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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라이터스 중 한 장면
 프리덤 라이터스 중 한 장면
ⓒ 파라마운트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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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라이터스>(Freedom writers)란 영화가 있다. 온갖 차별과 폭력 속에서 아무런 목표없이 살아가는 특별반 학생들이 한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을 통해 변화하는 이야기다. 영화 중에서 집을 잃고 잘 곳이 없는 상태에서 학교를 다니던 학생은 이 수업을 통해 희망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난 이제 집이 있다.(I'm in home.)"

'집'은 단순히 주택이나 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집'이란 단어에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따뜻한 그 무엇을 기대한다. 얀 마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단순하지 않은 단어 '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소설이다.

1부 집을 잃다, 2부 집으로, 3부 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때의 집이 사전적 의미가 아닌 것은 당연하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에 집을 잃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집을 찾아 길을 헤매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며, 집이라 생각하는 곳에서 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서 일어나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하나. 아들을 잃은 율리시스 신부는 노예들이 사는 아프리카의 작은 식민지 섬, 상투메에 도착해서 어떤 사명감을 느끼며 일기에 한 페이지 빼곡히 적는다. '이곳이 집이다.'
둘. 아들과 남편을 잃은 여자, 마리아가 남편의 부검을 맡긴다. 죽은 남편의 배를 갈랐더니 침팬지와 새끼곰이 있었다. 그리고 죽은 남편의 배를 갈라달라고 요청했던 부인은 뱃 속의 침팬지와 새끼곰 옆에 자리 잡으면서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라고 중얼거린다.
셋. 아내를 잃고 무기력에 빠진 한 남자는 우연히 침팬지 '오도'를 만나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서 같이 산다. 아들이 언제 집에 돌아올 거냐고 묻는 말에 "이곳이 집이야. 이곳이 집이다. 네가 날 보러 오지 그러니?"라고 대답한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 표지
 포르투갈의 높은 산 표지
ⓒ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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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집을 찾았을까. 시련과 절망 속에서 알 수 없는 신비한 무언가에 의해 구원 받은 것일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율리시스 신부가 남긴 조각품이, 죽은 남편의 시신이, 우연히 만난 침팬지가 그들을 구원해주리라는 믿음.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이지만 이것조차 없다면 어떻게 살아낼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들 모두는 구원 받았다. 뒤로 걷는 것으로 세상에 반발하는 자는 한 번도 탄 적 없는 자동차를 타고 알지 못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났고, 아들이 죽은 후 통곡 하던 이는 남편의 시신을 가방에 넣어 병리학과 의사에게 부검을 부탁했고, 아내를 잃고 무기력하게 살던 이는 침팬지 '오도'와 살면서 평화를 찾았으니 말이다.

이 소설은 단순하지 않다. 결국엔 하나로 연결되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 다 읽고 나서도 알 수 없고, 어렵고, 복잡하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아마도 그래서 평론가 신형철이 추천사에서 '읽는 중에 이미 다시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라고 했을 것이다. 열 번을 읽는다 해도 각각 다르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한번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한번은 '신'에, 한번은 '인류'에, 한번은 '침팬지'에, 읽을 때마다 다른 것에 초점을 두고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이른 오후, 그들은 - 지도에 따르면 -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도착한다. 공기가 더 서늘하다. 피터는 어리둥절하다. 산이 어디에 있지? 그가 예상한 것은 겨울 색을 입은 우뚝 솟은 알프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숲이 높은 골짜기 사이로 숨어 있고, 봉우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들쭉날쭉하고 황량한 사바나도 아니었다. - 포르투갈의 높은 산, 319쪽


소설을 다 읽고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가보고 싶어 졌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지만 높은 산은 없는. 침팬지 십자고상이 있고, 장례를 치를 때는 모두가 뒤로 걷는 그 곳에. 그곳에서는 침팬지 '오도'가 나를 반겨 평화로 안내해줄 것만 같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그 곳,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가고 싶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2017)


태그:#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마텔, #프리덤 라이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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