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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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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아버지는 얼마 전 '축하금을 얼마나 해야 하나?' 고민을 동반한 세상에서 가장 반갑고 고맙고 귀한 청첩장을 받았다. 바로 너의 친구인 '미희'를 동네 빵집 앞에서 만났는데 팔목을 잡아끌더니 "아저씨 꼭 오셔서 축하해주셔요."라며 청첩장을 주더구나. 세상에 이렇게 기쁜 일이 없다.

아버지 나름대로 너희들의 친구들과 어울려 차를 마시고 때로는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세대 간의 격차 없이 소통을 해왔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친구에게 직접 청첩장을 받으니 좋구나. 결혼의 첫 테이프를 끊는 미희를 선두로 이제 줄줄이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하는 친구들 속에 너는 몇 번째로 입장할까 생각하니 "내가 벌써?"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네가 밤늦게 들어오는 날도 남의 집 아버지처럼 노심초사하지 않았다. 우선 너의 모든 친구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고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이이기도 하지만 친구들이 아버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주지 않더냐. 또한, 네가 친구들과 만나 늦겠다고 전화를 하면 전화기를 통해 서로 먼저 바꿔 달라는 말을 들으며 너희들 모두가 대견했다.

'미희'의 결혼식에 참석하자 친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반가워하는 모습에 아버지도 저절로 어깨가 으쓱했다. 그리고 자기들 결혼식에도 똑같이 참석하고 똑같이 선물 안 하면 알아서 하라는 엄포를 들으며 기분이 좋았다. 새삼 '미희'의 결혼을 축하한다. 결혼식 날 비디오를 촬영하는 기사분이 그러더구나.

"아저씨, 따님 친구 결혼식에 오셨으니 덕담 한마디 해주셔야지요."
"미희야 결혼 축하한다. 결혼은 신랑과 한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일이지. 오토바이를 탈 때 시선 처리가 가장 중요한데, 그 이유는 아무리 코너가 깊어도 오토바이는 시선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신랑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아라. 너희들이 바라보는 곳으로 사랑은 모양새를 갖춰갈 터이다."

"신부께서 아저씨 자랑을 많이 하시던데요."
"자기들 밥 사주고 술 사주니까 좋아하겠지요."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부께 따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부하고 비디오 기사하고 짰소? 정 그렇다면 한마디만 더 하리다."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자주 부르는 노래를 익혀서 함께 부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가 아파서 노래를 부를 수 없거나 노래를 잊었을 때 그의 곁에서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불러주는 일이다. 행복은 행복을 누릴만한 사람에게 찾아온다. 바로 '미희' 같은 사람이지. 사랑은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일이란다. 결혼 축하하고 사랑한다.우리 미희. 아저씨가 지은 시 하나 보태마."

-

미안하고, 고맙고......

조상연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낙엽 하나를 주워들고 시룽시룽 앓는 사람처럼 시를 읊었다
눈발이 하나둘 날리기 시작하자
털이 보숭보숭한 모자가 달린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 잠바를 입을 수 있겠구나! 콧노래가 나왔다
버스정류장, 눈이 제법 내리기 시작한다
바람에 신문 한 장이 날아와 발목을 휘감았다
나머지 한쪽 발로 떼어내는데

두 동생을 데리고 사는 소녀 가장 이야기가 얼핏 눈에 띄었다
미안했다 정말 미안해 죽을 것 같았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몸서리쳐지도록 미안했다
손에 들고 있던 낙엽이 갈지자를 그리며
발목을 휘감고 있는 소녀의 사진 위로 떨어졌다



태그:#모이, #딸, #아빠, #편지,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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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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