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여자농구팬들이 플레이오프에서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선전에 박수를 보냈지만 이와는 별개로 우리은행 위비의 파트너가 KB스타즈가 될 거라는 예상은 누구나 하고 있었다. 그리고 KB는 홈에서 열린 두 경기에서 신한은행을 각각 18점 차이로 압도하면서 챔프전 진출을 확정했다. 근래 보기 드문 챔프전다운 챔프전 매치업이 성사된 것이다.

우리은행과 KB는 2017-2018 여자프로농구를 지배했던 확실한 '양강'이었다. 실제로 정규리그 우승팀 우리은행의 승률이 .829(29승 6패), 2위 KB의 승률이 .771(27승 8패)였던 반면에 3위 신한은행의 승률은 .486(17승 18패)에 불과했다. 조금 잔인한 표현을 쓰면 '두 공룡이 나머지 중·하위권 팀들을 유린한 시즌'이었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니다.

양 팀은 정규리그에서 7번 맞대결을 펼쳐 4승 3패로 KB가 근소하게 앞섰다. 특히 시즌 막판 두 번의 맞대결에서는 KB가 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6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한 '절대강자' 우리은행에게도 KB는 대단히 부담스러운 팀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KB는 우리은행의 오랜 독주체제를 마감하며 프로 출범 후 첫 우승을 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레알 신한'의 아성에 도전하는 WKBL의 독재자 우리은행

 우승경험이 풍부한 동료들 사이에서 김정은은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에 도전한다.

우승경험이 풍부한 동료들 사이에서 김정은은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에 도전한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분명 쉽지 않은 시즌이었다. 외국인 선수 문제도 있었고 대체 불가능한 토종빅맨 양지희의 은퇴도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또 해냈다. 6연속 정규리그 우승.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오로지 '레알 신한'(2007겨울리그~2011-2012 시즌)만이 밟아본 고지를 우리은행이 올라선 것이다(물론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WKBL의 전력 평준화가 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은행은 통산 4번째 정규리그 MVP를 차지한 '또치' 박혜진을 중심으로 내외곽을 넘나드는 득점머신 김정은, 그리고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노장 포워드 임영희로 이어지는 막강한 삼각편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풍부한 경험과 노련함을 바탕으로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제 기량을 발휘한다. 에이스 한두 명에게 의존하는 다른 구단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우리은행의 최대 장점이다.

다미리스 단타스와 모니크 커리 같은 화려함은 떨어지지만 우리은행의 외국인 선수 나탈리 어천와도 성실하고 꾸준한 플레이로 '디펜딩 챔피언'의 골밑을 든든하게 지켰다. 어천와는 이번 시즌 정규리그 34경기에 출전해 득점 4위(16.24점), 리바운드 4위(11.18개), 블록슛 5위(0.91개), 스틸 8위(1.44개)를 기록했다. 우리은행 국내 선수 중에 정통 빅맨이 거의 없는 점을 고려하면 챔프전에서도 어천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은행은 챔프전을 불과 5일 앞둔 지난 12일 외국인 선수를 데스티니 윌리엄스에서 엠버 해리스로 교체했다. 물론 193cm의 해리스는 장신군단 KB를 상대하기에 좋은 신장을 가지고 있지만 실전 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시차 적응이나 조직력을 다질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만약 해리스가 골밑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어천와를 비롯한 나머지 우리은행 선수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은행은 지난 5번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15승 2패(승률 .882)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한 바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은행의 전력이 좋았다는 뜻도 되지만 그만큼 우리은행 선수들이 단기전을 이기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우리은행의 경험이 KB를 상대할 때도 빛을 발한다면 프로 스포츠 역대 타이기록인 통합 6연패도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박지수 버틴 장신군단 KB, 프로 첫 우승의 기회가 왔다

 우리은행의 국내 선수 중에서 박지수의 압도적인 높이를 제어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

우리은행의 국내 선수 중에서 박지수의 압도적인 높이를 제어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지난 2016년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서 KB가 1순위 지명권을 뽑았을 때 안덕수 감독은 만세를 부르며 취재진과 선수 부모들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언제나 화가 나 있는 직업 1위에 오른 농구감독이 신인 지명권 한 장에 저렇게 좋아하나' 의아해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 두 시즌 만에 안덕수 감독이 했던 만세와 큰절의 의미를 알게 됐다.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한 '거물센터' 박지수는 지난 시즌 신인왕을 차지한 데 이어 이번 시즌에는 한층 성숙한 기량으로 리바운드, 블록슛왕을 차지하며 MVP급 성적을 올렸다. 박지수가 골밑에서 득점을 올리고 리바운드를 잡아준 덕분에 기존의 에이스 강아정은 득점 부담 없이 코트를 넓게 활용했고 김보미에게도 많은 오픈 기회가 생겼다. 박지수는 한 명의 뛰어난 센터가 팀을 얼마나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증명한 좋은 예다.

KB는 박지수 덕분에 외국인 선수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흔히 빅맨 2명을 선호하는 기존 구단의 흐름을 벗어나 기술이 좋은 베테랑 커리를 지명해 트리플 타워를 구축했다. 박지수 입단 전에 KB의 빅맨으로 활약했던 정미란과 백업가드 김진영이 플레이오프를 통해 컨디션을 끌어올린 점도 챔프전을 앞둔 KB가 얻은 수확이다.

사실 박지수와 단타스 정도를 제외하면 KB가 우리은행에게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포지션은 없다. 특히 165cm의 단신가드 심성영이 WKBL 최고의 스타 박혜진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KB는 자신들의 장점인 높이의 우위를 극대화해야 우리은행을 상대로 승산을 높일 수 있다. 우리은행 선수들에게 많은 파울을 얻어내고 수비가 골밑으로 몰리도록 유도해 외곽슛 기회를 만든다면 KB는 경기를 한층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KB는 정선민, 신정자, 변연하 등 많은 스타들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아직 WKBL 출범 후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20년 묵은 우승 징크스를 가진 KB에게 6연속 우승, 그리고 통산 10번째 우승을 노리는 우리은행은 분명 버거운 상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KB가 필요 이상의 압박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 역대 타이기록에 도전하며 이번 챔프전에 더 큰 부담을 느끼는 팀은 분명 우리은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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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018 WKBL 챔피언 결정전 우리은행 위비 KB스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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