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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에 닿는 햇살이 좋다. 봄의 시작이라 불러도 좋겠지. 매년 돌아오는 봄이라지만,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봄을 좋아한다. 생기가 도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올해는 새봄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나의 '자리'가 달라져서 일까. 세상에 던져진, 일이 없는 10년차 프리랜서에겐 봄은 그저 채용 시즌에 불과하다. 핑크빛은 온데간데 없고 잿빛으로 덮인 듯한, 그런 뭐 같은 기분.

빛좋은 개살구, '프리랜서'

8년 넘게 글을 썼다. 대부분은 방송 원고였는데, 매 순간 무얼 짜내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365일 다른 오프닝을 써 내야 한다는 게 부담이었고, 많은 날이 고역이었다. 뭐라도 건질 수 있을까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꾸역꾸역 사람들을 만나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눈이 충혈될 정도로 영화를 본다.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다, 행복한 일이다' 하겠지만 그게 일이 되는 순간 이미 재미가 없다. 그저 단 한 줄, 뭐라도 쓸 수 있을까 싶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매달리다 보면 스스로가 끝끝내 새드엔딩일 수밖에 없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처량하기도 하고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빨빨 거리며 돌아다녀 봐도 여전히 빈 페이지. 아무것도 쓰지 못한 빈 페이지 위에서 깜빡이고 있는 커서를 보고 있자면 '절박함'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내, 나도 깜빡 휘청거리고 만다.

여느 일들처럼 매 순간이 쉽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박함' 보다는 '간절함'이 더 컸기에, 좋아하는 일이고 꿈을 꾸고 바라던 일이라 버티고 계속 할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일은 끊이지 않았고 나름의 커리어도 쌓을 수 있었다. 농담처럼, 또 주문처럼 '한 분야에서 10년 일하면 무조건 인정해줘야 한다'는 나름의 지론으로 스스로를 다독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돈도 많이 벌고 싶었는데... 방송국 파업이 길어지며 길을 잃었다. 파업이 끝나고 직원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프리랜서들은 그럴 자리가 없다. 냉정하게 말해 원래 내 자리는 없었던 거니까, 누울 자리를 찾고 앉을 자리를 찾는 게 민폐인 상황.

프리랜서는 빛 좋은 개살구 같아서, 사실 뜯어보면 별 게 없다. 나름 전문적인 거 같으면서도 백수 되기 딱 좋은 그런 프로세스를 가졌달까. 그래도 나름 '작가'라고 불리니, 어디 가면 우대해 주기도 하고 대우도 좋았지만 그저 나에겐 불편한 허울일 뿐이었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어디 가서 스스로를 작가라고 칭해본 적이 없다. 실력도 부끄러운 수준이거니와, 뭣도 없는데 뭐라도 있는 것처럼 보는 대부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조금 어린 나이에는 학생이에요, 라고 얘기했고 그마저도 어렵게 된 지금은 그냥 회사원이에요, 정도로 절충하고 만다.

이력서 하나 보내는데 '땀 뻘뻘'

10년 가까이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취업사이트에 들어갔다
 10년 가까이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취업사이트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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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놓고 있기를 5개월.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터라, '밥벌이의 지겨움'을 안고 취업시장으로 뛰어든다. 10년 가까이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취업사이트에 들어갔다. 눈이 어지러웠다.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눈에 들어오는 일이 없다.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인다. 경력은 있는데, 스펙이 없는 상황. 토익은 어느 한 옛날에 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자격증은 항목별로 '있고', '없고' 그 유무를 체크하게 돼 있는데 겨우 +0.5점 하나 걸리는 정도. 다른 자격증도 있긴 한데, '아... 여기선 별로 쓸모가 없나보구나.'

그럼 학과 성적은? 그나마 학과 성적은 좋았는데, 성실함을 증명하는 자료가 될 수 있을까? '아... 요즘은 블라인드 채용이구나, 학점도 필요 없게 돼 버렸구나.' 그럼 정말 보여줄 게 하나도 없는데... 나 같으면 나를 뽑을까? 경력이 스펙이 되지 않는 상황에 또 한 번 길을 잃는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기업 발견! 창작자와 후원자를 이어주는 크라우드 펀딩회사. 일단 취지가 좋고 철학이 좋다. 넓은 의미에선 기존에 하던 일과도 접점을 찾을 수 있으니 한 번 도전해 보자 싶었다.

나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전송을 하려는데, 아뿔싸! 여기서도 난관 봉착. 'hwp확장자'는 받지 않으신다고요. 평생 '한글' 프로그램을 이용해 원고를 썼는데 말입니다. 다른 프로그램은 다룰 일도 없었을 뿐 아니라, 다룰 줄도 잘 모르는데 말입니다.

이런 순간엔 정말 '잉여로운 인간'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답답이도 이런 답답이가 없다. 문득, '취준생'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게 서류 광탈도 아니고, 자존감 하락이라는데... 나 벌써 그 단계인 건 아니겠지?

이력서 보내는 게 이렇게 고군분투할 일인가 진심으로 따져 물으며 조금의 나태함과 그동안의 오만을 탓해본다. 우여곡절 끝에 서류는 넣었고, 서류에 합격했다는 연락은 받았다. 간단한 전화 인터뷰를 거쳤고, 앞으로도 실무면접(실무면접을 보기 위해 대학 조별과제 같은 8가지 문항을 혼자 풀어야 했다)과 컬쳐(Culture)면접, 레퍼런스 콜이 남아있다. 갈 길이 구만리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마음을 풀다가도, '언제까지 이럴 건데?' 라며 마음을 다 잡는다. 과연, 어떤 결과를 맺게 될까? 이 순간이야 말로 간절하기도 하고 절박하기도 한 거겠지. 온실 속 화초도 맨땅에 뿌리내릴 수 있음을, 가끔은 새드엔딩 같은 결말에서도 멋진 반전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태그:#프리랜서, #취준생, #채용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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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끝, 마음에 평온이 깃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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