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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시장의 작품도 집밖을 나서야 볼 수 있죠. 쉬운 일이지만 머리의 의도와 몸의 실천이 협동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건 능동적인 행위의 하나죠. 전시장에 작품이 걸려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보러갈 마음이 동했다는 것은 몇 가지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첫째는 작가가 힘을 들여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느 공간에선가 문을 열어 그것을 걸거나 설치했다는 것이죠. 셋째는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보러오라고 알려준 것입니다. 이 모든 이들의 능동적 실천이 한 곳에서 만나는 일, 그것이 미술품 감상입니다.

2018. 03. 03~31. 성수동 오매갤러리에서 열린 네번째 기획전이다.
▲ 오매갤러리 전. 2018. 03. 03~31. 성수동 오매갤러리에서 열린 네번째 기획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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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오매갤러리에서 '덤보스(Dumbos)'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우종, 윤상하, 정유림 3인이 '따로 또 같이' 연 작가전입니다. 지난 4일, 청해서 열린 문으로 들어가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오매는 가정집으로 쓰이던 연립주택을 갤러리로 변신시킨 곳입니다. 그래서 3층 첫 방이 301호죠. 전시는 302호와 303호까지 이어집니다. 오매의 서수아 대표가 관람객들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덤보(Dumbo)는 진짜 멍청한 것을 가리키진 않아요. 그저 '에이그, 이 바보야. 왜 그랬어?' 하는 가벼운 책망 같은 의미예요. '왜 그렇게 사니?!' 할 수도 있고요. 우리들 모두가 조금은 그런 일들을 하고, 타인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가끔 그런 말을 하지 않나요? 그런 부분을 작가들이 환기하고 표현하고, 여러분들과 공감하는 전시로 기획되었어요."

20대의 젊은 작가 셋은 그 '멍청이들'을 어떻게 표현하였을까요?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요? 기획의 의도를 알고 볼 때는 그 점이 늘 궁금하지 않을 수 없지요.

301호 정유림 작가의 방법 - 대안

왼쪽부터 비밀의 유리정원(장지에 분채 2016), 스노우볼(장지에 분채 2015), 너구리의 방(캔버스에 아크릴 2017)
▲ 정유림 작가의 작품들. 왼쪽부터 비밀의 유리정원(장지에 분채 2016), 스노우볼(장지에 분채 2015), 너구리의 방(캔버스에 아크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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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호는 정유림 작가의 방입니다. 동양화를 전공했다는데, 한 켠에 놓인 병풍의 그림이 민화 '책가도'를 연상케 합니다. 석채와 분채를 섞어 그린 화려한 색상들, 세밀한 선들, 풍부한 조형적 구조를 보여주는 그림들입니다. 추상적인 패턴은 아니지만 수없이 반복된 패턴들, 평면화된 공간, 현실에서 벗어난 곳이지요.

작가는 이 장소들을 "상징적 표현에 기초한 공간, 근원적 힘을 지닌 공간"이라 말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잉태하고, 내면 속의 세계로 빠져들어 사유케 하는 공간"이기도 하죠. 공간을 가득 채운 작품들로 해서, 그 공간에 들어서면 "힐링을 느끼게" 됩니다.

작가는 '관계'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은신처'라는 이상적 공간을 갈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나를 피곤케 하는 세상의 멍청이들을 피해온 '피난처'가 됩니다. 도망치고 은둔하는 방식은 '멍청'을 피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멍청'의 영역에서, 시간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요. 멍청을 만들어내는 것은, 공간과 시간만이 아니라 나 자신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 이 작품들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무수한 시간을 들였을 저 작품들. 원숙함에 다다른 장인적인 솜씨. 그 창작의 시간 자체가 작가에게는 세상의 멍청함에 대처하는 방식이었을 것 같다고요. 그 몰입과 창작의 열기에 우리들은 공감과 그의 위로를 느낍니다.     

302호 김우종 작가의 직시

 왼쪽부터 Gift(FRP, Glass, Acrylic, 50x50), 철민이(FRP, 62x93, 2015), To all the youngsters(FRP, Stainless Steel, Acrylic, 210x90, 2017)
▲ 김우종 작가의 작품들. 왼쪽부터 Gift(FRP, Glass, Acrylic, 50x50), 철민이(FRP, 62x93, 2015), To all the youngsters(FRP, Stainless Steel, Acrylic, 210x9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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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호의 김우종 작가는 설치미술을 합니다. 어릴 적부터 안 길러본 동물이 없다고 했지요. 7년 전부터는 거북이도 키우고 있는데, 이번에 그 친구 '철민이'도 전시장에 왔습니다. 유리창 나무 상자에 갇힌 철민이 앞에는 또 하나의 거북이가 있습니다. 철민이가 성장을 더 해가면 도달할 크기 정도의 하얀 조각 거북이죠.

살아있지만 갇힌 생명체, 바깥 세상에 있으나 움직일 수 없는 조각. 이 두 개의 설치작품들은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은유같이 보였습니다. 무엇이 무엇을 마주보고 있는 걸까요? 혹은 누가 누구의 분신일까요?

전시장 한 켠엔, 목이 잘린 돼지의 두상 조각이 있습니다. 작가는 거기서 다시 코를 잘라 멀찍한 곳에 걸었습니다. 고사상에서 보는 돼지는 늘 웃는 얼굴이지만, 그건 인위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도살업자와 축산업자가 고객의 필요에 맞게 아가리를 잡아 입을 늘리는 거죠. 그건 어쩌면 다크나이트에 나오는 조커의 웃음인지 모릅니다.

작가는 이러한 인식에 도달했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돼지머리 조각을 자르고 붙였습니다. 그러다 작가는 어느 순간 깨닫습니다. 자신도 그들과 다름이 없다는 걸. 자신의 필요를 위해 돼지를 도구로 쓰는 것은 다르지 않은 겁니다. 김우종의 작품은, 우리의 혹은 자신의 '멍청함'을 직시하게 합니다.   

303호 윤상하 작가의 현재

 왼쪽부터 청소시간(acrylic painting, 2016), Strong man(목탄 펜, 2016), 나쁜기억지우개(Acrylic painting, 2017)
▲ 윤상하 작가의 작품들. 왼쪽부터 청소시간(acrylic painting, 2016), Strong man(목탄 펜, 2016), 나쁜기억지우개(Acrylic painting,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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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호 윤상하 작가는 드로잉을 주로 선보였습니다. 왼편 벽으로부터 사방에, 책상에, 그의 그림을 펼쳐놓았습니다. 간략한 펜 드로잉부터 물감을 짓이겨놓은 페인팅까지 다양합니다. 해군에서 복무하는 긴 시간 동안, 그릴 수 없어 답답함을 느꼈다는 작가입니다.

제대로 된 모델도 세울 수 없었고, 종이와 펜이라는 도구도 변변치 않았구요. 거기서 큰 갈증을, 심한 고통을 느꼈다고 그는 적었습니다. 윤성화 작가는 하루 4시간씩은 꼭,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상상력을 동원해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죠. 현재의 그는 과거의 그 시간이 잉태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적절한 명명이 될지 모르겠으나, 그의 그림들 중 '코피연작'이 있습니다. 인간들의 세계에서 센 척, 잘난 척, 난 척, 있는 척을 하고난 다음의 얼굴을 그린 것입니다. 피곤해서 코피를 흘리는 사람들입니다. 상처를 지우려고 더 크게 노력한다고 해도, 그것을 지운 흔적이 더 크게 남을 수밖에 없는 역설을 그린 일러스트도 보입니다.

아무리 많은 인형 친구들을 옆에 둘러도, 세 개나 되는 텔레비전(저의 버전으로 보면 아무리 많은 유튜브 영상, 영화, 웹툰 같은 걸 봐도)을 봐도 그 피곤과 공허는 지울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림들, 그의 설치작품들을 보면 마음 안에서 작은 소리가 일어납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많이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텔레비전 안의 별을 계속해서 볼 필요는 없어요. 바깥으로 나가세요. 별을 보러 문을 나서는 거죠. 지금도, 여기서도 우리는 충분히 즐길 수가 있거든요."

이번 오매갤러리의 기획전시는 성수동 오매갤러리가 열린 이후 네 번째입니다. 작가들을 찾아 기획된 주제와 작가의 작업 내용을 함께 짚어보는 과정을 거쳤죠. 덤보스는 우리의 삶에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큰 욕망 때문에, 우리가 가진 한계들 때문에, 우리가 그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덤보스-멍청이들-가 될 운명일지 모릅니다.

이 작은 전시는 그 운명적 삶에서 잠시 짬을 내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현재를 검토해 보는 거죠. 시대의 불안(내가 느끼는)과 위안(작가가 먼저 제안해본), 공감(작가가 의도하는)과 용감(관객의 감상 또한 얼마나 능동적 행위입니까)의 시공간은 이번 달 3월 2일 열렸고 이번 달 말까지, 오매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연락처 070-7578-5223.

 오매는 성수동네 가정집이던 연립에 열린 갤러리임을 잊지 않는다. 작품 설치후. 왼쪽부터 김우종, 윤상하, 서수아, 정유림.
▲ 오매에서의 점심식사. 오매는 성수동네 가정집이던 연립에 열린 갤러리임을 잊지 않는다. 작품 설치후. 왼쪽부터 김우종, 윤상하, 서수아, 정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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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매갤러리, #성수동, #덤보스전, #김우종윤상하정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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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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