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영화단체들은 매년 2월 정기총회를 통해 지난해를 결산하고 집행부 임기가 끝난 경우 새 집행부를 선출한다. 하지만 선거 과정이 워낙 치열하다보니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흑색선전은 기본이고 후보 자격을 문제 삼기도 한다. 정책 선거와는 거리가 멀다보니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도 선거를 통해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한 단체들에서 이런 후유증이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단체는 부정선거로 인한 재선거를 거론하는 등 내부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과 기존의 기득권이 충돌하는 모양새다.

특히 미투(Me too. 나도 겪었다. 나도 폭로한다)운동이 선거 주요 이슈로 등장하는 등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을 끼치는 모습이다. 후보자의 자격 문제로까지 이어지면 선거 후유증을 심화시키고 있다(관련 기사 : 부정선거에 성추문 공방까지... 충무로 영화인 선거 시끌).

[한국영화배우협회] 성추문 논란 불구하고 이사장 교체

 지난 27일 열린 한국영화배우협회 총회에서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된 김국현 배우(가운데)

지난 27일 열린 한국영화배우협회 총회에서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된 김국현 배우(가운데) ⓒ 성하훈


지난달 27일 오후 충무로 한국의집에서 열린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선거는 미투 운동의 영향을 받아 후보자 간 대결이 격화된 대표적인 경우다. 3선을 노리던 거룡 이사장 측은 경쟁 후보인 김국현 후보의 2015년 성추문 논란을 부각시키며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등 공세를 이어갔다. 전날인 26일 문재인 대통령의 미투 지지 발언 영상까지 틀며 상대 후보를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회원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

거룡 이사장은 투표 전 정견발표를 하러 나와서도 나와 공세를 이어갔다. 그는 "저런 후보와 같이 상대하는 게 수치다. 저런 후보가 협회에 이사장이 돼도 인정 못할 것 같다"며 "여성단체들과 함께 대응하겠다"고 밝힌 뒤 전격적으로 후보사퇴를 선언하고 퇴장했다. "성추문이 있는 사람과 경쟁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며 선거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투표 직전 후보자의 사퇴 등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총회를 이어가느냐 다시 총회를 소집하느냐를 놓고 회원들 간의 대립이 이어졌다. 결국 다수가 투표를 진행하자고 요구하면서 김국현 후보의 정견발표를 듣고 예정대로 선거를 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정견발표를 위해 나온 김국현 후보는 "나를 선임 부이사장 시킨 게 거룡 이사장"이라고 강조했다. 거룡 이사장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지금까지 부이사장 자리를 주고, 왜 아무 소리 안 하다가 선거 앞두고 문제제기를 하냐는 의미였다.

그는 "성추행 건은 농담이 심했던 것이고 바로 사과했다. 이후에도 세 번 네 번 사과했다. 당사자는 더 이상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데, 왜 3자들이 공격하냐?며 "이건 미투 운동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래도 한 번 더 사과하겠다"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투표 결과 151명 참석에 143명이 투표해 김국현 121표, 거룡 18표, 무효 등 4표가 나왔다. 거룡 이사장이 퇴장할 때 함께 따라나가거나 투표에 불참한 회원들까지 포함해도 김국현 후보가 80% 지지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추문 논란과 나름 승부수를 던진 것 같았던 거룡의 후보사퇴가 영향을 못 미친 느낌이다. 배우협회의 한 회원은 "이번 선거는 거룡 이사장 지난 6년에 대한 평가가 강했지, 미투 운동은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부정선거에 성추문 논란 가세

 부정선거 논란을 겪고 있는 시니라오작가협회 문상훈 이사장과 경쟁 후보였던 송길한 작가

부정선거 논란을 겪고 있는 시니라오작가협회 문상훈 이사장과 경쟁 후보였던 송길한 작가 ⓒ 시니리오작가협회, 전주영화제


지난 2월 9일 정기총회가 금권선거와 부정선거였다며 회원들이 격하게 반발하고 있는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는 최근 문상훈 이사장의 성추문까지 불거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시나리오작가협회 선거에서는 문상훈 이사장과 송길한 작가가 격돌해 41표를 얻은 문상훈 이사장이 38표를 얻은 송길한 작가를 이겼으나, 송길한 작가 지지 회원들을 제명하고 투표권을 박탈한 것 등에 대해 젊은 작가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상훈 이사장 측은 선거 불복이라며 부정선거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시나라오작가협회 회원들은 최근 '부정선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지난달 23일 54명의 시나리오작가들이 지지성명을 발표하면서, '선거에서 이기면 끝'이라는 기존 흐름이 뒤집힐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게다가 문상훈 이사장에 대한 성추문 논란까지 나오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달 23일 한 시나리오 작가는 자신의 SNS에 "충무로의 원로작가에게 처음 쓴 시나리오를 보여드리러 간 자리에서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선생님이 붕어찜과 소주를 들고 계셔서 취하셨다 싶었는데, 러닝셔츠를 올리고 배와 가슴을 내놓으시고는 만져달라고 하셨다"면서 "코믹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쉽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말없이 '안녕히 계세요'하고 나왔다"고 적었다.

해당 작가는 "이 분이 고은 시인이나 이윤택 연출처럼 대 권력이 아니고 사그라드는 옛 어른이라 어디선가 술이나 마시고 있겠거니 했는데, 이번에 시나리오작가협회장이 되셨다"라고 문상훈 이사장임을 지목한 뒤 "미투에 나서게 된 이유"라고 밝혔다.

작가협회의 논란에 대해 사단법인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양측의 협상을 중재했고 작가협회와 비상대책위 모두 만나 대화를 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작가협회 비대위는 당초 지난달 28일 열기로 했던 기자회견을 연기한 상태다. 이에 대해 비대위 쪽 관계자는 "문체부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만큼 작가협회 현 집행부가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할 것"이라며 "만일 인정하지 않을 경우 다른 성추문 사례들에 대한 제보들이 취합된 게 있어 이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할 생각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배우협회 시나리오작가협회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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