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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4월 3일 오후 4시 3분.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쓰러져있던 사람들이 종소리를 듣고 깨어난 듯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숫자는 모두 403명. 남자도 여자도 있었고, 노인과 아이도 있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있었다. 얼굴과 온몸은 진흙투성이였다. 표정은 없었다. 모두 빨간 동백꽃 자국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70년 전, 억울하게 살해당한 이들은 모두 학살의 표식을 지녔다. 그 빨간 꽃은 총알이 관통한 자리이자, 그들에게 부여된 '빨갱이'라는 낙인의 상징이기도 했다. 제주 4·3사건을 겪은 지 70년이 되는 오늘. 그날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한 대규모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준비한 '403 광화문 퍼포먼스'이다.

잿빛 사람들, 이름을 외치다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403명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아아' 하는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많은 인원이 한 데 모이자, 그들이 내는 신음성이 메아리쳤다. 천천히 움직이던 그들은 광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 허공을 가리키며 두 손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 그의 움직임을 다른 여인이 다가와 달랜다. 남자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말라붙은 진흙 위로 눈물자국이 생기기 시작했다. 추모의 노래가 구슬픈 곡조와 함께 옆에서 흘러나왔다.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른다.

"내 이름은!"

70년 동안 이름이 불리지 못한 이들을 위해,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토하듯 외쳐댔다.

"내 이름은!"
"내 이름은!"

그리고 각각의 이름을 토해낸 이들은 회색빛 옷을 벗어던졌다. 그 안은 때 묻지 않은 하얀 옷이 자리했다. 서글픈 곡조 대신, 한을 위로하기 위한 사물놀이가 펼쳐졌다. 신명나는 음성에 흰 옷을 입은 이들은 덩실덩실 춤추며 행진을 시작했다.

제주의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한 공간 앞까지 이동한 그들은 각자 벗어던졌던 옷을 한반도 모양으로 모았다. 제주의 기억은 제주의 것만이 아니라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라는 의미였다. 진흙투성이 옷을 손에서 놓은 이들은 자리에 앉아 경건하게 제 순서를 기다렸다. 추모의 시간. 이들은 한 명씩 흰 국화를 손에 들고 제단에 놓아 참배했다.

모든 이의 참배가 끝날 때까지, 이들은 박수를 치며 서로를 응원했다. 참배가 끝나자, 다시 한 곳에 모인 이들은 광화문 광장 북쪽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기 시작했다. 처음 종소리를 듣고 일어났을 때의 신음소리가 아니었다. 기쁨과 해방의 함성소리였다. 그렇게 43명의 스태프가 돕고, 403명의 시민과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퍼포먼스는 끝이 났다. 애초 43분을 기획했으나 그보다 조금 늦어진 5시께 완전히 종료됐다.

배우·시민들 자원봉사로 참여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시민들에게도 상당히 인상적인 퍼포먼스였다. 중간중간 바라보다가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퍼포먼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30대 남성은 "배우 분들의 눈이 그렁그렁한 것을 보니, 보고 있는 나도 울컥했다"라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짠한 게 있었다, 제주 4‧3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라고 말했다. "친구가 퍼포먼스에 참여해서 구경하러 왔다"는 여고생은 "학교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제주 4‧3이 정확히 어떤 사건인지 잘 몰랐었다"라면서 "퍼포먼스를 보고 되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참여한 친구가 자랑스럽다"라고 얘기했다.

이날 퍼포먼스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자원봉사 형태로 지원한 배우와 시민들이었다.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의 퍼포먼스는 지난해 독일 시민단체 1000게슈탈튼의 G20반대 퍼포먼스의 형태를 차용한 것이다. 죽어있던 회색의 자신에게서 벗어나 본연의 자신에게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회색빛 분장을 했다가 옷을 벗어던지는 점에서는 같지만, 무용과 마임, 노래와 사물 등 여러 요소를 버무리면서 보다 다채로운 의미를 더했다.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태그:#제주4·3, #43사건,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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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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