪고 나서야 쓸 수 있는 것 같다."

-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 더 설명해 달라.
"현재의 우리 과학계 프로젝트 매니저의 여성 비율은 8.8%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기술연구소의 보직자 비율은 8.6%다. 열 명 중 하나가 안 되는 거다. 마리 퀴리는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거쳐 살았다. 프랑스에서 살았지만, 출신은 폴란드였다. '저개발국' 이민자인 거다. 그런 시기에 마리는 과학자가 됐고, 자신의 업적을 빼앗기지 않았고,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프랑스가 관용의 나라라서 그렇게 된 게 아니었다.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선입견 편견 없이 논리적으로 따져서 돌파해 간 것이었다. 라듐 발견의 과정은 막노동, 육체적 움직임에서 얻어진 거였다. '글은 발로 쓰는 것'이라는 내 원칙을 지키고 싶다. 내 가슴이 함께 느끼고, 내 마음에서 우러났을 때 쓰고 싶은 것이다."

과알못(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하여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담은 책들로 선정되었다.
▲ 과학북클럽이 선택한 4권의 책. 과알못(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하여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담은 책들로 선정되었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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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행처럼 읽혔던 <랩걸>(호프 자런, 알마)에도 여성 과학자의 치열한 연구와 생존기가 나온다.
"그 책의 인기는 페미니즘 운동을 타고 왔다. 유시민씨가 딸에게 읽히고 싶은 책으로 <알쓸신잡>에서 소개하면서 더 대중적 인기를 끌었고... 홀수 챕터는 식물에 대한 연구를, 짝수 챕터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했다. 절묘한 구성이었다. 글도 매우 잘 썼고. 빌과 자런의 '연애'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연구에 푹 빠진 여성과학자로서는 그게 1도 없다는 걸 난 알았다. 그건 연애 감정이 아니라 동료애였다."

- 당신이 쓴 책들을 봤다. 스무 권 가까이 쓰고 번역한 건 둘째 치고, 시리즈로 <처음 읽는 우주의 역사>, <지구의 역사> 그리고 <숨쉬는 것들의 역사>를 썼다. 파리지옥에 대해서도 쓰고, 태풍과 공룡과 화산에 대해서도 썼다. 와!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많이, 폭넓게, 깊게, 재밌게) 쓸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학과공부를, 속되게 말하면 '빡세게' 했다. 서울대 사범대 지구과학교육과의 1~2학년 커리큘럼에는 일반물리, 일반화학, 일반생물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공학생들과 함께 듣는 거였다. 4학점인데 이론 3시간, 실험은 1학점인데 주 4시간 실습을 했다. 또 지질학, 기상학, 천문학, 해양학, 지구물리 다섯 과목도 필수였는데, 거기도 모두 실습이 있었다. 군함을 타고 바다를 측량하는 거 같은 거다. 폭풍우 치는 파도 위에서, 멀미도 않고 과제를 끝까지 해낸 게 나였다. 또 하나의 비결은 필기였다. 난 A3 크기의 스케치북같은 노트를 썼다. 1시간만 들으면 좋은 강의였는지 아니었는지가 보였다. 좋은 교수는 체계와 논리가 서는 강의를 하고, 구체적인 재료들이 촘촘히 채워졌다. 그게 예술이라며 친구들이 내 노트를 탐냈다. 복사하려면 너무 커서 힘들어 했지만."

- "공룡을 미치게 좋아하는 건 유치원 어린이들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중학교로 갈수록 아이들은 공룡을 잊어버린다. 책에서 크기, 먹이, 서식지 같은 단편적 자료밖에 주지 않기 때문이다. 공룡을 찾고 연구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고 책에 쓰셨다.
"내 책 <우주의 역사>는 138억년 전 일어난 빅뱅과 그 후에 생겨난 은하계 이야기가 아니다. 그걸 알아낸 사람들 이야기다. 예순두 명을 썼다. 그들의 이론을 따라가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결론으로 나온다. 우리가 과학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그 과정을 모두 건너뛰고 결국 최종의 결론만 얘기하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에 많은 것을 주고자 하는 '효율적 사고'가 결국은 문제가 된다. 우리는 결국 e=mc2과 F=ma만 배운다. 그 지식이 쌓이는 기간 동안의 무엇인가를 다 놓치고."

- 앞으로 쓰고자 계획하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글쓰기 학교같은 데서 내가 가르치는 건 단순하다. 첫째 기획을 명확히 하고, 둘째 자료조사를 다 하고, 셋째 직접 발로 체험하고, 넷째 그걸 다 가지고 앉아 쓰다가, 다섯째 의문이 생기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 반복하는 거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열정적으로 썼던 주제들은 모두 어느날 갑자기 내게 온 것들이다.

예를 들면 화산 같은 것이 그랬다. 난 내가 보는 그 것이 칼데라 호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냥 절벽들만 보였다. 그게 내 앞에서 만나더니 원의 일부를 이루더라. 그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자연스레 인식의 한계가 깨진다. 그런 것들은 꼭 쓰고 싶었다. 그게 내 글쓰기의 방아쇠가 되었다."

- 학교에서 화산을 배운 기억이 없다.
"나도 그렇다. 대학 지질학 시간에 교수님 말이 그랬다. '화산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엔 화산도 없다. 재미도 없고'. 그래서 그 수업은 정말 5분 만에 종료되었다. 근데 우연히 남편이 근무하는 하와이에 갔다가 화산을 본 거다. 동료 과학 교사들에게 이걸 쓰겠다고 했다. 정말 똑똑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거 쓰지 마라. 안 팔린다. 누가 사겠나?' 그러는 거다. 우리 교수님과 똑같은 이야기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야겠어!'했다. 내가 안 쓰면 또 한 세대가 넘어가니까. 이주일 만에 써서, 굴렁쇠라는 소년신문에 메일을 넘겼다. 하이텔을 쓰던 시절이었다. 편집부에서 '듣도 보도 못한 글인데 재밌다'고 했다. 연재후 바로 책을 냈고, 대박이 났다. <우주이야기>가 한 쇄를 1만부씩 찍던 시절이었다."

- <내 이름은 태풍>같은 책에선 습기와 열기와 움직임이 느껴졌다. 과학책인데, 두근두근 하면서 읽었다. 
"2012년에 태풍 볼라벤이 올라왔다. 창문에 테이프를 붙이라는 등 큰 걱정을 했다. 엄청난 피해가 날 것으로 예상됐다. 작가는 늘 모니터링하고 있는 주제가 있다. 태풍 한 달 전부터 나는 그림작가와 같이 태풍의 경로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실은 볼라벤보다 먼저 태어난 태풍이 있었다. 덴빈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서 왔다갔다 하기만 할 뿐, 늦게 생겨난 볼라벤이 먼저 이동해 왔다.

잠을 자다, '왜 덴빈(형)은 머뭇거렸을까? 어떤 때 그럴까?' 생각했다. 겁이 많아설까? 책임감 때문일까? 그 전에 쓴 책이 <내 이름은 파리지옥>이었는데, 거기엔 '자매애'가 물씬한 대사들이 나온다. <내 이름은 태풍>에서는 형제애를 다루고 싶었다. 당시 고3 아들한테 초고를 보여줬더니, 울었다고 했다. 편집자도 울었다고 했고. 각기 울었던 지점은 달랐다. 파리지옥은 여성들이, 태풍에는 남성 독자들이 각기 반응한 것처럼."

왼손으로 그리면 보는 방식, 태도가 달라진다.
▲ 왼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참가자들. 왼손으로 그리면 보는 방식, 태도가 달라진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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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유 작가와의 인터뷰는 여기까지 진행되었다. 그는 북클럽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고, 클럽의 마지막 시간을 이어갔다. 오늘의 책 <야밤의 공대생 만화>는 재미가 있어서 여러 명이 웃었고, 그래서 다시 릴레이로 추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날 저녁의 주제는 '페미니즘'이었다. '여자가 아니야, 사람이야!'라는 단순한 글귀가 참여자들 안에서 돋아났다. 천재와 영재가 줄을 잇는 이 책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거의 '남성들'로만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 어떤 부모님들이 내게 그러시더라. '선생님같은 분이 어렵게 유리천장을 뚫어주신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내가 그랬다. '아니, 아직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직도 열에 하나가 아니다. 저쪽이 100이고, 이쪽이 1이면, 이쪽에게 필요한 것은 99가 아니다. 200이다. 과민하다 할 만큼 힘을 써야한다. 그래야 이미 기울어져있는 운동장이 크게 흔들리고, 그 다음에야 겨우 평행을 이룰 거라고'. 그림책에 성비부터 1대 1로 하고, 발언 기회부터 같아져야 한다."    

이지유 작가와 과학북클럽 회원들이 첫날 함께 읽은 책은 <펭귄도 사실은 롱다리다>였다. 인쇄 활자가 아니라 이지유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과 글씨들로 채워진 책. 사고로 부러진 오른팔 대신, 왼손으로 그리기 시작해 완성된 결과물이었다.

없어도 됐던 것으로 치부되었던 왼손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하자, 기쁨과 여유가 함께하는 그림들이 완성된 것이었다. 이것은 내게 페미니즘의 은유, 양성평등의 메타포처럼 보였다. 스웨덴에서 출산율을 반전시킨 그 양성평등은 우리의 과학계도 구원할 수 있을까?

"내가 사는 대전 한밭도서관에서 그간 제대로 된 과학 강연이 없었다. 최근에 여섯 명쯤의 과학저술가를 뽑아달라는 부탁이 왔다. 강연을 개최하겠다고. 2017년에 나온 뛰어난 과학저술을 꼽아 보냈다. 그런데 놀라운 게 뭔지 아나? 그 중에 네 명이 여성이었다는 거다. 변화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이지유 작가는 "자연이라는 현장에서, 발로 뛰며, 가슴이 뜨거울 때,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 왼편은 현장, 오른편은 카페성수에서의 이지유 과학저술가. 이지유 작가는 "자연이라는 현장에서, 발로 뛰며, 가슴이 뜨거울 때,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 원동업, 이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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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의 공대생 만화

맹기완 지음, 뿌리와이파리(2017)


위험한 과학책 - 지구 생활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

랜들 먼로 지음, 이지연 옮김, 이명현 감수, 시공사(2015)


펭귄도 사실은 롱다리다! - 오른팔이 부러져서 왼손으로 쓰고 그린 과학 에세이

이지유 글.그림, 웃는돌고래(2017)


재미있는 주기율표 - 톡톡 튀는 원소들의 개성 강한 이야기!

에이드리언 딩글.댄 그린 지음, 사이먼 바셔 그림, 고문주 옮김, 해나무(2018)


태그:#이지유, #과학저술가, #펭귄도사실은롱다리다, #카페성수잠깐학교, #양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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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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