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포스터.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포스터. ⓒ 20세기 폭스 코리아


거대 돌연변이 곤충과의 사투 <미믹>부터 기예르모 델 토로는 속칭 '괴물'이라 하는 초자연적 존재를 풀어내 왔다. 참혹한 스페인 내전의 상흔 속의 기이한 판타지 <판의 미로>로 절정을 찍은 그는 <헬보이>로 어두운 코믹스를 풀어내기도 했고 개인의 취향을 끝까지 밀어붙인 <퍼시픽 림>에서는 극단의 사이즈까지 열정을 밀어붙여보기도 했다.

2018년에 개봉한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아래 셰이프 오브 워터)> 역시 '아마존 정글에서 신으로 대우받았다'는 설정의 어인(魚人)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영화, 장르가 로맨스다. 괴생명체와 여인의 아름답고도 기이한 로맨스에 아카데미는 그들의 최고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 포함 4관왕의 자리를 선사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달콤한 러브스토리는 델 토로의 세계에서 익숙하고도 낯선 존재다. <판의 미로>로 음울한 세계 속에 마법의 동화 나라를 구축하며 역설의 미학을 선보인 바 있던 그는 이번에도 모순을 이용해 고정관념을 비튼다.

 영화 속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와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분).

영화 속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와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분). ⓒ 20세기 폭스 코리아


1963년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시대의 비밀 우주 기지와 우중충한 항구 도시 볼티모어의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럽고, 관객 없는 극장 위층의 좁은 아파트 방으로 가는 길 역시 온통 칙칙한 초록색 벽지로 덮여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농아 주인공 엘라이자(샐리 호킨스)의 방에는 빛이 잘 들지 않고, 밤 늦게 우주 비밀 기지를 청소하러 가는 길은 컴컴하고 어둡기만 하다. 그러나 그 푸르스름하고 축축한 분위기는 미묘한 낭만과 우아한 일상을 그려내는 도화지가 된다.

엉뚱하면서도 활발한 엘라이자와 이웃 화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 분), 직장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분) 등의 선역들은 밝고 긍정적이며, 순수한 이상과 정의를 갖고 있다. 영화 속 '소수자들의 연대'는 <판의 미로> 속 피도 눈물도 없는 파시스트 악역 비달을 연상케 하는, 인종혐오-성차별-기독교 원리주의에 입각한 악역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 분)로 더욱 구체화된다. 그 속은 따스하고 낭만적인 역설이다.

상처 입은 영혼의 공허를 채우는 물의 '아름다움'

 영화 속 괴생명체와 엘라이자 (샐리 호킨스 분)

영화 속 괴생명체와 엘라이자 (샐리 호킨스 분) ⓒ 20세기 폭스 코리아


영화를 낯설게 하는 것은 우주 탐사 경쟁을 위해 아마존에서 포획되어온 괴생명체와 사랑을 나누는 청소부 엘라이자의 모습이 너무도 낭만적이고 애틋하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델 토로의 기괴한 세계는 인간이기에 다다를 수 없는 아름답고도 슬픈 환상이었으나, <셰이프 오브 워터>는 분명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 속 사랑의 황홀을 다양하게 전달하며 일상성을 획득한다.

그것은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할리우드 황금기의 초창기 판타지와 기이한 어인(漁人)의 기원이 되는 1950년대 <검은 산호초의 괴물>등의 괴수물, 그리고 엘라이자의 아파트 아래 위치한 극장에서 상영하는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이국의 정서를 통해 구체화된다. 그렇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시선은 복고적이다. 그리고 이 복고는 <라라 랜드>에서 본 바 있듯 애정 어린 손길로 이 믿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믿게 만든다. 그의 지향은 비극 아닌 희극이요, 씁쓸함 아닌 달콤함이다.

 영화 속 괴생명체를 바라보는 엘라이자 (샐리 호킨스 분)

영화 속 괴생명체를 바라보는 엘라이자 (샐리 호킨스 분) ⓒ 20세기 폭스 코리아


매일 아침 도시락으로 가져오는 삶은 달걀을 하나씩 전해주다 1930년대 스윙 시대의 재즈 음악에 맞춰 우아하게 춤을 추고, 무언(無言)의 눈빛으로 마음을 읽어가는 둘의 사랑은 분명한 판타지임에도 보통의 일상성에 강한 기반을 두고 있다. 좁은 화장실에 물을 가득 채워 그들만의 천국을 만드는 씬은 그 절정으로, 엘라이자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어인의 품에 안겨 이웃 화가 자일스를 그윽이 응시하는 장면은 이 기묘한 모순적인 설정을 달콤하게 납득시킨다.

기괴한 취향과 거대 블록버스터 사이서 방황했던 델 토로도 세월이 흘러 성숙의 가치를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보다 여유롭고 깊어진 그의 시선은 결핍을 안고 사는 인간을 질타하거나 환상으로의 일탈을 향하지 않는다. 직장을 잃은 자일스도, 상부로부터의 압박과 과시욕에 억눌리는 스트릭랜드도, 게으르고 비겁한 남편을 먹여 살리며 인종차별을 견디는 젤다도, 매일 아침 자기 자신을 위로하며 애정을 갈구하는 엘라이자도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군상을 대변한다.

부족함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인간에게 신과 같은 어인(漁人)은 드넓고 고요한 물 속을 안내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투영하는, 의식하지 않아도 항상 곁에 흐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수중(水中). 상처 입은 영혼의 공허를 부드럽게 채우는 '물의 형태'는 단어 그대로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132)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셰이프오브워터 영화 아카데미 시상식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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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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